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책일 뿐, 읽기 싫으면 읽지 말자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1.03.0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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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ㅣ박균호 지음ㅣ소명출판 펴냄ㅣ344쪽ㅣ1만7000원

《오래된 새 책》, 《독서만담》, 《수집의 즐거움》,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는 모두 독서와 관련된 책이다. 한 사람의 저자가 썼다. 그는 영문학을 전공한 후 남쪽지방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데 그가 또 책을 주제, 소재로 다룬 신간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을 펴냈다. 그는 필자가 아는 한 대한민국 대표 책벌레 박균호다.

그는 주로 그가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줄거리나 해설, 어렵게 수집해 현재 서재에 보관 중인 희귀한 책들과 얽힌 사연을 이야기 하면서 명서들의 독서욕을 자극한다. 이번 신간 역시 그가 읽었거나 탐구해서 알게 된 책에 얽힌 동서고금의 깨알 같은 양념들을 버무린 고급 책 수다다.

그가 첫 수다의 소재로 고른 책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다. 그 책이 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설적인 작품이 됐는지에 대한 수다이자 탐구다. 요지는 독서계 신참들이 고수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주로 《율리시스》 아니면 《피네간의 경야》를 들이대는데 그 이유가 사실은 이 책들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너무 난해해 끝까지 읽기 어려운,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점을 들어 신참을 놀리기 위해 그러는 것이므로 속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율리시스》에 대해서는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운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역시 그의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언급 하는 바, “작가들에게 한결 같은 감동을 안겨 준 책은 이 세상에 단 한 권 뿐이다.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다. 이 작품을 깎아내리는 작가는 없다. 하지만 책 내용을 물으면 횡설수설한다. 정말로 그걸 읽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라고 비꼬았던 것이다.

우리는 특히 코엘료의 풍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크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 이전의 기득권으로 상류층에 편입된 양반 가문의 자제들이 일본과 프랑스, 미국 등으로 유학을 많이 갔다. 그런데 당시까지도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이 강해 부국강병의 기초가 되는 이공계(과학자)보다 공자왈 맹자왈의 연속선상에서 법학과, 영문과, 불문과 등 인문계를 선택하는 엘리트 유학생들이 훨씬 많았다.

서구 신문물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들 엘리트들의 과시성 서구 찬양은 당연했던 바, 그러한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인문학 강의로 유명한 모 인사께서 엊그제 “인류 3대 책은 《성서》, 《오디세이아》, 《신곡》”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불경》, 《논어》, 《삼국지》가 있으니 저 책 3권은 아무리 높게 쳐준다 해도 ‘서양 3대 책’이라고 해야 맞지 않겠는가?

그런 차원에서 소월 김정식이 직접 펴냈던 시집 《진달래꽃》 중 아직까지 남아있는 4권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사연, 그 중 한 권을 어떤 사람이 헌책방에서 헐값에 샀는데 진가는 1억 3,500만 원이었던 에피소드, 윤동주 시인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문학가들이 가장 손에 넣고 싶어했던 시집이 백석의 《사슴》이었던 내막이 구구절절 펼쳐지는 박균호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앞의 서양우대사상에 물들지 않은 신선함이 넘친다.

박균호는 백석의 시 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보다 ‘남(南)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으뜸으로 꼽았는데 그건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 시 말미에 바로 유명한 ‘그 드물다는 정한 갈매나무’가 나온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족적을 남긴 나타샤, 자야 김영한은 “1000억 재산이라고 해봐야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는 명언을 남겼고, 광화문 서촌에는 시인 박미산이 문학쌀롱 ‘백석과 흰 당나귀’를 운영 중인데 백석의 시(詩)로 담근 술도 팔고, 국수도 말아 판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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