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음 텃밭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3 11:0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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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예술적 여정을 담은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

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시인은 시를 건져내기 위해 어떤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워야 하는 것일까. 문학을 꿈꾸든 아니든, 시의 원류에 대한 궁금증은 있을 것이다. 최근 마종기와 나희덕이 자신의 예술적 근원에 대한 소심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중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을 주목해 봤다.

“이따금 그림이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또는 그림 속에서 어떤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때가 있다. 회화는 시각예술임이 분명하지만, 시나 음악에 한결 가까운 그림들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칸딘스키, 미로, 로스코 같은 화가들이 그러하다. 이들의 그림에서 말과 선율은 주어진 형상을 넘어 무한을 향해 있다.”(164페이지)

이 말은 예술의 근원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리고 시인은 그것을 ‘예술의 주름들’이라고 이름 지었다. 예술이란 많은 주름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그 주름은 우리 몸과 영혼에 있는 많은 주름과 상처에서 비롯되고 이것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파도처럼 일렁이고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나오는 것이 예술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나희덕의 시는 우리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리고, 시험에도 자주 출제된다. 시의 구조나 정서에서도 그만큼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의 후반에 작가는 마크 로스코와 윤형근이라는 두 화가에 대한 관심을 적는다. 둘은 추상표현주의라고 할 수 있는 난해한 그림으로 알려졌다. 이 중 윤형근은 작가노트에 “내 그림 명제를 천지문(天地門)이라 해 본다. 블루는 하늘이요, 엄버(umber 다색)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라 했고, 구도는 문이다”는 문구를 인용한다. 청색과 다색만으로 그림을 그린 윤형근의 작업이 하늘과 땅이듯, 나희덕의 시 역시 대부분 이런 세상의 비밀스러운 흐름을 시어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의 주름들| 나희덕 지음 | 마음산책 펴냄 | 276쪽 |1만6000원》
《예술의 주름들| 나희덕 지음 | 마음산책 펴냄 | 276쪽 |1만6000원》

그림·영화·음악 등 예술 전반에서 시적 영감 얻어

책은 그림뿐만 아니라 영화·음악·사진·연극 등 예술 전반에 관한 시인의 관심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한 시인의 예술적 텃밭이 만들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영양분이 되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칠 정도로 예술적 탐닉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독자들은 책 읽기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도 가질 수 있다. 바로 나희덕의 시 세계를 이루던 문화적 코드를 하나하나씩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그 범주를 생태적 인식과 실천, 여성주의, 예술가적 자의식, 장르와 문법의 경계 넘나들기, 시와 다른 예술의 만남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각 범주마다 6명의 예술가를 배치했다. 만나는 이들마다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읽는 이는 새로운 문화적 코드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 책을 통해 한 편의 시가 나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술의 주름들이 필요한지 느낄 수 있다. 다만 그 주름은 추함이 아니라 긴 고통을 담아낸 아름다운 연륜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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