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전태일, 의사 장기려 – ‘스카이 출신 지도자’들에게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11.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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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ㅣ조영래 지음ㅣ아름다운전태일 펴냄ㅣ380쪽ㅣ1만5000원
《장기려 리더십》ㅣ김은식 지음ㅣ나무야 펴냄ㅣ184쪽ㅣ1만3800원

‘스카이(SKY)’ 출신 지도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여기서 ‘스카이’란 알려진 대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아니다. 긴 가방끈과 높은 학벌을 풍자한 것이다. 지도자란 대통령을 필두로 국무총리, 장차관,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총장, 청장, 법관, 검사, 의사, 회계사, 기업가, 유력 언론사 기자, 고위공무원, 근로감독관 등등 우리나라의 미래에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주요 파워 리더(Power Leader)들을 말한다. 정치적 대립이 갈등을 넘어 저주와 증오가 난무하는 시대에는 비유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덕석말이를 당하는 수가 있으므로 몹시 조심해야 한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고등공민학교를 중퇴했던 청년 전태일은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다가 17살에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재단사 보조(시다)를 거쳐 재단사가 되었다. 평범했다면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달렸겠지만, 이 청년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기계처럼 착취와 불공정 대우를 받던 봉제공장 어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다 힘에 부치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50년 전, 겨우 스물두 살 나이에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려 산화했다.

한자와 어려운 용어투성이인 법전 때문에 고생하면서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했다는, 배고픈 어린 여공들에게 버스비로 밥을 사주고 집에 걸어 갔다. 그가 밥을 굶은 것이 분명해 식당 주인이 한 그릇 그냥 준다고 했을 때 ‘어린 시다들에게 밥을 먹었다고 했기에 그들이 무안해할까 봐’ 사양했다는 그는 지식이나 학벌이 높은 사람들이 감히 따르기 힘든 성자(聖子)였음이 분명하다.

의사 장기려 선생은 ‘만약 제가 의사가 된다면 단 한 번도 의사를 만나보지 못한 가난하고 헐벗은, 병들어 불쌍한 자들을 위해 평생을 보내겠다’는 자기와의 약속을 한 치 어김없이 지킴으로써 ‘한국의 슈바이처’ ‘살아있는 성자’로 불리셨던 분이다. 그가 자신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청십자 조합’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는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밑그림이자 기반이 되었다.

장기려 박사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은 선량한 부산 시민, 의사, 크리스천. 이곳 모란공원에 잠들다.’ 이름이 기억되기를 원치 않으셨던 선생께서는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다오. 내 흉상을 만드는 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유언을 남겼지만 후세들은 도저히 그 말씀만은 들어드릴 수 없었다.

머리 속에 가득 찬 지식과 학벌을 이용해 그러지 못한 대중들을 악의적 궤변과 사술로 교묘하게 속임으로써 정치·경제적 사익을 취하는 자는 사회적 기생충이다. 머리 속에 지식과 학벌이 가득 찼다면 기생충을 몰아내는 정의의 사도는 되지 못할지언정 스스로 기생충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그 머리 속에 지혜가 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위 ‘오팔륙(586)’이라 불리는 리더로서, 청년 때 이 책들을 벌써 읽었다면 그 때 다짐했던 초심이 변치 않기를 다스리고자 다시 읽기를 권장한다. 노혜경 시인의 병원가(病院歌), 폴발레리의 시,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외침을 섞은 문장을 소위 ‘배운 자’들에게 남겨놓는다.

“세상 모든 근심을 우리가 다 감당할 순 없지만 병들어 서러운 마음만은 없게 하리라.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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