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에 깜짝 놀란 조선의 눈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1.03.0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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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ㅣ손성욱 지음ㅣ푸른역사 펴냄ㅣ272쪽ㅣ1만5900원

‘이 책은 통찰력 있는 몇몇 이들만의 유람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사행은 평범했고, 어떤 사행은 특별했다. 나는 사신을 따라 청나라로 가며 사행의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북학파의 이야기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조선 사신의 경험이 다양하게 읽혔으면 한다. 가장 큰 바람은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재미있게 읽었으면 하는 것’이 저자가 책을 낸 동기다.

그렇다. 학자의 연구논문이나 경제, 경영, 예술, 기술 등 전문분야를 다룬 책이 아니라 불특정 대중을 상대로 출판된 책은 일단 재미있어 주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다. 사람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불평하는 저자의 책을 보면 십중팔구는 문장과 편집이 독자가 편하고 재미있게 읽도록 하는 배려에 매우 인색할 뿐만 아니라 심할 경우 수면제를 다량 품고 있다.

아프리카 사막의 부시맨은 하늘의 비행기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신의 물건으로 숭배했다. 1532년 스페인의 정복자(라고 쓰고 도살자로 읽히는) 피사로와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가 이끄는 군대가 페루 카하마르카에서 처음 마주쳤다. 스페인 군대는 기병 62명, 갑옷에 창을 든 보병 106명, 몇 자루 화승총이 전부였으나 곤봉과 돌팔매로 중무장(?)한 아메리카 대륙 최강 잉카제국 8만 병사들을 총소리 한 방으로 유린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키워드가 엑기스로 담긴 역사적 사실이다. 뒤쳐진 문명세계 사람들이 선진 문명을 접해 충격을 받는 순간 재빨리 깨어나지 못하면 결국 선진 문명인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1926년 남도 섬에서 태어나 자라신 필자의 어머니께서 기차라는 괴물을 처음 보고 놀라 뒤로 넘어졌던 때가 1965년이었다. 1982년 서울이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디뎠던 필자와 몇몇 친구들은 먼저 왔던 선배들로부터 도시 문명을 배워야 했는데 엘리베이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에스컬레이터에 처음 발을 올려놓는 일이 큰 난관이었다. 실습장소는 을지로 L쇼핑 빌딩이었다.

하물며 섬 아낙의 기차 충격보다 2백 년이나 앞선 1765년 청나라 수도 북경에서 천체 망원경과 자명종 시계 같은 마술을 처음 접한 조선 지식인 홍대용의 충격은 얼마나 컸겠는가. 이 시기 주로 사신으로 북경에 다녀온 사람들이 쓴 연행록은 100종도 넘는데 그 중 김창업 《노가재연행일기》, 박지원 《열하일기》, 홍대용 《담헌연기》를 3대 연행록으로 친다.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는 역사학 박사 손성욱이 3대 연행록은 물론 눈에 띄는 연행록은 다 읽고서 정리한 조선 지식인들이 북경에서 처음 접한 서양문명 탐험기다. 이들 중에는 서양의 신문물에 정신이 번쩍 깨여 개항(開港)을 열렬히 추진했던 이상적, 오경석 같은 지식인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들은 끝내 좌절 당했고, 조선은 20세기가 되자마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러한 사정에 대해 《조선의 못난 개항》 저자 문소영은 ‘1853년 미국 페리 함대가 일본을 개항시켰다. 그리고 23년 후인 1876년 일본이 조선을 개항시켰다. 일본보다 23년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개항 이후 30 년이라는 기회가 있었는데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천금 같은 30년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것’을 애석해한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집콕 시간이 많은데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는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책으로 안성맞춤이고, 같이 읽으면 매우 좋을 책이 《조선의 못난 개항》이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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