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참 바보였습니다”…광양시장 지인의 ‘자조’ 왜?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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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게시판에 광양시장 친인척 특혜채용 의혹 담긴 글 올려 파문
“내 딸은 여기저기 이력서 넣느라 고생했는데…시장 조카들은 다 근무”
광양시 “시장 친인척 채용했지만 특혜 없어”…민주당, 정현복 시장 제명

최근 부동산 ‘이해 충돌’ 논란에 이어 정현복(72) 광양시장의 친·인척 부정채용 의혹 정황이 담긴 글이 등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광영동’이라는 필명을 쓴 이 시민은 2일 오전 광양시 공무원노동조합 게시판에 ‘고백합니다. 나만 참 바보였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게시 글은 정 시장의 친인척 특혜채용 의혹에 대한 막전막후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조와 함께 홀연단신으로 취업전선에 나선 딸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도 피력하고 있다. 

게시자는 정 시장과 사석에서 식사를 하고, 그의 동생과도 서슴없이 전화 통화를 할 정도로 시장 일가와는 막역하게 지내는 인물로 추정된다. 

최근 이해 충돌 논란에 휩싸인 정현복 광양시장이 1일 오전 시청 상황실에서 열린 4월 중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광양시
최근 이해 충돌 논란에 휩싸인 정현복 광양시장이 1일 오전 시청 상황실에서 열린 4월 중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광양시

게시자가 고백을 시작한 것은 친인척 채용 의혹 진위에 대한 정 시장 형제의 입장 표명 대목이었다. 그는 “이 문제가 터지기 전에 많은 소문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저는 다 근거가 없는 헛소문이라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사실 얼마 전에 정 시장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소문이 돈다고 했더니 (시장 동생은)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면박만 주었다”고 했다. 또 “시장님과 사석에서 저녁을 하게 됐을 때 구체적인 소문이 돈다고 했더니 마찬가지로 근거가 없다고 했다”고 적었다.

게시자는 이어 “그런데 어제 또 채용관계 뉴스를 보고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며 “심지어 채용하는데 수천만원까지 줘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친구가 거론한 실명 이름을 찾아 봤더니 모두 맞았다”고 했다. 

게시자의 허탈감은 계속됐다. 그는 “동생 딸, 처형 딸, 정 시장 누나 딸 아들 등 다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집은 세 가족이 모두 근무하고 있고 또 읍내에서 XX가게를 운용하고 있는 아무개씨 딸도 오래전에 근무하고 있었고 (그의) 부인은 시청 행사를 많이 따서 일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또 어떤 측근은 곧 딸이 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고 지적했다.  

게시자는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부정(父情)과 부정(不正) 사이에서 필부가 겪는 내적 갈등을 나타내며 글을 마무리했다. 그는 “그동안 내 딸은 여기저기 이력서 들고 다니느라 고생을 했는데, 나도 돈 좀 주고 들어 보낼 것을 하는 못된 생각이 들었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저와 같을 것이다”라고 씁쓸해 했다.  현재 이 글은 게시판에서 사라졌다.  

실제 전남의 한 지자체에서 근무한 A씨는 2일 정 시장의 친인척 등 5명이 광양시에 부정 채용됐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전남경찰청에 제출했다. A씨는 고발장을 통해 “정 시장의 친인척 4명과 측근의 배우자 1명이 각각 청원경찰과 공무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며 “이들을 불법 채용하기 위해 직권을 남용해 공정한 채용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정 시장의 가까운 친인척 가운데 정 시장 취임 이후 선발된 청원경찰은 2명, 공무직 공무원은 1명이다. 청원경찰 2명은 정 시장 남동생의 딸과 정 시장 누나의 아들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결원이 생긴 청원경찰 5명을 뽑는 공개선발에서 동생 딸은 민간인 신분으로 지원했고, 누나의 아들은 2018년 1월부터 공무직 공무원으로 일해 오다 지원했다. 이들은 1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해 지난해 11월부터 시 산하 사업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무직 공무원 1명은 정 시장의 사돈의 딸로 2017년 하반기 공무직 공무원으로 선발됐다. 고발자가 지명한 나머지 2명 중 한 명은 정 시장 집안의 먼 친척의 딸로, 기간제 공무원으로 일하다 정부 방침에 따라 2018년 공무직으로 전환됐다. 정 시장 측근 인사의 배우자는 2015년 청원경찰로 선발돼 근무하고 있다. 

이들 5명은 모두 정 시장의 임기가 시작된 2014년 7월 이듬해부터 지난해까지 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광양시 관계자는 “시장 친인척을 채용한 것은 맞지만 공정한 절차를 거쳤다”며 “외부인사 1명과 공무원 3명으로 구성된 면접관들이 ‘블라인드 면접’을 하는 등 채용 과정에서 특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 시장은 2일 입장문을 내고 “법적 책임을 질 일이 발생한다면 즉시 시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조금도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이해 충돌’ 논란을 빚은 정 시장을 제명했다. 제명은 당이 결정할 수 있는 최고 수준 징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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