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합헌…처벌 없애기엔 일러”
  • 박선우 객원기자 (sisa3@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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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대한 첫 헌재 판단
“건전한 비판·감시 위축된다” 반대 의견도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 및 헌법재판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특정 문화예술인 지원사업 배제행위 등 위헌확인 선고에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 및 헌법재판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특정 문화예술인 지원사업 배제행위 등 위헌확인 선고에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사실을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경우를 처벌토록 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25일 형법 307조 1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심판에 대해 재판관 5(합헌)-4(일부 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재의 첫번째 판단이다.

형법 307조 1항은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단, 형법 310조에 따라 공개된 사실이 진실이고 공공의 이익에 관할 때는 처벌받지 않는다.

모 정당의 사무총장이었던 A씨는 2016년 당의 대변인인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장에 섰다. 당시 A씨는 다른 당원과의 전화통화에서 “B씨를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 등의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씨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A씨는 상고심 진행 중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냈다.

헌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 무게를 인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성숙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하지 않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어 “정보통신망의 정보는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재생산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명예훼손 표현을 찾아내 삭제를 요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피해자로선 행위의 중단, 자발적 삭제 등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실 적시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형법 310조)하고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없다고도 판단했다.

반면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사실을 적시하는 표현행위를 처벌하는 것의 문제점은 그것이 국가에 의해 수행된다는 점”이라며 “표현의 자유는 국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 할 수 있는데 국가가 형사처벌의 주체가 될 경우 건전한 감시와 비판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사와 판사 사이에서도 공공의 이익 판단이 어렵다”며 “일반 국민으로선 어떤 표현이 처벌될지 예측하기 어렵게 해 정당한 표현마저 위축시킨다”고도 덧붙였다.

헌재 관계자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헌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최초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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