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주인 몰래 사유지에 고압선 깐 한전과 DL이앤씨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1 07:3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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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012년 인천공항철도 공사 과정에서 매설…DL 측 “부도난 하청업체 책임”

서울 용산구 동자동 43-○○○번지 땅 주인 정아무개씨는 3월말 부지를 개발하기 위해 땅을 파다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특고압 전력선이 지하에 매설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착공신고를 한 정씨의 땅(158.7㎡)에는 계획대로라면 올 11월 지하 2층 지상 8층, 연면적 734.19㎡ 규모의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터파기 과정에서 전력선이 발견됨에 따라 현재 공사는 전면 중단됐다.

정씨는 이곳에 전력선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해당 시설물은 인천공항철도 서울역 공사와 관련이 있었다. 서울역과 인천국제공항을 잇는 길이 63.8km의 인천공항철도는 2001년 착공에 들어가 2018년 완전 개통됐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한전에 전기 사용을 신청한 곳은 중견 토목회사 한미기초개발이었다. 한전 전기사용신청서에 따르면, 한미기초개발은 2012년 4월 중소 전기공사업체 Y사를 통해 특고압 전력선을 설치한 뒤 한전으로부터 약 300kW의 특고압(2만2900V) 전기를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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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70cm가량 파자 드러난 특고압 전력선. 공사 관계자들은 “무엇인지 모르고 포클레인으로 찍어 눌렀다면 심각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DL이앤씨(옛 대림산업) 하청업체가 전력선 공급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한전은 땅 주인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시사저널 임준선

한전, 땅 주인 동의 없었는데 왜 전력선 개설?

쟁점은 선로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땅 주인의 동의 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느냐다. 한전으로부터 설치물 위탁을 받는 S사 관계자는 “특고압 시설물은 굉장히 위험한 시설이다. 더군다나 땅 주인이 훗날 해당 토지를 개발할 게 뻔한 일인데, 동의 없이 공사를 진행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며 공사 진행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한전이 개인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 해당 사업장 바로 앞에는 서울역과 남영동을 지나가는 대로가 있다. 한전이 설치한 300KVA 용량의 고압변압기도 이곳에 있다.

전기를 신청한 한미기초개발은 바로 옆 인천공항철도의 서울역 공사를 담당한 DL이앤씨(DL E&C·옛 대림산업 후신)의 하청업체였다. 정리하면 내용은 이렇다. DL이앤씨는 인천공항철도 서울역 시공권을 따낸 후 한미기초개발과 하청계약을 맺는다. 실제 공사를 책임진 한미기초개발이 전력선 설치를 한전에 의뢰했고, 그 과정에서 땅 주인 몰래 관련 시설물이 지하에 매립된 것이다. 얼핏 보면 별거 아닌 일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특고압 전력선은 취급주의를 요하는 시설물이다. 부득이하게 선이 통과할 경우 땅 주인의 승낙을 구하는 게 상식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전과 한미기초개발 간 맺은 지중(地中)공급시설 설치공간 제공협약서에도 명시돼 있다. 이 서류에는 ‘건물소유자와 토지소유자가 상이하거나 공유자가 있을 경우 소유권 관련자 전원과 협약 체결’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해당 서류에는 한미기초개발 대표자 직인만 찍혀 있을 뿐 땅 주인 정씨의 날인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미기초개발은 그렇다 쳐도 한전이라도 계약 과정에서 문제를 삼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전 측 관계자는 “예전에 벌어진 일이라 현재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면서 “현 상황만 놓고 보면 당사의 과실이 인정되기에 빠른 시간 내 관련 시설을 옮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사를 책임졌던 DL이앤씨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림산업 시절인 2012년 DL이앤씨는 정씨의 땅으로 공사차량이 지날 수 있도록 토지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임대기간은 2011년 7월부터 2015년 1월말까지 3년7개월이었다. 특고압 전력선은 당시 공사차량이 드나들던 땅 아래에 설치됐다. 땅 주인 의뢰로 여기다 근린생활건물을 지으려 했던 김정식 와이드산업개발 소장은 “DL이앤씨와 체결한 임대차계약서에 보면 나대지로 돼 있는 임차인 소유의 땅에는 어떠한 시설물도 설치할 수 없도록 돼 있고, 당시 대림산업은 구두상으로 차량 통로 외에는 어떠한 목적으로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DL이앤씨 처사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공사를 책임진 하청업체가 전기를 어디서 끌어오는지 원청인 DL이앤씨가 몰랐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만약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터파기에 들어가 포클레인이 해당 고압선을 찍어 눌렀으면 엄청난 인명 사고가 났을 것”이라면서 “DL이앤씨는 사용한 토지를 원상 복구하겠다는 약속도 어겼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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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DL이앤씨는 인천공항철도 서울역 공사를 진행하면서 정씨의 땅으로 공사차량을 지나가게 했다. 지금 GTX-A 구간 공사도 DL이 주관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한전 소유의 고압변압기와 공사현장을 연결하는 특고압 전력선ⓒ다음지도·시사저널 임준선

DL이앤씨는 지금도 해당 부지와 인접한 곳에서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A 서울역 구간(5공구) 공사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공사에 필요한 전기 역시 여전히 해당 부지 밑에 설치된 특고압선로를 통해 제공받고 있다. 현재 이 공사의 DL이앤씨 하청업체는 우원개발이다.

당초 DL이앤씨가 공사를 따낸 뒤 2019년 9월 한전에 전기 사용을 신청했으며 지난해 5월 하청업체인 우원개발로 전기 사용 계약자가 변경됐다. 다시 말해 우원개발은 예전 DL이앤씨의 하청업체가 불법으로 매설한 시설물을 통해 전기를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다. 우원개발이 지난해 5월부터 올 3월18일까지 약 10개월간 한전에 낸 전기사용료는 5500만원가량 된다. 이에 대해 DL이앤씨는 “최초 전기 사용을 신청한 업체가 이듬해 부도나 한영토건이라는 회사로 하청을 변경했고 그 업체가 2015년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설비 폐쇄 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토지 개발에 문제가 없도록 땅 주인과 협력해 한전 쪽에 정보공개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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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혁신도시에 위치한 한국전력과 서울 돈의문뉴타운에 들어선 DL그룹(옛 대림그룹) 본사 사옥. 맨 오른쪽 사진은 정씨 소유의 서울 용산구 동자동 부지ⓒ시사저널 임준선·최준필

관할 지자체 서류에도 전력선 표시 안 돼

특고압 전력선이 사유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한전 또는 DL이앤씨가 관할 지자체인 서울 용산구청과 상의했는지도 의문이다. 땅 주인 정씨는 용산구청에 비치된 지장물도, 현황측량도에 관련 사실이 기재돼 있지 않은 것을 근거로 들며 “한전이나 시공사가 관할 구청에 해당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공사했다”고 주장한다. 이들 서류에는 상·하수도, 통신시설 매립 매설 사실은 기록돼 있다. 반면 전력의 경우 고압변압기 설치 여부만 표기돼 있을 뿐, 여기서 나온 특고압선로가 어디를 지나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정씨의 사유지로 고압선로가 지나가기 위해선 공공 소유의 도로를 지나가야 하며 반드시 해당 관청으로부터 매설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그 과정이 생략됐다면, 이 역시 한전과 건설사가 불법적으로 특고압선로를 매설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씨는 한전에 대해서는 관련 시설의 즉각적인 철거와 공사 착공 지연에 따른 보상, 선로 개설에 따른 사용료를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DL이앤씨에는 토지임대차 계약 위반(불법 토지 사용과 원상 복구 약속 미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DL이앤씨는 “하청업체가 해당 토지 아래로 고압선 매설 공사를 하는지 전혀 몰랐으며, 지금 현장에서 쓰고 있는 전기가 과거 선로였는지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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