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도 연습하면 잘 됩니다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1.03.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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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서 광장으로》ㅣ이의용 지음ㅣ학지사 펴냄ㅣ256쪽ㅣ16,000원

‘100쇄가 넘도록 많이 읽힌 소설책’이 3권 있다.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광장》(최인훈)이다. 《당신들의 천국》은 사회적 약자인 한센인들에 대한 깊은 휴머니즘과 계층간 소통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일명 ‘난쏘공’)은 역시 소외 받는 도시빈민들의 아픔과 사회적 불통을 다뤘다. 《광장》은 해방 직후 밀실과 야합, 획일이 판치며 민주주의를 위한 광장과 소통을 죽여버린 남과 북의 현실을 고발했다.

밀실의 동굴은 불통의 대명사다. 광장은 환한 빛 아래 사위가 뻥 뚫린 곳으로 각계각층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동굴이 아닌 광장에 있어야 하고, 광장에 있으려면 타인과의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더구나 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동굴에서 광장으로》으로 나오려는 소통 노력은 개인은 물론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도 필수적 능력이 되고 있다. 나아가 기업에게도 존폐를 가르는 요소는 고객, 시장, 소비자와의 소통이다. 소통에 실패하는 기업은 결국 문을 닫게 된다. 모든 기업들이 광고, 홍보(PR)에 전력투구하는 이유다.

광고, 홍보 산업이 급성장했던 1980년대 초 국내 일간지 1면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광고가 등장했다. 쌍용그룹의 일명 ‘도시락 광고’였다.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가 메인 카피였던 그 광고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층 사람이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던 초등학교 때 속이 불편하다는 억지 핑계를 대며 자신의 도시락을 내주었던 선생님의 은혜를 회고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어디에도 ‘우리 상품을 사주세요’라는 메시지는 없었다. 기업의 이미지를 끌어올려 상품의 매출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려는, 새로운 광고기법이었는데 광고를 본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쌍용그룹에 고마워했고, 이후 그런 형식의 광고가 유행하는 물꼬를 텄다.

뒤이어 쌍용그룹의 또 다른 소통기법이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원하는 시민들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지 《여의주》가 그 주인공이었다. 《여의주》 역시 기업과 상품 홍보에 여념이 없던 그때까지 대부분 기업들의 ‘사외보’와는 개념이 전혀 다르게 시민들의 건전한 교양과 상식을 선도하는 기획과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출판됨으로써 애독자가 몇 십 만 명에 이를 정도로 기염을 토했었다.

‘말이 통하는 나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소통 워크북(연습장) 《동굴에서 광장으로》를 펴낸 이의용 교수(국민대학교)는 당시 쌍용그룹의 ‘도시락 광고’와 사외보 《여의주》 발행을 진두지휘 했던 ‘홍보실 이 실장’이었다. 기업소통전략가 1세대로서 대학 강단에 섰던 그가 끊임없이 ‘소통’을 가르치고 연구한 결과가 《동굴에서 광장으로》이다.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 직장인, 부부, 공동체 구성원들이 이 워크북으로 소통을 연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자타공인 소통 전문가인 그가 이 책을 출판한 이유다.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

그날도 선생님은 어김없이

두개의 도시락을 가져 오셨읍니다.

여느때는 그중 한 개를 선생님이 드시고

나머지를 우리에게 내놓곤 하셨는데,

그날은 두 개의 도시락 모두를 우리에게 주시고는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하시며

밖으로 나가셨읍니다.

찬물 한 주발로 빈속을 채우시고는

어린 마음들을 달래시려고

그 후 그렇게나 자주 속이 안 좋으셨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은 긴 세월이 지난 뒤였읍니다.

선생님의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고,

선생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채운 우리는

이제 50고개를 바라보는 왕성한 중년들.

그 옛날 선생님의 꿈나무였던 우리는

기업에서, 교단에서,

공직에서, 농어촌에서,

연구기관에서, 봉사단체에서

나름대로 사람 값을 하고자 열심히 살고 있읍니다.

살아 계신다면,

걸어오신 칠십 평생이 한 점 티 없으실,

그래서 자랑과 보람으로 주름진 선생님의 얼굴에

아직도 피어계실 그 미소를 그리면서

그때의 제자들이 다시 되고픈 마음입니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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