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선거 패배 원인은 잇따른 ‘개혁의 붕괴’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4.17 10:00
  • 호수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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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수습의 첫걸음은 ‘국민이 원하는 개혁’ 파악

더불어민주당의 4·7 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이 계속되고 있다. 가장 분명한 이유는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이다. 지난 3월2일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가장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 원인은 개혁 붕괴에 있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부터 24차례에 걸쳐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후임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2월4일 야심 차게 25번째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며 집값 안정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역시나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LH 사태 수사 과정에서 LH 내부보다 지방자치단체 등 공직사회 곳곳에서 더 많은 투기 사실이 계속 적발되고 있다. 공급 계획과 세금 개편안 제시 등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게 퍼진 부동산 투기는 국민의 정책 기대감을 단번에 앗아가버렸다.

이번 선거는 부동산과 LH 사태 여파에 따른 분노가 표심에 크게 담겼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어느 분야에서든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못한 정부·여당에 대한 준엄한 평가라고 봐야 한다. 비단 부동산뿐 아니라 대북 정책, 검찰 개혁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혁신적으로 접근했어야 할 이슈 대응을 충분히 하지 못한 영향이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민주당 지지율은 서울과 부산에서 국민의힘보다 낮게 나왔다. 2018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던 이유는 개혁에 대한 기대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 4년 차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러니 민주당에 대한 평가마저 무너진 것이다. 선거 후 민주당은 패배 수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간의 개혁 부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뒤돌아보아야 제대로 된 해법 도출도 가능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개혁 노선은 어디서부터 얼마나 무너져왔던 것일까.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4월9일 오후 국회에서 4·7 재보선 참패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며 인사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현장과 내내 헛돌았던 부동산 정책

첫 개혁 붕괴는 ‘부동산 정책’이었다. 정부·여당은 시종일관 부동산 규제 강화책을 내놓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핵심은 공급 확대와 세금 인상이었다. 고가 주택에 대한 공시지가 현실화, 고가 주택 보유자에 대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인상 그리고 양도세 강화 등을 적극 피력했다. 그러나 오히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국민 여론이 나빠지고 집단적 반발이 야기되고 나서야 정부는 신도시를 지정하고 대규모 아파트 공급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전·월세 임대차 보호법도 통과시켰다.

문제는 국민의 평가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의 의뢰를 받아 4월9~10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최근 2~3년 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 ‘정부 정책 불신’이 47.5%로 가장 높았다. 중도층의 응답률은 53.2%에 달했다. 20~30대도 집값 상승 원인으로 정책 불신을 꼽은 응답이 ‘투기심리’보다 높았다(그림①).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해 공급 확대와 세금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개혁의 번지수가 틀렸던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개혁 방향은 부동산 ‘환경’의 개혁이었다. 부당 거래와 불공정이 판치지 못할 시장 개혁을 원했지만, 정부 정책은 핵심으로부터 비켜 서 있었다.

공감 못 산 대북 정책·검찰 개혁도 심판 부추겨

두 번째 개혁 구멍은 ‘대북 정책’에서 뚫렸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남북관계였다. 그해 2월에 있었던 평창동계올림픽은 남북관계 활성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은 정부의 남북관계 진전이 못마땅했지만, 국민 다수에게 남북관계는 반가운 개혁이었다. 그전까지 핵실험 등 도발로 인한 유엔의 대북 제재 속에서 남북관계는 갑갑한 교착상태였다. 그러다 2018년 들어 남북 사이 교류가 급격히 활발해지고 한반도 평화의 징검다리가 만들어졌다. 4월 판문점 선언, 9월 문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까지, 군사적 긴장과 대치 국면으로 얼룩졌던 남북에 평화의 무지개가 내리던 때였다. 민감한 현안까지도 논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북·미 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관계는 점차 꼬여갔다. 한국갤럽이 2020년 10월10~12일 실시한 자체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물어본 결과,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는 33%, 부정평가는 50%로 나타났다. 중도층의 부정평가는 전체보다 높은 52%였고, 20대는 54%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섰다(그림②). 변화한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의 개혁 방향과 속도에 국민 다수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였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개혁이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는 분야가 ‘검찰 개혁’이다. 보궐선거 이후 민주당 내 수습 방안을 논의하며 가장 자주 등장한 이름은 ‘조국’이었다. 지도부 비판에 나선 초·재선 의원들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지도부의 온정주의 때문에 혹독한 심판을 받았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올해 출범했지만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여전히 냉혹하다. 후임 추미애 전 장관에 대한 평가는 더욱 냉담했다.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지난해 10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재직 당시 업무 수행 평가를 물어본 결과, 긍정평가는 32%, 부정평가 56%로 나타났다. 중도와 2030의 평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30대에서는 부정평가가 전체보다 더 높았다(그림③). 추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난 1년 가까이 검찰 개혁을 주도했지만 대중의 절반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질적인 검찰 개혁의 성과를 기대했지만, 임기 내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소모적 갈등만 더욱 조명되고 말았다.

보궐선거 결과는 여당의 개혁 부진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하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에 표를 몰아주었던 유권자 표심은 지속적인 개혁에 대한 기대였다. 개혁 법안이 이른바 국회 발목 잡기 때문에 통과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교통정리였다. 그렇지만 민주당과 정부는 국민의 개혁 요구에 제대로 화답하지 못했다. 부동산 정책은 헛발질의 연속이었고 남북관계는 2018년의 판타지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검찰 개혁은 본질적인 성과 없이 ‘윤석열 때리기’에만 급급했다. 향후 해법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개혁을 하겠다고 달려들 것이 아니라, 정말 국민이 원하는 개혁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진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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