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독주…‘성동격서’ 전략이었나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0.12.12 10:00
  • 호수 16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석열에 관심 쏠린 사이…‘밀린 숙제’ 한꺼번에 처리한 與

2020년 12월의 연말 정국은 더불어민주당의 시간이었다. 174석 거대 여당의 질주를 막을 전략은 애초부터 없었다. 민주당은 열린민주당, 친여(親與) 성향 무소속 의원들과 손잡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공정경제 3법 일부 등 주요 쟁점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줄줄이 통과시켰다. 180석의 위력이 어김없이 발휘되는 시간이었다.

연말 정국에서 민주당은 과감했다. 국민의힘의 강한 반발 속에서도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했다. 개정안에는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야당 측이 비토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여당 뜻대로 공수처장 후보가 정해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 것이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하다 끝내 무산됐던 공수처 출범이 16년 만에 코앞으로 다가오게 됐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안뿐만 아니라 상법 개정안과 자치경찰제 도입을 담은 경찰법 개정안, 5·18민주화운동 허위사실 유포 시 처벌하는 내용이 담긴 ‘5·18 왜곡처벌법’ 등을 법사위에서 단독 처리한 뒤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같은 법안은 모두 민주당이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를 강조한 숙원 사업이었다.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 통과를 강력히 요구해 온 핵심 쟁점 법안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12월10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본회의에 입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위선정권 막장정치 민주당에 경고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추-윤’ 갈등에 가려진 민주당의 ‘독주’

민주당의 거침없는 행보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국민의 시선이 온통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 쏠려 있었다는 점이다. 온 국민이 윤 총장의 징계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때, 국회에선 민주당이 질주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여야 간 충돌이 불가피한 다수의 쟁점 법안을 불과 며칠 사이 줄줄이 처리했다. 역시나 언론도, 국민의 시선도 어렵고 복잡한 법안 처리 여부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민주당의 ‘성동격서’ 전략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상대로 역풍은 과거만큼 거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입법독재’라는 구호는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물론 과거에도 과반 이상의 의석을 지닌 여당이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한 사례는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며 수차례 협상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강행 처리에 대한 부담감이 존재했다. 강행 처리 이후 비판적 여론이 확산하면서 여당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민주당이 ‘추미애-윤석열’ 갈등 속 혼란을 틈타 ‘강한 여당’ 행보에 나선 배경에는 추락하는 지지율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집토끼부터 공고히 다져야겠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지속될수록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불리던 40%대가 깨진 데다, 민주당 지지율도 비록 오차범위지만 국민의힘에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도 권력기관 개혁 입법을 정면 돌파하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민주당에 힘을 실었다. 문 대통령은 12월7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완성할 기회를 맞이했다”면서 “우리 정부는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그 과제를 다음 정부로 미루지 않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에 민주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패스트트랙 트라우마에 발목 잡힌 국민의힘

의석수 103석에 불과한 국민의힘에게는 카드가 없었다. 국민의힘은 쟁점 법안의 상임위 처리 과정에서 안건조정위 회부 등 방어 전략을 동원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의 합세로 안건조정위 지연 전략조차 통하지 않았다. 안건조정위에 올라간 법안은 여야 동수로 이뤄진 6명의 위원 중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된다. 소수정당의 폭력을 예방하는 동시에 합법적 비토권을 보장하는 제도였지만, 5분의 3을 차지한 범여권 앞에선 투쟁 수단만 제한하는 조항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지난해 패스트트랙 국면 때처럼 강경 투쟁 카드는 꺼낼 생각이 없었다. 지난해 쇠막대까지 동원하며 강경 태세를 보였던 국민의힘이지만, 당시 물리적 충돌로 의원들이 무더기 고소‧고발을 당했다. 결국 이번에는 선을 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국회선진화법이 다시 한번 국민의힘의 발목을 잡았다.

사실상 손발이 묶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사위에서 “날치기” “입법 독주”라며 고성을 지르고, 의사봉을 빼앗거나 마이크를 꺾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12월10일 본회의에서도 자체 수정안을 제출해 처리를 지연시켰지만, 103석의 한계에 봉착했다.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직후 “민주주의는 죽었다” “친문독재 공수처 OUT” 등이 적힌 카드를 들고 “문재인은 독재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한 뒤 본회의장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손발이 묶인 국민의힘은 장외투쟁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러다가 정말 대한민국이 전체주의, 독재국가가 되는 것 아닌가 위기감을 갖고 있다”며 “당 안팎에서는 이제 이 폭정을 종식시키는 데 많은 국민이 함께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장외투쟁을 만류하고 있어 거리에 나설지는 아직 미지수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