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 바이든·김정은의 속내
  •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연구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5 08: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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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외교안보팀, top-down 대신 bottom-up으로
김정은의 딜레마...마냥 기다릴 수도 비난하기도 어려워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바쁘다.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인수위원회 홈페이지(Biden-Harris Transition)를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추진 과제 앞머리 세 개 모두가 국내 현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 회복, 그리고 인종갈등 봉합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 현안에만 매달릴 수 없는 처지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외쳤던 바이든 당선인이다. 크리스마스 연휴 직후인 지난 12월28일에도 새 행정부의 외교안보팀과 화상회의를 갖고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날 화상회의는 새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마찬가지였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지명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등 대외정책의 핵심 각료와 참모들이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화상회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당선인은 민주주의 파트너들과 함께라면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시대의 일방주의를 거두어들이고 민주주의 동맹 및 우방국들과 함께하겠다는 입장도 재차 천명했다. 

ⓒEPA연합·평양 조선중앙통신
ⓒEPA연합·평양 조선중앙통신

굽이굽이 고갯길 많은 북·미 관계

민주주의 파트너들과의 공조 강화는 바이든 시대의 이정표다. 이 이정표를 따라가는 길동무에는 동맹국인 대한민국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정식 국호로 하는 북한은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나라 이름에 포함되어 있지만 바이든 당선인의 길동무는 아니다. 지난 12월28일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당선인이 향후 중국과의 회담에서 인권 문제도 다루겠다고 언급한 걸로 봐서는 북한과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비핵화 담판을 넘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 인권 문제 같은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고 대놓고 바이든 당선인을 비난할 수도 없다. 오는 1월 8차 당대회에서 발표할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완수와 현재 북한의 공식 국가 노선인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미 관계 개선과 제재 해제는 필수다. 

국가 목표가 이렇기는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을 축하하고 환영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no deal·협상 결렬)’ 직후 미국에 비핵화 회담에 대한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라고 요구했고 여태 그 답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아직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계산법’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적도 없는데 추파를 던지듯 미국의 새 대통령을 마냥 환영하고 축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출범 이후 새 외교안보팀의 미 의회 인준청문회와 대북정책 재검토 기간 동안 북한에 적극적으로 새로운 신호를 보내기 어려울 전망이다. 따라서 2021년 상반기는 북한과 미국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상대방을 예의주시하는 기간이 될 공산이 크다. 이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북·미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외교 과제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때와 같은 ‘전략적 인내’로 북핵 문제를 일관할 수는 없기에 협상 테이블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기와는 달리 북한은 핵무장을 고도화하고 핵능력국가(nuclear capable state) 수준에 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핵무기 비확산 전략 유지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북한의 핵 문제에 반드시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 개입의 방향타는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당선인의 성향상 한국에 많은 것을 물으며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대북 접근방식은 ‘톱다운(top-down) 정상외교’에서 ‘바텀업(bottom-up) 실무협상외교’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방식을 채우는 내용에 대해서는 한국과의 협의를 중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통 외교관료와 전문가 출신으로 채워진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전통적인 외교 협의 채널에 비중을 둘 전망이다. 정치인 출신과 독보적인 색채가 강한 인사가 많았던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팀과는 달리 예측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스트라이커 개인기에 기초한 화려한 플레이보다 조직력에 기초한 골 결정력을 중시하는 플레이를 선보일 확률이 높다. 

문제는 외교가 전쟁이나 스포츠 게임과는 달리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의 골을 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을 붕괴시키고 절멸시키지 않는 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라는 공동의 골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남·북·미 앞에 동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과제를 두고 최근 3년간 남·북·미는 협조와 대립을 반복했다. 

2018년에는 남·북·미 모두 한반도 현상전환이라는 공동의 목표 앞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북한은 2017년까지의 핵무장 강화 이후 2018년부터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 채택과 제재 해제를 위한 대외관계 개선의 목표가, 한국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본격화라는 목표가,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 누구도 하지 못한 북한 비핵화와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향한 목표가 있었다.

 

더디지만 분명히 움직일 한반도 정세 시계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의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은 그러한 목표 아래 이루어졌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 이후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단절한 폐쇄적 현상유지 기조에 들어서고, 2020년 코로나의 엄습에 따라 북한은 비상방역체제, 미국은 자국 상황관리에 몰입하느라 폐쇄적 현상유지 상태는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 

2021년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종식이라는 변수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의 시계도 움직일 것이 틀림없다. 북한은 8차 당대회 이후 대외관계 개선과 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의 실질적 추진, 미국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 달성을 통한 전략적 이익 확대, 한국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해 남·북·미가 한반도 현상전환을 다시 추진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함께 한반도에도 불가역적인 평화를 위한 외교 백신이 고안되고 대립과 반목이라는 바이러스도 박멸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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