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만 31만원?…장관님들의 은밀한 업추비 사용실태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1 10: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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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급 기관장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 공개…통일부는 ‘50만원 턱밑 끊기’ 의혹

시사저널은 올 3월부터 9월까지 장관급 중앙행정기관 23곳 기관장이 사용한 업무추진비 내역을 입수해 분석했다. 분석 기간을 3월부터로 잡은 것은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각 기관의 내역 공개 범위가 확대된 시기가 이때이기 때문이다. 해당 지침과 정보공개법·국가재정법 등 근거법에 따르면, 각 부처를 비롯한 중앙행정기관은 △사용 일시 △사용 장소 △사용 목적 △대상 인원수 △사용 금액 등을 공개하게 돼 있다.

조사 결과 국방부의 업무추진비 사용액이 총 5732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정경두 전 장관의 재임 기간인 9월18일까지로 잡으면 5464만원으로 집계됐다. 단일 장관으로서는 최다 액수다. 정 전 장관은 한 모임에서 1인당 약 31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중구에서 주요 간부 5명과 가진 간담회에서다. 6명이 총 190만원을 업무추진비로 썼다. 퇴임을 하루 앞둔 지난 9월17일 사용이 확인된 내역이다.

국방부 다음으로 기관장의 업무추진비 사용액이 많은 기관은 4485만원을 쓴 통일부다. 이어 방송통신위원회(3675만원), 환경부(3647만원), 공정거래위원회(3627만원), 해양수산부(3619만원), 보건복지부(3602만원) 순으로 조사됐다.

ⓒ일러스트 오상민

정경두 전 장관, 1인당 20만원대 식사만 6번

정경두 전 장관의 씀씀이는 남달랐다. 1인당 업무추진비 사용액이 20만원대인 경우는 정 전 장관이 유일했다. 20만원이 넘는 경우가 6건이었다. 건당 총 사용액도 가장 많았다. 지난 6월12일 용산구에서 14명이 참석한 ‘군 직위자 만찬 행사’를 위해 282만원을 썼다. 또 5월15일 영등포구에선 ‘전역 장성 환송 행사’ 목적으로 12명이 모인 자리에서 250만원을 결제했다.

특히 국방부에는 타 부처와 달리 눈에 띄는 허점이 있다. 장관만 업무추진비 사용 장소를 상세히 밝히지 않았다. 모두 ‘용산구’ ‘중구’ ‘청주시’ 등 기초단체 단위로만 적혀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측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구체적인 사용 장소는 경호, 보안 등 취약 우려로 비공개한다”고 알리고 있다. 반면 국방부 차관 이하 산하기관장·국장은 전부 업무추진비 사용 장소를 식당 이름까지 공개했다. 국방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장관은 다른 직급과 달리 외부 위협을 이유로 특별히 비공개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장관의 공개 내역 중에도 3월 한 달 동안에는 식당 이름이 적혀 있다.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국방부 장관은 공휴일 및 주말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이 가장 많았다. 조사 기간 동안 총 31건이고, 이 중 정경두 전 장관은 25건을 썼다. 코로나19로 휴일에도 일정이 잦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27건)과 맞먹는다. 단 보건복지부는 9월 일정을 비공개했기 때문에 이것까지 고려하면 더 많아질 가능성은 있다.

기획재정부의 ‘2020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원칙상 공휴일이나 토·일요일에 업무추진비를 쓸 때는 그 불가피성을 입증해야 한다. 대신 코로나19와 관련해 휴일 비상근무를 할 때는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다.

코로나와 무관하게 휴일에도 쓰인 업추비

박능후 장관의 휴일 사용내역 중 20건은 코로나19와 관련된 일정이었다. 반면 정경두 전 장관의 경우 ‘코로나’란 글자가 포함된 휴일 사용내역은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직원 간담회’ ‘휴일근무 직원 격려’ ‘국방정책 간담회’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박 장관의 3~8월 휴일 업무추진비 사용 총액은 569만원, 정 전 장관의 3~9월 사용 총액은 1247만원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경계작전 및 대비태세 유지, 코로나19 등 다양한 군사적·비군사적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휴일인 경우에도 비상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휴일에 직원을 격려하거나 평일에 계획하기 어려운 각종 간담회를 편성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업무추진비 외에 특수활동비 규모도 비교적 컸다. 정의당 정책위원회가 최근 분석한 결과, 내년도 국방부에 배정된 특활비가 1145억원으로 나타났다. 국가정보원(746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또 경찰청(718억원)과 법무부(155억원)가 뒤를 이었다. 특활비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곳에 들어가는 돈이다. 이 때문에 업무추진비와 달리 용처를 전혀 확인할 수 없다.

그 밖에 기재부는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을 통해 “업무추진비를 건당 50만원 이상 집행하는 경우에는 주된 상대방의 소속 및 성명을 증빙서류에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다하게 썼을 경우 접대 대상이 누구인지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정경두 전 장관이 조사 기간 중 50만원 이상 결제한 내역은 31건이다.

이 가운데 외빈 등 외부 인사 접대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자리는 1건에 불과했다. 5월6일 용산구에서 51만원을 쓴 ‘코로나 대응 유공자 격려’(10명 참석) 자리다. 그 외에는 모두 ‘직원 간담회’ ‘파견 직원 격려’ ‘군 직위자 만찬 행사’ 등 내부 관계자를 위해 썼다. 거액의 업무추진비를 ‘제 식구 챙기기’용으로만 소비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보공개를 청구하면 접대 대상 공개 여부를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반대로 통일부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는 50만원에 조금씩 못 미치는 금액을 쓴 흔적이 다수 남아 있다. 49만원을 결제한 기록이 4건, 48만원이 9건이다. 100원 단위도 어긋나지 않고 정확히 그 금액만 적혀 있다. 동석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통일부, 몇 명 오든 ‘48만원’ 맞춰 식사

예를 들어 8월12일 오후 1시20분에 서울 중구 한정식집 ‘한미리 광화문점’에서 48만원을 결제한 기록이 있다. 총 16명이 ‘직원 격려 간담회’ 목적으로 참석했다. 1인당 3만원을 쓴 셈이다. 그런데 해당 식당에서 가장 싼 점심 코스메뉴 가격은 3만4000원이다. 단품으로는 주문이 안 된다고 한다. 참석자 모두가 주문했다면 48만원을 맞추기 불가능한 메뉴 구성이다. 당시 통일부 장관은 7월27일 취임한 이인영 장관이다. 이 장관이 의원 시절 쓰던 휴대폰에 수차례 전화하고 문자를 남겼으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

앞서 김연철 전 장관 때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그는 6월에 서로 다른 식당에서 49만원씩 세 건을 썼다. 매번 참석자 수는 자신을 포함해 10명이었다. 1인당 4만9000원이다. 단 식당 세 곳 모두 1인분에 4만9000원짜리 메뉴는 팔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통일부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업무추진비 사용자가 아닌 입장에서 답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50만원 턱밑 끊기’ 의혹은 2015년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서도 불거진 바 있다. 지난해 3월 감사원도 정부의 49만원 결제 꼼수를 적발해 냈다. 기획재정부가 체육행사 뒤풀이 비용 약 136만원을 네 차례로 나눠 결제하는 과정에서 49만원씩 적어낸 것이다. 기재부를 포함해 중앙행정기관 5곳이 건당 50만원 미만으로 집행한 업무추진비 액수는 1억8300여만원에 달했다.
 

추미애 장관은 구내식당에, 진영 장관은 상품 구입에

한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구내식당에서 업무추진비를 쓴 내역이 가장 많았다. 4월부터 9월까지 국무위원식당에서 14건에 걸쳐 총 501만원을 결제했다. 국무위원식당은 정부서울청사 내에 직원식당과 별도로 마련된 공간이다. 주요 간담회나 업무 보고회가 열리기도 한다. 식사 가격은 매주 바뀌는 중식 식단이 1만원이고, 한정식은 2만~3만원이다.

밥값이 아닌 물품 구입에 가장 많이 쓴 사람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진 장관은 8월19일 ‘폭염지역 방문 격려품 구입’ 명목으로 80만원을 썼다. 이는 다음 날 만난 경남 밀양시 주민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추석맞이 사회복지시설 위문품’ ‘호국보훈의 달 보훈요양원 위문품’ 등 물품 구입에 총 232만원을 지출했다.

일부 기관장은 업무추진비로 식대를 선결제하기도 했다. 정부의 내수 부양 방침에 따른 조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8일 “공공부문이 앞장서 선결제, 선구매 등을 통해 3조3000억원 이상의 수요를 조기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각 부처가 업무추진비를 외식업계에 미리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따른 기관장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다. 그는 5월 한 달 동안 과천정부청사 주변 식당 8곳에 총 800만원을 선결제했다. 또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같은 기간 식당 9곳에 총 441만원을 선결제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힘을 보탰다. 5~7월 식당 10곳에 800만원을 업무추진비로 미리 지급했다.

조사 기간 중 업무추진비 총 사용액이 1000만원 미만인 기관은 국가보훈처(581만원), 외교부(550만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371만원) 등 3곳이었다. 보건복지부와 국가보훈처는 대상 인원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몇 명에게 접대를 했는지, 비용은 합리적으로 썼는지 등을 알 수 없다. 이들 기관 측은 “일부러 비공개하려는 의도는 없다”며 “앞으로 잘 밝힐 것”이라는 입장을 전해 왔다.

판공비? 쌈짓돈?…업무추진비의 정체

업무추진비는 공무를 처리하는 데 쓰는 비용을 뜻한다. 1993년 이전에는 ‘판공비’로 불렸다.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기획재정부가 해마다 작성하는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라 업무추진비를 써야 한다. 쓰임새는 어디까지나 공무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사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 경계가 모호해 ‘쌈짓돈’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공개 기준이 강화되는 추세다.

업무추진비 결제는 정부가 발급하는 ‘정부구매카드(클린카드)’로 해야 한다. 원칙상 현금으로는 쓸 수 없다. 또 유흥주점, 성인용품점, 위생업종(미용실, 사우나, 마사지숍 등), 레저업종(골프장, 노래방, PC방 등), 사행업종(카지노, 오락실 등)에서는 아예 카드 사용이 불가능하다. 단 일반 식당에서 술을 구매하는 건 가능하다. 또 △공휴일 및 토·일요일 △밤 11시 이후 심야시간대 △관할 근무지와 무관한 지역 등의 경우, 업무추진비 지출의 불가피성을 입증받는 경우에 한해 카드 사용이 가능하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업무추진비로 1910억원을 편성했다. 올해 예산인 2015억원에서 105억원 줄어들었다. 코로나19 극복 차원에서 공공부문 경비를 줄이겠다는 뜻을 담았다. 지난해는 1956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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