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윤석열 열풍, 공정사회 바라는 시민 열망 반영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9 10:00
  • 호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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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연성 독재로 가는 文 정부, 이제 끝나”

신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1월11일 기준 484일이 남았다.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는 오히려 분열상을 더 키우고 있다.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은 새해에도 정치권을 보며 한숨짓고 있다. 시사저널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를 초대해 난국에 빠진 우리 사회의 해답을 구했다. 집권 5년 차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하락세 원인과 다가오는 4월 보궐선거의 의미도 들어봤다.

“이 정부(문재인 정부)의 몰락은 확정됐다. 왜냐고? 교정(矯正)이 안 되니까. 친문(親文)이 민주당 주류가 된 후 피드백 시스템이 망가졌다. 예전엔 진보든 보수든 잘못하면 최소한 사과·반성은 했는데, 이들(현 집권세력)은 그조차 부정한다. 되레 정의의 기준을 바꿔놓았다. ‘표창장 정도는 위조할 수도, 불법 사모펀드도 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시민단체 활동하다 보면 회계부정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위선의 대명사가 됐다.”

‘진보논객’으로 불렸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냉정한 평가다. 그에게 진보정치는 애증의 대상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을 좀 더 강하게 몰아붙여야만 진보정치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1998년 우파의 ‘박정희 신드롬’을 다룬 비평집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화제를 모았을 때만 해도 그는 저자 약력의 설명처럼 ‘빨간 바이러스’ 진보 지식인이었지만, 조국 사태 이후 진보 저격수를 자처하며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진 전 교수는 지난해 말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와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를 잇따라 펴냈다. 양 진영을 평가한 것이지만, 두 책에는 ‘자유민주주의 위기’라는 하나의 생각이 관통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보수진영이 입에 달고 다니는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진 않는다.

ⓒ시사저널 이종현

“헌법, 선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 균형 요구”

1월6일 시사저널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생각의 다양성을 부정했듯 진보정권을 자처하는 현 정부 또한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때 학생운동권의 필독서였던 《전논》(전환시대의 논리)의 저자 고(故) 리영희 교수가 외친 구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진보 집권 이후 적폐청산이라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 구호)에 묻혔다는 것이다. 또 한때 진보진영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불린 프랑스어 톨레랑스(Tolrance·관용)도 진보정권에 와서 자취를 감췄다고 평가했다.

그런 점에서 진 전 교수 눈에 비친 문재인 정부 역시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정치집단이다. 그는 “진보진영에서 대통령이 법 위에 있다고 말하는 걸 봐라. 이를 버젓이 통치행위라고 말하지 않나. 이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전에 머무르고 있는 보수정치나, 1987년 민주화운동 전에 머무른 진보정치 모두 우리 사회가 극복할 대상으로 본다. 보수가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면 진보는 민족보안법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좌우 대칭이 완벽하다.

책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의 표지에 적힌 부제는 ‘저들은 대체 왜 저러는가’다. 스스로 정의한 것은 ‘자신들이 정의라는 독선, 공정을 무시하는 반칙과 특권, 자기들도 믿지 않는 평등의 위선’이다. 그러면서 진 전 교수 스스로 책을 쓴 이유를 분명하게 밝혔다.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쓴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정 통합 원한다면 법사위원장부터 넘겨야”

그는 “지금의 집권세력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586’으로 대표되는 집권 주류층은 고등학교 때까지 집단적 성격의 국가주의 교육을 받아오다, 대학에 와서 운동권이라는 또 다른 집단주의에 함몰됐다.

집권세력이 직면한 철학의 부재는 ‘민주주의 혼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은 진 전 교수의 분석이다. “저들(현 집권세력)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군사독재와 싸울 때는 구별이 없었다. 같이 싸우면 되니까. 문제는 집권 후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헌법이 말하는 삼권분립은 선출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사법부) 간 균형과 견제다. 저들은 선출됐기에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렇다면 히틀러와 뭐가 다른가. 히틀러의 독재도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않았나.”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에는 문재인 정부를 ‘연성 독재(Soft Despotism)’에 비유하는 대목이 있다. 책에서 그는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이 나치스 등장 직전 독일과 유사하다고 봤다.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히틀러는 쿠데타가 아니라 민주적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의회 내 다수가 되자 그는 다수의 힘으로 민주주의부터 파괴하기 시작했다.”

선동의 힘으로 통치하는 것은 파시즘 사회에서 나타나는 행태다. 진 전 교수는 친문의 정치적 뿌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거 사법연수원 시절 탐독했다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저자 칼 포퍼가 가장 우려한 전체주의가 지금 한국에서 나타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것이 그가 ‘문재인 정부 저격수’ ‘제1야당’을 자처하며 집권세력을 맹공하는 이유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사면 발언에 대해서도 그는 ‘정략적 행위’로 평가했다. 선거를 3개월 정도 앞두고 전직 대통령 사면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두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해선 필요성을 공감했다. 그는 진정 민주당이 통합의 정치를 바란다면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에 넘기고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관행대로 배정해 의회정치부터 복원시키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치(法治)의 회복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법치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조차 법 아래 놓인 구조다. 더 쉽게 말하면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법 자체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국뽕주의(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극단적 민족우월주의)를 심각하게 걱정했다. 그가 보기에는 K방역 역시 국뽕주의의 변형일 뿐이다.

그가 쓴 또 다른 책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의 핵심 키워드는 ‘보수정치의 부활’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건강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공화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4월 서울시장 보선과 관련해선 “야권이 단일화에만 성공하면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공정’과 ‘정의’를 바라는 시민사회의 열망이 ‘윤석열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내놓았다. 다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아직 정치 도전을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윤석열 열풍의 지속성’에 대해선 예단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면 정국’에서 드러난 여권의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지적했다. “선거에 이기려면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란 뜻으로 극단적 여권 지지층을 말함)을 버리고 중도로 외연을 넓혀야 하는데 절대 그럴 수가 없다. 이번에 이 대표가 사면 건의 발언을 했다가 그러지 않았나. 대깨문은 지금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이 사람들은 지금도 정경심 교수가 무죄라고 믿는다. 선거를 앞두고 대깨문이 ‘현금’이면 중도는 ‘어음’일 텐데 쉽게 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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