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家 사위들의 동반 약진
  • 김도현 시사저널e. 기자 (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20.12.17 10:00
  • 호수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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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신세계․현대차․크라운해태․오뚜기 등 ‘사위 경영인’ 전진 배치한 이유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스포츠마케팅 연구담당 사장이 최근 글로벌전략실장에 임명됐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사위이자 신세계톰보이 대표직을 맡고 있는 문성욱 부사장도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대표직을 겸임하게 됐다.

두 사람은 범삼성家 3세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의 남편들이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손녀사위들인 것이다. 이 창업주는 여식들의 경영참여를 지양했던 다른 그룹 총수들과 달리, 능력 있는 여식들을 대거 경영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막내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사위들도 대부분 경영의 요직에서 활동했다. 

ⓒ시사저널 박은숙·박정훈 

딸들의 경영 참여 독려한 이병철식 가풍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마찬가지다. 이부진·서현 자매의 경영참여를 독려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 CEO(최고경영자)이며, 이서현 이사장도 삼성의 패션사업을 담당할 당시 포브스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아시아 여성 기업인 15인’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 같은 가풍이 결과적으로 딸들뿐 아니라 사위들의 경영참여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김재열 사장의 임명과 관련해 “그가 갖고 있는 폭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글로벌 핵심 인재 영입을 통해 삼성의 미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최근 이건희 회장이 타계했고, 삼성의 미래 사업이 본격 속도를 내는 시점에 김 사장이 해외 인재 영입의 전초에 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평이 나온다. 삼성 안팎에서는 향후 김 사장의 그룹 내 역할이 부각될 것으로 예견하는 시각 또한 적지 않다.

문성욱 부사장이 대표직을 겸임하게 된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역시 신세계그룹의 미래 사업을 담당하는 벤처캐피털이다. 신세계그룹은 연말 임원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임원 규모가 대폭 축소된 반면, 문 부사장은 미래 사업의 디딤돌이 될 요직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모양새가 됐다. 그는 조선호텔에 입사해 신세계, 신세계I&C, 이마트 중국본부·해외사업총괄, 신세계인터내셔널 등 다양한 계열사를 두루 거친 바 있다. 준비된 경영인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 정몽구, 계열사 대표에 사위들 임명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도 사위들을 중용했다. 특히 차녀 정명이 현대카드 브랜드부문 대표의 남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경우 경영능력을 겸비한 대표적인 재벌가 사위로 손꼽힌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02년 현대카드 대표를 맡은 후 1.8%였던 시장점유율을 7년 만에 16.3%로 끌어올리면서 카드 업계의 신화를 썼고, 현재까지 현대카드를 큰 문제 없이 이끌어 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3세인 정의선 회장 체제로의 개편이 진행되면서 부회장 자리가 꾸준히 축소돼 왔다. 현재는 정태영 부회장과 더불어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 등 단 네 명만 남은 상태다. 아직 임원인사를 발표하지 않아, 추가적인 감축도 예견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정 부회장만큼은 보직을 유지할 것이라 점친다.

단순히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카드 업계는 신한카드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KB국민·삼성·현대 등이 2~4위를 유지 중이다. 상당 기간 고착화된 양상이다. 은행·보험 등 연계 금융 계열사가 부족한 현대카드가 10여 년 동안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던 것만으로도 정 부회장에게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대한항공·배달의민족·스타벅스 등과의 협업 등 소비자 니즈(욕구)에 발맞추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온 정 부회장의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신성재 삼우 부회장도 과거 현대차그룹 계열사 대표직을 수행하며 ‘현대차 사위 경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1995년 현대정공에 입사한 신 부회장은 1997년 정 명예회장의 3녀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장과 결혼했다. 이듬해 현대강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3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정의선 회장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나란히 승진했는데, 그룹 내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음을 방증하는 단편적인 사례로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이후 현대강관이 현대하이스코로 이름을 바꿨고 2005년 신 부회장은 현대하이스코 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직까지 맡게 됐다. 입사부터 사장 및 계열사 대표직 임명에 이르기까지 불과 10년 만의 초고속 승진이었다. 이혼 후 대표직 사의를 표명했던 2014년 9월까지 현대하이스코의 가파른 상승을 견인하다가 현재는 부친이 운영하는 삼우로 복귀한 상태다.

신 부회장이 떠난 현대하이스코의 존재감은 점차 그룹 내에서 희석됐다. 현재는 계열사 명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떠난 다음 해인 2015년 현대제철에 흡수됐으며, 현대하이스코 본사로 쓰였던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옥은 현대제철 영업본부 일부가 입주해 사용했으나, 올 초 영업본부 통합 작업과 더불어 외부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해태제과·오뚜기의 애틋한 ‘사위 사랑’

식품 업계에서는 유독 사위 경영진의 활약이 눈에 띈다. 크라운해태그룹의 핵심 계열사 크라운제과·해태제과는 각각 윤영달 크라운해태그룹 회장의 장남 윤석빈 사장과 사위 신정훈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윤 사장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이 완료되면서 승계 윤곽이 사실상 확립된 상태지만, 경영 자질만 놓고 봤을 땐 신 사장의 수완이 낫다는 평을 받는다.

2008년 멜라닌 파동 당시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신 사장은 전국적인 품귀현상을 일으킨 ‘허니버터칩’ 성공신화를 쓴 주역이다. 기존 스테디셀러 판촉을 강화하면서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비자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존 제품에 다양한 맛과 향을 첨가한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또 적자 구조의 아이스크림 사업을 과감히 매각하는 등 실익 개선에 초점을 두며 실적 상승을 견인했다.

고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의 사위이자 함영준 오뚜기 회장의 매형인 정세장 면사랑 대표는 전략적 제휴를 바탕으로 면사랑과 오뚜기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지난 2004년 오뚜기가 생면 사업에 도전할 당시, 경험이 없던 오뚜기를 대신해 면사랑이 해당 제품의 위탁생산에 나서면서 성공적인 시장 안착에 도움을 줬다. 오뚜기의 성장을 직접 도모하진 않았지만, 처가 기업의 성장에 든든한 버팀목이 된 셈이다. 공교롭게도 함 명예회장의 둘째 사위도 식품업체를 운영 중이다. 정연현 풍림푸드 사장이 주인공이다. 면사랑과 풍림푸드 모두 ‘처가댁’ 오뚜기와 거래비율이 높아 지속적으로 내부거래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나, 표면적으로는 오뚜기를 중심으로 실익을 나눠 갖는 구조가 형성됐다.

이렇듯 오너가 사위들의 역할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대다수의 재벌은 가족경영을 추구하면서도 장·차남 중심의 경영을 보여온 데다, 재벌 간 혼사가 빈번해 대다수 오너가 사위들은 자신의 집안 사업에 집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사위들이 처가 회사에서 요직을 맡거나, 더 나아가 승계까지 꿰찬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동양 사태 피해자 모임인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 관계자들이 2015년 4월17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앞에서 금융사기 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공정한 재판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승계 주축 동양그룹 사위들 ‘희비’ 엇갈려

일례로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가 건강이 악화되자 그 자리를 대신한 인물은 맏사위인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이었다. 현 전 회장은 3·1운동에 주도적으로 가담하고 고려대 초대총장을 지낸 고 현상윤 박사의 손자이자, 고 현인섭 이화여대 의대 교수의 3남이다. 1989년 이 창업주가 타계하면서 현 전 회장은 동양그룹 총수에 취임하게 된다.

사위 승계는 이 창업주 슬하에 아들이 없던 이유도 컸지만 큰사위에 대한 신임이 남달랐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둘째 사위가 재직 중임에도 줄곧 검사 생활만 해 오던 맏사위가 와병 중인 장인을 대신해 경영일선에 나선 것만 보더라도 그의 신임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독립운동·교육가 집안 출신의 검사 맏사위를 대만계 화교 출신의 둘째 사위보다 편애했다는 후문이 나올 정도였다.

둘째 사위는 결혼 이후 동양시멘트에 입사한 뒤 동양제과로 자리를 옮겨 2001년 계열분리에 나선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다. 결과적으로 동양그룹의 모체는 큰사위가, 제과사업은 작은사위가 나눠 갖는 모양새였지만, 현재의 위상은 역전된 지 오래다. 현 전 회장은 재직 중 불법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구속 수감돼 옥고를 치르고 있으며, 동양그룹 역시 청산됐다.

동양그룹의 모체지만, 타 계열사들에 비해 사업 규모가 작았던 제과업을 맡았던 담 회장은 화교 출신이란 이점을 십분 발휘해 한·중 수교 이전에 이미 중국 시장 진출을 성사시킴으로써 상당한 실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또 동양그룹이 위기에 빠졌을 당시 자금지원을 거부함으로써 가족 간 정보다 기업인으로서의 냉철한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해 호평을 얻은 바 있다.

다만, 담 회장 역시 배임·횡령 등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음에도 회사 자산 매각 후 명품시계를 마련했다는 의혹 등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등 온갖 송사와 구설에 휘말리며 오리온그룹 오너 리스크의 장본인이란 혹평을 떨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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