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자 급증하는데, 언제까지 조문만 할 것인가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6 07:30
  • 호수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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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씨 사고 충격 이후에도 노동자 사망 계속돼
“위험의 외주화와 기업의 모럴 해저드 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

산재 사고로 숨진 고(故) 이선호씨(23)의 추모제가 열리던 5월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지난 4년 동안 뭐 했느냐”고 따졌고, 문 대통령은 “미안해서 견딜 수 없어 (빈소를) 찾았고, 국민들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조문드리는 것”이라며 위로했다.  

이씨는 4월22일 평택항 하청업체에 소속돼 작업을 하던 중 300kg에 달하는 컨테이너(FRC) 날개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 사항인 안전 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가 없었다. 안전교육도, 안전장비도 이씨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지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김용균씨 참사와 흡사했다. 이씨의 죽음은 ‘산재 공화국’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냈다. 하도급과 원청 간 비정상적인 계약 관행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업무를 잘게 쪼개 단순 인력 공급 계약을 한 탓에 위험에 대처하는 안전 시스템이 망가졌던 것이다. 

이씨의 빈소를 찾은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장관이 빈소를 방문한 5월14일 노동자가 또 추락사했다. 강원도 동해시 쌍용양회 시멘트 공장에서 협력업체 크레인 기사 김아무개씨(63)가 10m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고(故) 이선호씨의 부친이 5월13일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고(故) 이선호씨의 부친이 5월13일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뉴스

2020년 산업재해로 노동자 882명 사망

이씨 사망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5월8일 울산에서도 ‘산재 비보’가 날아들었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직원 장아무개씨(40)가 용접작업을 하던 중 높이 13m에서 추락했다. 일곱 살 아들을 둔 아버지는 일터에서 가족의 품으로 끝내 돌아가지 못했다. 동료들은 장씨가 오르내리던 수직 사다리에 안전설비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노조는 “현대중공업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발생한 ‘예견된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장씨는 계약기간 1년 미만의 단기 공사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김형균 현대중공업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늘 낯선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단기 업체가 20여 개 되는데, 이런 불완전한 상황들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석 달 전인 2월5일에도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와 올해에만 추락·질식·깔림 등으로 노동자 6명이 숨졌다. 앞서 노동·시민단체는 2016년 한 해 동안 10여 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현대중공업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안전 강화에 3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재해는 계속됐고, 최근 5년간 20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노조는 “연일 산재 사망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선 김아무개씨(44)가 ‘나 홀로 점검’에 나섰다가 기계 빔 사이에 머리가 끼여 참변을 당했다. 어버이날 가족 외식을 기다리던 초등학생 두 자녀는 그렇게 아버지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 회사 측은 “일상 점검은 위험도가 낮다고 판단해 1인 점검을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2인1조로 했어야 하는 일인데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혼자 나갔고, 기계를 끄지 않은 채 점검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에서는 2010년 이후 30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가 칼을 빼들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에 대해 특별감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응은 차갑다. 노동부가 현대중공업을 집중 점검한 지 3개월 만에 같은 사망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에는 특별근로감독이 종료된 다음 날 현장 노동자가 숨지기도 했다. 포스코케미칼에서는 지난 3월 특별근로감독 기간 중에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종전과 흡사한 사고가 반복된 것이다. 근로감독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박세민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감독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현장감독 일주일~열흘 전에 업체에 통보한다. 사측이 자료를 조작하고 위험 요인을 은폐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 ‘일과 건강’의 한인임 사무처장은 “중대재해가 벌어진 뒤의 사후감독보다 일본처럼 무작위로 사업장을 선정해 강도 높은 감독을 벌이면 업계 스스로 예방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5월10일 전국금속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 충남 천안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월8일 사망 사고가 발생한 당진제철소 내 설비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을 촉구하고 있다ⓒ전국금속노조
어버이날이던 5월8일 장아무개씨가 추락 사고로 숨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작업 현장에 장씨의 신발 등이 놓여 있다.ⓒ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전국금속노조
5월8일 40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2야드의 건조 중인 선박 탱크 내부 모습ⓒ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전국금속노조

산재 사고 핵심 원인으로 ‘하청 구조’ 지적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산업재해로 88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추락·끼임·충돌 등 대통령이 언급한 어처구니없는 ‘후진국형 산재 사고’의 전형이다. ‘위험의 외주화’라 불리는 하청 구조 문제가 산재 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승부 전 산업안전공단 울산지도원장은 “성장 위주 경제정책과 실적 우선 기업 문화에서 벗어나야 산재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험한 작업을 하청에 떠넘기지 않아야 ‘산업재해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유해·위험한 작업의 사내하도급 전면금지’를 약속했고,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위험의 외주화가 중대 재해 요인”이라고 밝혔다. 

내년 1월부터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 사업주에게 산재 사망 책임을 묻는 법이다. 하지만 아직도 논쟁 중이다. 경영계는 안전관리 책임자를 둘 경우 최고경영자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산재 사고를 줄이려면 기업 대표의 처벌이 당연하다고 맞서고 있다. 산재 사망 사고가 나면 7년 이하의 징역,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징역형은 2%에 불과하다. 벌금도 하한선이 없어 실제 부과된 금액은 평균 420만원 수준이다. 영국의 경우 산재 사망 사고가 나면 최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다. 벌금도 1억7000만원으로 우리나라의 40배 수준이다. 2020년 기준 산재 사망자의 81%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하지만 2년 유예기간이 적용돼 2024년부터 처벌 대상이 된다. 연간 800여 명의 산재 사망자가 나오는데, 법 적용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산재는 노동자 부주의’라는 기업의 잘못된 인식이 산재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월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주최 산업재해 청문회가 열렸다. 최근 5년간 산재 승인 건수가 2배 이상 늘어난 9개 기업 대표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산재 원인을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 탓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최근 5년간 산재 사망자가 44명에 이르는 포스코는 안전대책으로 1조원의 예산을 책정했다면서 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느냐는 질타를 받았다. 그동안 산재 사고 예방을 위한 수많은 법이 제정·개정됐지만, 달라진 게 없다. 몇 년 전, 엊그제, 바로 조금 전 벌어졌던 상황이 일상처럼 반복되고 있다. 신승부 전 원장은 “위험의 외주화와 기업의 모럴 해저드 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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