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지 않는 산재 사고 “‘누더기 법’ 만든 정부·여당 1차적 책임”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4 16:0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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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경제적 논리 아닌 인권에 관한 문제로 접근해야”

평택항에서 벌어진 23세 고 이선호씨 사고 등 계속되는 산재 사고를 두고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1월 국회에선 이른바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다. 법의 취지는 기업 측의 안전관리 부실 등의 이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경영책임자가 직접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의 경제계 눈치 보기로 인해 중요한 내용이 대거 빠진 ‘누더기 법’이 탄생했고, 여전히 산재 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1월 통과된 법은 우선 명칭도 최초 논의됐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기업’이 빠졌다. 게다가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에서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간 적용을 유예했다. 2019년 국내 제조업의 산재 사고 사망자 206명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은 42명(20.4%), 50인 미만 사업장은 164명(79.6%)이나 됐다. 벌금에 하한선도 정해지지 않았다.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의 범주엔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이사로 명시됐다. 실제 기업 오너는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공무원 처벌 조항, 사고가 반복되는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모두 빠졌다.

노동계에선 당장 “전혀 실효성 없는 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국회 통과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어려운 법안을 여야 합의로 마련했다는 데 일단 의미를 두고 싶다”(이낙연 대표), “이번 제정안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해 온 산업현장의 근본적 변화는 물론 공중이용시설에서의 시민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를 국회가 반영한 결과”(김태년 원내대표)라고 치켜세웠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5월12일 평택항 故 이선호씨 사고 현장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5월12일 평택항 故 이선호씨 사고 현장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여당에서도 중대재해법 개정 움직임 나와

선호씨 사고가 부각되자 민주당은 사고 현장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 사고에 민주당이 무한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 통과를 위해 단체 단식을 벌이는 등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던 정의당 여영국 대표는 “정부·여당이 정말 염치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시행령 제정에서 ‘기업 의견을 적극 반응하겠다’는 등의 시그널을 줘 기업이 안전불감증에 걸리도록 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계속되는 산재 사고의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며 “현장에서 최고위를 열고, 다른 대책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대국민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는 늦어도 6월까지 시행령을 마련해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법의 방향성에 대해 “이 문제는 경제적 논리를 내세우기에 앞서 인간 생명, 인권에 관한 문제라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영세한 사업장이라고 면제 혹은 유예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영세 사업장이 안전관리를 잘 해내서 노동자의 권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의 방향으로 전환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한편 민주당에서도 기존 통과된 중대재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온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5월13일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법인과 경영책임자에게 부과하는 벌금형의 하한(1억원)을 정하고, 판사가 벌금형을 선고하기 전에 산재사고 전문가, 범죄피해자단체 등으로부터 양형에 관한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양형특례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기업에 ‘규제를 위반하면 더 큰 비용을 치른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게 노동자의 목숨값을 올리고 인간의 존엄과 평등권을 보장하는 길”이라며 “제2의 김용균, 제3의 이선호가 나오지 않도록 국회가 법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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