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힘 빼느라 ‘공룡 경찰’ 만들었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0.12.30 07:00
  • 호수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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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과 한 세트라더니…당초 취지 사라진 ‘경찰 개혁’

“경찰 개혁은 검찰 개혁과 한 세트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초 여당 원내 대표단과 가진 청와대 만찬에서 한 말이다. 경찰 개혁까지 이뤄져야 검찰 개혁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올 한 해 경찰 개혁을 위한 여러 가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1월13일 통과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그 시작이었다. 이 법안으로,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를 시작하고(수사개시권), 끝낼 수 있는 권한(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됐다. 또한 12월13일,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등을 담은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3년 유예기간을 거쳐 경찰로 이관된다.

ⓒ연합뉴스

“文 정부의 경찰 개혁은 총체적 실패”

검찰과 국정원의 힘을 뺀다는 취지에서 경찰에 힘이 쏠렸고, ‘공룡 경찰’ ‘경찰 파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12월9일, 자치경찰-국가수사본부(국수본) 도입을 위한 경찰법 및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같은 날, 경찰의 정보활동 근거를 담은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됐다. 경찰의 권한을 분산·축소하고,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단일 조직이던 경찰은 2021년 1월1일부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국수본 등 세 개의 지휘 체계로 분리된다.

그러나 지금의 경찰 개혁 방향에 대한 시민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경찰 개혁 관련 입법이)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그 권한의 분산·축소라는 원래 취지는 퇴색하고, 여야 간의 흥정거리가 됐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경찰 개혁’ 입법을 완수했다는 명분을 취하고, 국민의힘은 경찰의 민원을 충실히 전달하며 부화뇌동하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경찰 개혁’은 실패로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참여연대 역시 “경찰의 권한은 확대됐지만 (경찰 개혁 법안은) 경찰 권한을 분산하고 통제하는 데 있어 실질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정부와 민주당의 경찰 개혁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다”고 비판했다.

 

무늬만 자치경찰...“경찰 권력 더욱 비대화”

경찰 개혁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자치경찰제’ 도입이었다. 자치경찰제는 중앙집권적 경찰의 지방 분권화를 통해 경찰 권력을 분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자치경찰을 완전히 분리해 국가경찰과 ‘이원화’하겠다던 당초 계획과 달리 일원화 방식이 확정됐다. 권력 분산이 이뤄지지 않은, 이른바 ‘무늬만’ 자치경찰제가 도입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주도한 2018년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자치경찰제와 함께 추진하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에도 ‘실효적인 자치경찰제 도입’이 나온다. 실효적 자치경찰제 없이는 경찰 개혁은 물론 검찰 개혁도 미완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경실련은 “일원화 모델에서의 자치경찰은 신분상 국가직이다. 경찰 전체가 국가경찰 소속이고, 국가경찰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다”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권의 비대화에 대한 걱정이 많은 상황에서 자치경찰제의 후퇴는 경찰 권력 비대화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이는) 권력기관 권한 분산이라는 경찰 개혁 방향과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김창룡 신임 경찰청장이 7월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 독립 요원...“경찰청장 벗어날 수 없는 국수본”

국수본 신설은 경찰 수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것이다. 국수본을 통해 행정경찰관과 사법경찰관을 분리했다. 그러나 국수본이 신설될지라도 사법경찰이 여전히 행정경찰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수본은 경찰청 내부에 존재하고, 수사본부장 역시 경찰청장이 지명권을 가진다. 또한 경찰청장이 국수본에 수사지휘를 내리 수 있는 여지도 만들었다. 즉 ,수사본부장 임명부터 국수본 운영에까지 경찰청장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법경찰의 독립이 담보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경찰 개혁의 최우선적 과제는 사법경찰의 독립성 확보”라면서 “일사불란한 위계조직을 가지고 있는 행정경찰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법 적용이 요구되는 사법경찰과 여전히 조직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경찰국가의 실체만 확보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적 통제는 어디로...“자문기관에 그친 국가경찰위원회”

권력기관 개혁, 특히 검찰 개혁을 추진하며 문재인 정부가 누차 언급한 것은 ‘민주적 통제’다. 문재인 정부의 민주적 통제란 ‘선출된 권력’이 주체가 되는 통제를 말한다. 시민사회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국민'이 주체가 되는 통제, 즉 권력기관 통제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이호영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총무위원장은 “경찰은 정치적인 중립성과 독립성 면에서 대단히 취약하다. 지배적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잘 보이면 승진하는 지금의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경찰청장이 누구의 말을 들을지는 너무도 명확하다”면서 “진정한 정치적 중립성은 경찰이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두려워하고 경찰 권한 행사가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제어되도록 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 권력의 민주적 통제는 ‘경찰위원회’와 직결된다. 시민사회가 참여한 경찰위원회가 지배적 정치권력과 경찰 수뇌부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찰 개혁 과정에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에 각각 국가경찰위원회,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시·도자치경찰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독립성을 명문화했다. 그러나 국가경찰위원회는 여전히 심의·의결 기구에 그쳤다. 또한, 경찰위원회 위상 강화를 위한 방안은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개혁네트워크는 “국가경찰위원회의 권한과 위상은 자문기구에 불과한 현행의 경찰위원회에 ‘국가’라는 이름만 붙였을 뿐”이라면서 “경찰위원회 실질화를 통한 민주적 통제 강화는 대통령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국가경찰위원회를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설치하고 독립된 사무기구를 갖추는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논의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12월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경찰에도 그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와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현재 국가경찰위원회가 심의의결기관에 머물러 있고 자치경찰위원회도 미약해 실질화 방안 등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리칠 수 없는 유혹..."정보경찰, 경찰 입맛대로 존치"

시민단체는 정보경찰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경찰 개혁 과정에서도 정보경찰은 존치됐다. 문재인 정부가 정보경찰을 절대 폐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경찰이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개념이 기존의 ‘치안정보’에서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 관련 정보’로 바뀌었을 뿐이다.

경찰개혁네트워크는 “이 정도 개정으로 정보경찰의 무분별한 정보 생산과 수집을 막을 수는 없다.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창룡 경찰청장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활동이 중지돼 있는 상태에서 경찰의 정보활동마저 축소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결국 경찰의 입맛대로 정보경찰은 존치되었고 실질적 통제 장치는 도입되지 않았다”면서 “애초에 정부와 여당에 권력기관인 경찰의 권한을 분산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김 청장은 “(정보경찰에 대해) 강도 높은 개혁 노력을 기울였다. ‘정보국’ 명칭도 ‘공공안녕정보국’으로 변경할 예정”이라며 “과거의 관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통령령에서 정보활동 대상을 범죄·재난·공공갈등 등으로 좀 더 구체화하고, 정치관여 행위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해 정보활동에 대한 통제 장치를 제도화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은 검찰에 모든 이목이 집중돼 있다. 그러나 경찰 개혁 없는 검찰 개혁의 완성은 불가능하다.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업무를 담당했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검찰을 떠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가) 권력기관을 개편한다고 처음 약속했던 ‘실효적 자치경찰제’ ‘사법경찰 분리’ ‘정보경찰 폐지’는 왜 사라졌습니까? 수사권 조정의 선제조건이라고 스스로 주장했고, 원샷에 함께 처리하겠다고 그토록 선전했던 경찰 개혁안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혹시 정보경찰의 권력 확대 야욕과 선거에서 경찰의 충성을 맞거래했기 때문은 아닙니까? 결국, 목적은 권력 확대와 집권 연장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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