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살아 있다는 것은 모험 계속하는 것”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6 11: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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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스페인 음식 찾아 나선 《돈키호테의 식탁》

“그 안에 무엇을 넣든, 대형 파에야 판을 밖에 내놓는다는 것은 잔치의 선포와도 같다. 아버지의 홍어 항아리처럼. 뚜껑이 열리고 홍어 냄새로 잔치가 시작되듯, 사람들은 파에야 연기를 보고 잔치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린다. 자루째로 부어지는 빵 조각들, 양파도 한 자루, 초리소도 한 자루, 그걸 뒤섞기 위해 삽이 동원되고,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풍경이었다. 이날의 음식은 모두 공짜였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여행자도 동네 토박이도, 이편저편 가릴 것도 없이, 모두 함께 지켜보고 모두 함께 기다려서 먹는 솥단지의 음식. 그것이 진짜 축제의 음식이다.”


소설가 천운영씨가 돈키호테와 그가 먹었던 음식을 찾아 나선 에세이 《돈키호테의 식탁》을 펴냈다. 천 작가는 《돈키호테》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스페인과 한국을 넘나들며,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쓰던 17세기와 지금 21세기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쳐 간다. 때로는 판소리의 소리꾼처럼, 때로는 서커스나 무성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 변사처럼, 때로는 《돈키호테》의 텍스트에 심어진 시대성을 포착하는 해설자의 날카로움으로. 그리고 한국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즉 자신의 손과 혀와 가슴이 간직한 우리 음식의 이야기와 포개어 놓는다.

《돈키호테의 식탁》천운영 지음 / 아르테 펴냄 / 364쪽 / 1만7000원
《돈키호테의 식탁》천운영 지음 / 아르테 펴냄 / 364쪽 / 1만7000원

‘나누는 밥상, 진짜 잔치의 힘’ 일깨우는 내용도

“좀 미친 짓이었다. 돈키호테와 같았다. 스페인어 전공자도 아니고 요리사도 아닌 내가 돈키호테의 음식을 찾아 나선다는 것. 그건 어떤 외국인이 전주에서 콩나물국밥 한 그릇 먹고서는 그게 《홍길동전》에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전국 팔도를 누비며 홍길동의 자취를 쫓아 조선시대 음식을 찾아다니는 일과 비슷했다. 반벙어리 까막눈 주제에. 무려 400년 전 음식을 먹어보겠다니. 그런데 그만둘 수가 없었다. 《돈키호테》에 빠져들수록, 그 길을 따라다닐수록, 더 깊게 빠져들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문단에 이름을 올린 천 작가는 2013년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스페인에서 머무를 기회가 있었는데, 혼자 들른 라만차 지역의 한 허름한 식당 메뉴판에 있는 ‘돈키호테 어쩌고’라고 설명이 붙은 음식 때문에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음식을 매개로 《돈키호테》 탐독의 길로 들어간 천 작가는 이국의 음식 세계와 더불어 《돈키호테》의 깊은 곳에 깔린 슬픔과 기쁨의 미로를 제대로 만난다.


“견과류는 치즈와 함께 전식으로 주로 먹지만, 설탕이나 꿀을 입히면 후식으로 손색이 없다. 말하자면 꿀땅콩. 사람들이 꿀도토리와 치즈 안주에 술잔을 돌리고 있는 사이, 충분히 배가 부른 돈키호테는 도토리를 한 움큼 쥐고서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그렇게 소환된 황금시대의 추억. 돈키호테의 일장 연설이 또 시작된다. 황금시대란 무엇이냐.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살던 시대.”


천 작가는 다 함께 음식을 차리고 나누어 먹고 삶을 지탱할 힘을 얻는 진짜 잔치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것을 《돈키호테의 식탁》을 통해 환기시킨다. 《돈키호테》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진정한 긍정으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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