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되고 중소기업은 안 되는 ‘울산 폐기물매립장’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8 10: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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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대기업 봐주기’ 특혜 의혹…결국 중소기업이 피해

초대형 상가 건물에 화장실이 부족하면 입주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상가 건물로 가서 볼일을 봐야 한다. 당국은 건물이 오염되고 냄새가 난다며 화장실 증축 허가를 거부했다. 그런데 큰 평수의 매장에는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화장실 신축 허가를 내주고 작은 평수 매장에는 내주지 않았다면, 이는 분명한 특혜다. 

전국 최대 공업도시 울산에서 실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울산광역시가 산업폐기물매립장 허가를 해 주면서 대기업은 되고 중소기업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울산국가공단의 산업폐기물(제품 부산물) 배출업체는 2600여 개 사인 반면, 폐기물 처리(매립)업체는 3곳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폐기물관리법상 산업폐기물은 종류에 따라 45~60일 이상 보관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에 비상이 걸린 울산 기업들은 다른 지역 처리업체를 찾아가 웃돈을 얹어주고 ‘구걸 매립’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온산공단의 한 대기업 공장장은 “돈을 줘도 울산에서는 폐기물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울산 공장장협의회 관계자는 “폐기물 대란은 울산시가 자초한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울산 지역 폐기물매립장은 3년 후 포화 상태에 이른다. ⓒ시사저널 박치현

대기업 고려아연 매립장 건설 파격적 승인

울산시는 현재 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5개 업체에 대해 모두 부적격 통보를 했다. 법에 맞지 않고 환경오염이 우려돼 폐기물매립장을 허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 신청한 중소기업 허가 신청은 반려하고 대기업 매립장 건설은 승인했다. 선별적 이중 잣대와 편법을 동원한 ‘특혜 허가’ 논란에 휩싸였다.   

온산공단 내 고려아연은 포스코플랜택 부지 3만 평을 매입했고, 지난 8월 울산시에 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위한 개발계획 변경을 신청했다. 울산시는 문제가 없다며 지난달 승인했다. ‘패스트트랙’에 태워 석 달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런데 앞서 지난해 11월 ㈜유그린은 동일 부지에 폐기물매립장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울산시는 한 달 후인 12월20일 불가 통보를 했다. 같은 땅인데 대기업인 고려아연은 되고, 중소기업인 유그린은 퇴짜를 맞은 것이다. 윤기철 대표는 “현행법상 우리도 허가를 받을 수 있는데도 울산시가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불공정 행정을 펴고 있다“며 ”소송으로 부당함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주무부서인 울산시 지역개발과는 산업시설 용지로 조성이 완료된 국가산업단지 땅을 폐기물 처리(매립)시설로 개발계획 변경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불가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또 이 부지는 울산시의 자원순환시행계획에 포함되지 않았고, 도시기본계획에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반려 사유다.

울산시 지역개발과는 이 같은 이유로 ㈜그란다와 ㈔온산공업단지협회의 폐기물매립장 허가신청을 잇따라 반려했다. 그렇다면 고려아연은 어떻게 허가를 받았을까? 울산시가 고려아연 허가에서는 이를 슬쩍 빼고 사업승인을 내준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고려아연 온산공장 ⓒ고려아연

울산시, 허가 기준 불투명…특혜 의혹 증폭 

울산시의 해명은 궁색하다. 김종인 울산시 지역개발과장은 “고려아연이 인근 산업용지에 ’자가매립장‘ 설치를 위한 개발계획 변경을 신청함에 따라 승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업체들이 신청한 매립장은 여러 기업들의 폐기물을 매립하는 일반 매립장이라서 반려했다는 것이다.

좁은 땅에 다가구 아파트는 못 짓게 하고 부자들만 살 수 있는 저택만 허가해 준 셈이다. 고려아연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울산공단 전체 발생량의 6%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자가매립장을 파격적으로 승인했다. 고려아연 인근 업체 관계자는 “모든 기업들이 ‘폐기물 처리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울산시가 고려아연에 엄청난 특혜를 준 의혹이 시중에 쫙 퍼져 있다”고 말했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어디에도 자가매립장과 일반매립장 허가조건을 달리 적용하는 조항은 없다. 일반매립장 신청업체 관계자는 “특혜를 넘어 불법 행정”이라며 “감사원 감사 청구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가 커지자 울산시 지역개발과는 여수산단 GS칼텍스 자가매립장 사례를 벤치마킹해 고려아연에 허가를 내줬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전남도청과 낙동강유역환경청에 확인해 보니 GS칼텍스 자가매립장의 절반은 공장 안에, 나머지 절반은 부지 경계에 걸쳐 있었다. 고려아연 자가매립장은 공장에서 2km나 떨어져 있다. 자가매립장이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자가매립장은 공장 부지 안에 있는 부대시설로 분류된다. 울산시가 편법으로 허가를 내줬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울산시 다른 부서도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환경자원과와 울주군은 고려아연 매립장 허가는 특혜 소지가 있고, 민간 폐기물 처리시설(매립)은 울산시의 자원순환집행계획 반영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고려아연 허가를 강행한 지역개발과와 견해를 달리한 것이다. 환경자원과 관계자는 “주무부서가 다른 부서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형평에 맞지 않는 행정을 펴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고 말했다. 

곽희열 변호사는 울산시 지역개발과가 유권해석을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 변호사는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제13조의 4에는 일정 규모 이하의 폐기물 처리시설은 개발계획변경 없이 실시계획을 수립해 산업단지 지정권자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울산시의 민간 매립장 승인취소 행정처리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온산국가산단처럼 이미 완공된 산업단지의 경우 개발계획변경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11월6일 울산시의회는 코엔텍(울산공단 산업폐기물 처리업체) 특혜 논란 공론화 추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호주계 사모펀드 맥쿼리PE는 2017년 코엔텍을 795억원에 사들였다. 그리고 울산시로부터 120만㎥의 매립지 증설 허가를 받자마자 4217억원에 팔았다. 3년 만에 3400억원을 챙겨 한국을 떠났다. 울산시가 먹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외국계 사모펀드의 배만 불려준 셈이다. 서휘웅 울산시의원은 “울산시가 신규 민간 업체의 허가 신청은 모두 반려하고 코엔텍을 인수한 외국 사모펀드에 증설 허가를 내준 것부터 석연치 않다”며 특별행정감사를 통한 검증을 예고했다.

울산에서 발생하는 산업폐기물은 연간 81만 톤이다. 앞으로 3년이 지나면 매립장은 포화상태에 이른다. 폐기물 처리비용이 폭등하고 있다. 전세값 상승과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살 집이 부족한 것처럼 폐기물을 묻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울산국가공단 21개사 표본조사에 따르면, 산업폐기물 톤당 매립 단가는 2016년 15만7462원에서 2017년 24만4000원으로 무려 55%나 올랐다. 이어 2018년에는 38만6231원으로 또 58.3% 폭등했다. 다시 2019년 50만6154원(31.1%↑), 2020년 68만9600원(36.2%↑)으로 급상승곡선을 그렸다. 5년 사이 무려 438% 상승했다. 

법과 규제가 흔들리고 평형성을 잃으면 시장은 혼란스러워진다. 울산시는 특혜를 우려해 허가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면서 특혜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한 중소기업이 추진하던 폐기물매립장 승인신청을 울산시가 반려했다. 허가가 날 수 있는 곳이지만 “녹지 훼손에 따른 환경오염과 특혜 시비가 예상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고려아연 폐기물매립장은 곧 공사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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