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發 차등의결권 논란, 재벌 흑백논리 바꿀까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21.02.20 12: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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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창업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 부여해 상장
오너 경영에 대한 해묵은 시각 바뀔지 주목

쿠팡의 미국 상장은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애초 목표한 나스닥이 아니라 뉴욕증권거래소를 택한 것은 의외였지만,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전 이사를 영입하는 등 사실상 미국 상장을 염두에 둔 행보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쿠팡의 상장이 관심을 모은 건 그 배경으로 차등의결권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차등의결권은 기업 창업주 및 오너 주식에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치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의 경우 이번에 29배의 차등의결권을 부여받으면서 상장 이후에도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사실 차등의결권 제도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에서 도입해 시행 중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물론이고 스웨덴 발렌베리 등 세계적 기업들의 성장 배경 중 하나로 차등의결권이 꼽힌다. 우리나라도 한때 도입이 논의됐으나 일각에서 해당 제도가 재벌 세습을 제도화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쿠팡의 미국 상장으로 도입 논란이 재점화된 것이다. ‘한국은 오너 경영 천국이고, 미국은 주주 자본주의의 메카’라는 고정관념을 흔드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됐다.

ⓒ시사저널 박정훈

김범석 의장에게 29배 차등의결권 부여

이에 따라 앞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에 대한 논쟁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주목된다. 현재로선 그동안 그래 왔듯 오너 경영에 대한 찬반논쟁의 축소판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 및 오너 경영 문제를 단순히 경영 방식 차원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내 대부분의 재벌들은 그 시작점부터 정부와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한국식 재벌 시스템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집중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과정 속에서 과거 운동권은 재벌을 민중을 착취하는 주체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개발론자 및 보수우파들은 무조건적으로 오너 경영을 옹호하고, 운동권 등 반대론자들은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풍토가 조성됐다.

문제는 약 50년이 흐른 지금도 이 같은 단순 분류법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오너 경영을 옹호하는 쪽은 여전히 해당 경영 방식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가 무너진다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반대하는 쪽은 경영을 어떻게 하느냐 여부보다 일단 ‘재벌 타도’라는 구호를 더 앞세우기도 한다.   

이번 차등의결권 논란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오너 경영과 경영권 방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주 자본주의의 본고장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오너의 경영권을 보장해 주는 제도가 있고, 이 때문에 잘 성장한 국내 기업이 투자받기 위해 미국에 상장하는 사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재벌을 보는 시각이 부정적인 이유는 개발독재 시절 부의 축적 과정에서 정부와 결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다만 경영을 잘못한 기업은 사라지고 잘한 기업은 살아남은 지금은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여부를 놓고 오너 경영을 판단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이제 우리 사회도 오너 경영은 장단점을 가진 하나의 경영 방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오너 경영의 역사를 보면 정경유착, 오너 일가의 갑질 횡포 등 부작용과 잡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인이 국민의 신뢰를 잃기도 했다. 오너의 로비를 통한 무리한 대출로 성장했다가 무너진 한보그룹 등의 사례가 그 방증이다.

반면 대규모 투자 등을 바탕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다. 사실상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두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오너 경영 방식이 뒷받침되지 않았으면 어려웠다는 게 중론이다. 현대차가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빠르게 패러다임 변화를 이뤄가고 있는 것도 오너 경영의 긍정적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한국전기차협회장)는 “미래차 개발을 위해선 다른 기업들과의 합종연횡과 공격적인 대규모 투자가 중요한데, 오너 경영이 아닐 경우 이런 것들이 수월하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의장(오른쪽)이 2020년 3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를 방문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돼”

우리 사회가 오너 경영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선 외부가 아닌 주주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기업의 주주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오너 경영에 대한 평가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미국 등 해외에서 차등의결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창업 초기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창업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떤 방식이든 주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경영 ‘방식’이 아닌 ‘결과’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엔 카카오나 쿠팡 등 시대 변화에 따라 과거와는 태생부터 다른 기업인들이 생겨나고 있는 만큼 더 늦기 전에 오너 경영에 대한 생산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흔히 IT재벌이라고 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은 국가 기획경제로 탄생한 과거 기업들과 달리 처음부터 스스로 사업을 일궈낸 인물들이다. 이들이 기업을 일궈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사회에 기여했던 것에 대한 보상과 인정이 있어야 계속 기업을 키우고 도전하려는 토양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그 예 중 하나로 이제 막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쿠팡 상장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차등의결권이다. 다만 차등의결권 도입을 위해선 먼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국내 상황은 공정경제 3법처럼 오너의 의결권을 오히려 일반 주주보다 제한하는 제도까지 생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한국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 제도나 수단이 약한 편인데 차등의결권이 경영에 매진하도록 하는 데 하나의 도움은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도입을 위해선 스웨덴 발렌베리와 같이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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