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리 끊어달라” 故 이선호씨 가족 절규에도…교훈 못 얻은 동방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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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씨 부친 “죽음의 일터로 내몰리는 젊은이들, 어른의 책임”
원청 동방, 안전규정 여전히 미비한데도 ‘작업 중지 명령’ 해제 요청
평택항에서 일하다 300kg 무게 철판에 깔려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5월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평택항에서 300㎏ 무게 철판에 깔려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5월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평택항에서 일하다 300㎏ 무게의 철판에 깔려 사망한 고(故) 이선호씨가 세상을 떠난 지 3주가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추모 물결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진상 규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한 상태다. 

그 사이 원청업체는 안전 규정을 강화하지도 않은 채 당국에 작업 재개를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선호씨 유가족은 일터에서의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비극적 행렬을 제발 멈추게 해 달라고 '절규'하고 또 '호소'했다. 이제는 정치권과 기업, 관계 당국이 모두 이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수 좋으면 살고, 아니면 죽음 내몰려야 하는 현장"

"우리가 살려고 직장에 가는 것이지 죽으려고 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13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이선호씨 추모 문화제에 참석한 아버지 이재훈씨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씨는 "일하러 갔다가 일 마치고 집에 가는 사람들은 재수가 좋은 사람들이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은 재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게 오늘날 산업 현장의 모습"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이 일을 하다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는 생각도 못하고 일터로 내몰리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라며 "이 친구들은 학비에 보태고 용돈벌이를 하려고, 돈 몇 만원 벌러 간 곳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그 일을 시킨 사람이 어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 선호씨가 사망한) 사건의 모든 원인은 원청에서 비용을 절감하고 인건비를 좀 줄이겠다고 적정한 안전요원을 투입하지 않은 것"이라며 "많은 돈도 아니고 하루 10만원만 들였으면 내 자식은 죽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기업과 정부에 노동계 현실을 직시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 데 대한 성찰을 요청했다. 이씨는 경영계를 향해 "대체 왜 이런 식인가. 10만원 아껴서 얼마나 더 부자가 되려고 그러시나. 자기 성찰을 하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을 향해서는 "이윤만 밝히는 기업가보다 안일에 빠진 공무원이 더 나쁜 사람들"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자식을 잃은 아픔은 깊은 나락에도 떨어지게 하지만 분노도 함께 느끼게 한다"며 "수많은 유족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강하게 촉구했으나 기업과 정부의 반발로 사람을 살릴 수 없는 형편없는 법이 됐다. 그럼에도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시행령에 자신들의 책임을 덜어내는 내용을 넣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호씨는 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화물 컨테이너 내부 정리작업을 하던 중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선호씨의 고유업무는 동·식물 검역이었지만, 원청 작업자의 지시로 나무조각을 정리하던 중 변을 당했다. 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 등이 있어야 하지만 당시 사고 현장에서는 이같은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이씨는 안전모를 비롯한 기본적인 안전 장비도 지급받지 못한 상태였다. 

5월12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운영동 입구에서 주식회사 '동방' 관계자들이 지난달 발생한 고(故) 이선호 씨의 산재 사고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5월12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 운영동 입구에서 주식회사 '동방' 관계자들이 지난달 발생한 고(故) 이선호 씨의 산재 사고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일 만에 사과한 원청…'작업 재개' 요청하며 여전히 안전불감증

성경만 동방 대표이사는 지난 12일 오후 "한 가족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삶을 지탱하는 희망이었던 청년이 평택항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유가족의 고통과 슬픔 앞에 정중한 위로와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사측은 모든 작업 현황과 안전관리 사항을 재점검하겠다며 사고 발생 20일 만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공식 사과를 내놓기 전 이미 안전대책 규정이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에 작업 재개를 요청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수위는 더 높아졌다. 

14일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입수한 이번 사고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동방은 사고 발생 12일 만인 지난 4일 노동부에 작업 중지 명령을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노동부 평택지청은 지난달 22일 사고가 발생한 직후 구두로 부분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노동부 검토 결과 동방은 사업장 전반의 안전 조치 계획과 유사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무리하게 작업 재개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노동부가 동방의 요청을 거부하면서 작업 재개는 불발됐다. 

노동부는 동방의 법규 위반 10건을 사법 조치하고, 7건에 대해서는 1억9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사고 현장 감독과 법 위반 사례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1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선호 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5월1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선호 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정치권도 애도 물결…文 대통령 "약속 못지켜 송구"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선호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시설 안에서 일어난 사고임에도 사전 안전관리 뿐 아니라 사후 조치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을 더 살피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선호씨 부친 이재훈씨는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있어야겠지만 제발 이제는 이런 사고를 끝내야 한다"며 "이번 조문으로 우리 아이가 억울한 마음을 많이 덜었을 것"이라면서 문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지난 12일 사고 현장인 평택항을 찾아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유가족 앞에 고개를 숙였다. 현장을 찾은  송영길 대표는 "일용 노동자들이 소모품처럼 쓰러져가는 현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내년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에 보완점이 없는지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강병원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2030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마련했는지 반성해야 할 시점"이라며 "서울아파트 10억짜리를 영끌로 사면서 대출 규제가 문제라는 2030의 목소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청년은 소위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에 살면서 월세 수십만원을 내야 하는 수백만의 청년들"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동행한 선호씨 부친은 여당 지도부를 향해 "도대체 4년 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얼마나 더 죽이려고 그러십니까"라고 소리쳤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정세균 전 총리 등 주요 여권 당권주자들도 선호씨 사망에 애도를 표하며 노동 환경 개선에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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