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풀린다면 대통령 욕하라”던 文대통령 어디로?
  •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4 15:30
  • 호수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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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오만·피해자 의식으로 과거 사로잡힌 정부, 정치권력 시금석인 '표현의 자유' 왜곡

1983년 11월 미국의 남성 도색잡지 《허슬러》가 ‘제리 폴웰이 첫경험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패러디 광고를 게재했다. 제리 폴웰은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를 이끈 복음주의 목사다. 광고에는 폴웰이 술에 취해 파리가 들끓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어머니와 첫 경험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맨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패러디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폴웰은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영화 《래리 플린트》로도 옮겨진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유명한 판결을 낳았다. 당시 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는 보수사법의 거장으로 불렸지만, 그는 폴웰이 아닌 플린트의 손을 들어줬다. 1988년 최종심 판결문에는 “미국 시민의 특권 중 하나는 공적인 인물이나 정책을 비판할 권리”라는 내용이 담겼다.

신전대협이 5월9일 전국 100개 대학 등에 붙인 문재인 정부 풍자 대자보ⓒ신전대협

“미국 시민의 특권은 공적 인물 비판할 권리”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지를 뿌린 시민단체 대표가 모욕죄로 고소당했다가 취하된 사실이 보도됐다. 대통령은 공인 중 공인이다. 게다가 모욕죄는 친고죄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대통령이 개인을 고소하게 됐을까. 전단지에는 ‘북조선의 개, 한국 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문구가 적힌 일본 잡지가 인쇄돼 있었다. 청와대는 “국격과 국민 명예, 남북관계 등 국가 미래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해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익과 관련되었기에 고소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국익 또는 공익과 관련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5·18 왜곡행위를 예로 들어보자. 북한군 ‘광수’로 지목된 개인들이 명예훼손죄 소송에서 승소하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로 전두환이 법정에 섰지만 5·18 왜곡행위 자체가 처벌되는 일은 없었다. 지만원과 김대령 등이 5·18을 고정간첩과 북한 특수군이 연합해 일으킨 폭동으로 왜곡하고 있더라도 학문의 자유로 보호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사법이다.

전단지 살포자에 대한 고소는 대통령이 갖는 공인으로서의 지위는 물론 전단지 내용에 비춰봐도 어울리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이 사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그간 비판자들의 입을 막기 위한 고소·고발을 남발해 왔다. 2018년 우파 유튜버 우종창씨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소문 유포로 고발됐고, 2019년에는 중앙일보가 ‘김정숙 여사의 버킷리스트?’라는 기사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당했다. 또 지난해 초에는 ‘민주당만 빼고’라는 경향신문 기고문을 이유로 글을 쓴 본인과 신문이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물론 이 같은 일이 현 정부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표현의 자유 신장에 이전 정부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국경없는기자회가 꼽은 언론 자유 순위는 2016년 70위에서 2020년 42위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일면의 평가다. 지난해 8월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진보정권이 권위주의적이며 외부 비판을 잘 수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그 근거로 위의 세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국경없는기자회와 이코노미스트의 의견을 종합하면, 현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표현의 자유 신장에 적극적이지만 자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는 데는 인색하다는 소리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2월 JTBC 《썰전》에 출연한 장면ⓒJTBC캡쳐

‘표현의 자유’ 외치는 文 정부, 비판에는 인색

왜 그랬을까. 결론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과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독선과 오만이다. 민주당의 주력 정치인은 민주화운동 출신이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보편적 정의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었다기보다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적 전선에서 반민주 세력을 절대악으로 간주해 패퇴(敗退)시키는 과정에 더욱 가깝다. 그 과정에서 운동 진영의 가치와 목표는 절대선에 해당했고, 이러한 인식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됐다. 양당제 정치 구도 속에 민주당의 반대편은 여전히 반민주 독재 세력에 해당했던 것이다.

더욱이 ‘나만 옳다’는 독선과 반대 의견을 ‘악’으로 치부하는 오만은 과거 어느 민주계 정당보다 지금이 더욱 강하다. 연 1700만 명이 참가한 촛불집회의 성과를 민주당이 대선 승리를 통해 독점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피해자 의식이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관용과 아량의 여지도 커진다. 위해의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관용과 아량 대신 위협을 느끼는 것은 권력이 정당성을 갖지 못했을 경우다. 그때 권력은 반대자의 비판을 폭력으로 억압한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다 득표라는 민주적 정당성에도 비판자에 대한 관용이나 아량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위협으로 간주해 처벌하려고 한다. 과거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피해자 의식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감행한 검찰 개혁과 윤석열 검찰총장 몰아내기 또한 냉정한 상황 판단과 현실 인식보다는 과거 형성된 검찰에 대한 적대감과 피해자 의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표현의 자유는 정치권력의 권위주의적 속성을 판가름하는 시금석이다. 민주화운동 시기에 내건 가치와 이념은 적과 싸워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리는 가치여야 한다. 현 정부가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대통령 스스로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것을 자부한다면, 권력에 대한 비판은 관용하되 5·18 왜곡행위나 반인륜적 혐오 표현 등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맞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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