유통 공룡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상상력’
  •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1 10:00
  • 호수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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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경제 활용한 멤버십 확장은 필수...ID 접근성 좋은 네이버, 배송에 강점 있는 쿠팡과 대비돼

1년 중 온라인 쇼핑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는 언제일까. 통계청의 ‘월간 온라인쇼핑 거래액’ 규모를 보면 지난해의 경우 11월이었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중국의 ‘광군절’, 한국의 ‘코라아세일페스타’ 시즌이 모두 11월에 몰려 있다. 이 시기에 맞춰 우리나라 이커머스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대규모 할인 행사를 벌이면서 11월은 ‘쇼핑의 계절’이 됐다. 이제 그 11월이다. 기존 유통업계의 최강자인 신세계, 롯데 등은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이 돼 더 이상 오프라인 시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해 온라인 쇼핑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에 온라인 쇼핑 관련 기업인 네이버, 쿠팡 등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런 경쟁의 핵심 중 하나가 구독경제를 활용한 멤버십 제도다.

쿠팡과 네이버의 멤버십이 주목받는 이유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은 구독경제형 유료 멤버십 프로그램(이하 멤버십)을 운영하고 있다. 멤버십은 구독경제 스타일로 일정 기간 사용한 만큼 월회비 또는 연회비를 내야 한다.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은 월 4900원, 쿠팡 ‘로켓와우클럽’은 월 2900원을 내면 가입할 수 있다. 롯데의 ‘롯데오너스’는 월회원(회비 2900원)과 연회원(2만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SSG닷컴에는 다른 멤버십과 비슷한 혜택을 제공하는 PICC카드(SSG닷컴×현대카드)가 있다.

멤버십에 가입하면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는데, 쿠팡은 로켓배송 상품 가격에 상관없이 무료배송 및 새벽배송, 30일 이내 무료반품, 당일배송, 로켓배송 상품 할인행사 등 배송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 네이버는 제품 구매 시 금액의 최대 5%를 네이버페이 포인트로 적립해 준다. 그리고 웹툰, 영화, 디지털콘텐츠 체험팩 중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다. 즉 적립과 콘텐츠 제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롯데온은 무료배송권 14장 증정, 엘포인트 최대 2% 추가 적립, 롯데오너스 전용 할인 등 온라인 전용 혜택 외에도 오프라인 강점을 살려 롯데시네마, 롯데렌터카, 롯데콘서트홀 등 롯데 계열사 제휴 할인도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쿠팡 등은 멤버십을 통해 상당한 모객 및 매출 효과를 내고 있지만, 롯데 등 전통 유통 강자들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차이점이다.

물론 네이버, 쿠팡 등의 멤버십은 사실상 아마존프라임이라는 멤버십 구독 서비스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적자 기업이었던 아마존은 AWS(Amazon Web Services)와 아마존프라임이라는 멤버십 구독 서비스를 기점으로 급성장했고, 시총 1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아마존프라임은 2004년 월 7.99달러(약 9000원), 연간 79달러(약 9만원)만 내면 상품 구매 시 이틀 안에 상품을 배송료 없이 받아볼 수 있으며, 스트리밍 음악, 비디오, 책 등의 구매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아마존의 구독 서비스다. 2019년 기준 아마존프라임 구독자 수(회원)는 1억5000만 명이며, 멤버십 가입비로만 52억 달러(약 6조4000억원)를 벌어들였다.

2016년 10월 골드만삭스의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에 출연해 애플에 아마존프라임과 같은 애플프라임이라는 월정액(50달러) 구독 서비스를  제안했다. 서비스에는 아이폰 업그레이드, 애플TV, 애플뮤직 등이 포함돼 있었다. 블룸버그가 “애플도 이제 구독 서비스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조언했을 정도로 아마존프라임은 멤버십 구독경제 비즈니스 모델의 클래식이다.

이커머스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쿠팡은 2018년 무료배송·무료반품을 내세운 로켓와우 멤버십을 선보여 20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빠른 배송과 멤버십 회원을 미리 대거 확보한 쿠팡에 코로나19는 성장의 또 다른 모멘텀이었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가입자의 9월 거래액이 전체 쇼핑의 약 15%를 차지했다. 월 20만원 이하 구매 고객의 경우, 플러스 멤버십 가입 후 3배 이상 구매액이 증가했다. 회사 측은 지난 10월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가입자가 160만 명을 돌파했으며, 올 연말까지 200만 가입자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지난 4월 롯데온 멤버십 서비스를 개시했다. 가입자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롯데오너스 가입자 수가 4월 출범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롯데쇼핑의 2분기 실적은 롯데온 등장에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쇼핑의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9.2% 줄어든 4조458억원, 영업이익은 98.5%나 감소했다. 신세계그룹 통합 온라인몰 ‘쓱(SSG)닷컴’은 12월부터 오픈마켓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ID경제의 시대…실익 없으면 다크넛지 안 통해

현재 이커머스 결제액 기준으로 1위 기업은 검색의 대명사 네이버다. 온라인 쇼핑의 강자 쿠팡은 빠른 배송으로 전통적인 유통기업들을 따돌리고 온라인 쇼핑 시장을 압도했다. 그렇다면 빠른 배송의 장점도 오프라인 매장도 없는 네이버가 어떻게 이커머스 시장 1위가 되었을까. 네이버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ID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네이버 회원 수는 4000만 명, 네이버페이 월 사용자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네이버 회원인 것이다. 네이버는 검색뿐 아니라 메일, 블로그, 동영상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네이버가 아닌 다른 사이트에 신규 가입할 때도 네이버 ID로 대신 할 수 있다.

신규 가입자에게 할인 혜택을 준다고 해도 사이트 가입 절차가 귀찮고 번거로워 회원 가입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이미 가입돼 있고, 검색만 하면 내가 원하는 제품의 최저가나 상품평을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 클릭만 하면 따로 가입 절차 없이 구매할 수 있다. 이제 기업은 ID를 단순하게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 로그인이나 멤버십 포인트 정도를 쌓아주는 수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객 ID별로 맞춤형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는 ‘ID경제(ID Economy)’ 시대다. 롯데도 롯데온을 론칭할 때 축적된 소비자들의 데이터를 통해 초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ID 접근성이다. 아무리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도 소비자가 자사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파격적인 이벤트 및 할인을 통해 회원 가입을 유도할 순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사이트나 앱에 찾아오지 않는다.

무료체험 기간을 통해 소비자를 가입시킨 후 유료 가입으로 전환하는 ‘다크넛지’도 요즘 잘 통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사이트(OTT)인 퀴비는 약 2조원의 초기 투자를 유치할 정도로 매우 주목받는 스타트업이었지만, 서비스 개시 몇 개월 만인 지난 10월 폐업을 결정했다. 3개월간의 무료체험이 끝난 뒤 유료(월 4.99~7.99달러)로 전환하자 가입자의 92%가 이탈했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지속적인 서비스와 만족스러운 혜택을 주지 못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혜택만 받고 떠나는 체리피커(cherry picker)들만 가득할 수도 있다. 기존 유통기업들이 백날 파격적인 혜택이나 이벤트를 해도 결국 1회성에 지나지 않거나, 매출 신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이 네이버처럼 온라인에서 다양한 혜택을 주거나 ID 접근성을 강화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계열사의 혜택들을 묶어 상품을 기획하기도 하는데, 소비자들에게는 딱히 필요하지 않거나 실용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고, 외부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멤버십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미국 월마트의 멤버십인 ‘월마트 플러스’는 대다수 고객이 자가용으로 매장을 방문하는 것에 착안해 매장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 5%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롯데, 신세계 등은 기존 이커머스 기업과 달리 전국에 수많은 매장이 있기 때문에 연계할 수 있는 멤버십 서비스가 무궁무진하다. 백화점 및 마트의 생활센터, 미용실, 키즈카페, 푸드코트 등의 할인 및 구독 서비스를 결합한 멤버십 혜택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유통기업들에게 지금 가장 부족한 것은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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