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금융] 시장 상황 최고인데 왜 주가는 제자리?
  •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2 11:00
  • 호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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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 큰 데 비해 장 이끌 선도주는 별로 없어

주가가 5개월째 옆걸음을 하고 있다. 1월초 기세대로라면 이미 3000대 후반까지 올라갔어야 하는데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쁜 건 아니다. 작년 말에 국내외 경제가 바닥에 도달한 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당초 2%대 후반으로 예상됐던 성장률 전망치가 최근 4%대로 높아졌다. 미국도 7%대, 중국은 8%대 성장이 예상되는 등 국내외 모두에서 강한 회복이 예상되고 있다. 더 높은 점수를 줘야 하는 부분은 지금이 경기 회복 초기라는 사실이다. 우리 경제가 한번 회복 국면에 들어가면 최소 2년간 상승세가 이어졌다는 과거 사례로 볼 때 내년 상반기까지 경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최근 5개월간 주가가 옆걸음만 거듭하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시사저널 최준필
최근 5개월간 주가가 옆걸음만 거듭하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시사저널 최준필

코스피, 박스권에 갇힐 가능성

기업 실적은 경제보다 더 좋다. 1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1%와 203% 늘어났다. 2010년 1분기에 순이익이 260% 늘어난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 한 달 사이 순이익 전망치가 6.8%나 높아진 걸 보면 2분기에도 이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경기 회복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화학·운송·소재·산업재 등 경기 관련 업종의 이익 증가가 두드러질 거란 기대가 작동한 결과다.

미국 연준이 4월 공개시장조작위원회(FOMC)에서 유동성 공급을 줄이는 테이퍼링을 거론했지만 주가가 상승했다. 경제 상황을 보면 유동성을 줄이는 긴축정책을 시도하는 게 맞는데 연준이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시장은 이러다 갑자기 강한 긴축정책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연준이 테이퍼링을 공식화하면서 걱정이 사라졌고 그 영향으로 주가가 상승한 것이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격이 상승했지만 아직은 주요국 중앙은행 중 어떤 곳도 금리를 올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반대로 정부의 재정 투입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부문에서 한꺼번에 최상의 조건이 만들어진 적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주식시장은 더없이 좋은 상황에 놓여 있다.

좋은 여건에도 주가가 오르지 못하자 지금이 고점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좋은 환경에서도 코스피가 오르지 못하는 걸 보면 높은 주가가 시장을 압박하고 있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주가의 관계도 의심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이익 증가율이 정점을 치고 내려올 때부터 주식투자 수익률이 현저히 낮아졌다. 2010년의 경우 1분기에 이익 증가율이 최고점을 기록했는데, 주가는 이후 1년간 10% 추가 상승한 후 5년 동안이나 박스권에 갇혀버렸다. 2017년은 상황이 더 엉망이었다. 4분기에 이익이 최고점을 기록한 후 주가가 20% 넘게 하락했다. 지난 20년간 이익 증가율이 높아지던 기간과 증가율이 낮아지던 기간의 주가를 비교해 보면 이익이 늘어나는 동안에는 투자수익률이 평균 15%였지만, 이익 증가율이 낮아질 때는 수익률이 5%도 되지 않았다. 올해 1~2분기에 이익 증가율이 피크를 칠 가능성이 있는 걸 감안할 때 앞으로 주식시장이 순탄치 못할 가능성이 있다.

주가가 상승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력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 눈에 띄는 게 없다. 경제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진 것도 부담이 된다. 작년에 경기가 좋지 않았던 영향으로 올 상반기 경제 지표는 좋은 수치가 나왔다. 문제는 앞으로인데 기대가 너무 높아 어지간한 숫자가 나와서는 투자자를 만족시키기 힘들다. 기업 실적도 사정이 비슷하다. 1분기에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중 이익이 예상보다 좋지 않았던 기업 대비 예상보다 좋았던 기업의 비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도 코스피의 67%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내놓았다. 1분기 실적이 이렇게 좋다 보니 기대치가 덩달아 높아졌고, 이를 채우지 못할 경우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테이퍼링이 공식화된 후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안도감으로 주가가 상승했지만 장기적으로 긴축은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지난해 주가 상승의 핵심 동력이 유동성 공급이었던 걸 감안하면 이번에 긴축으로의 선회는 시간이 갈수록 나쁜 쪽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손에 잡히는 새로운 동력이 없는 만큼 당분간 코스피는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000~3250의 박스권에 머물고, 이를 뚫고 올라가더라도 가격 부담 때문에 다시 힘이 빠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주식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면 우리 시장 상황도 좀 나아지겠지만 그 외에는 시장을 끌고 갈 동력을 확보하기 힘들다. 당분간 박스권 상단에 도달하면 주식 보유량을 줄이고 하단에 도달하면 매수를 늘리는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 올라가는 주가를 계속 따라가는 게 정답이었던 연초와 다른 전략이다. 주가가 변한 만큼 전략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실적 미반영된 에너지·건설·금융주 주목

1분기 실적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종목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실적을 발표한 날부터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해 8만원대 밑으로 밀렸다. 현대차그룹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영업이익이 100% 넘게 늘어났지만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좋지 않았다. 초대형 주식의 경우 실적과 주가가 따로 움직인 것이다. 반면 주류에서 밀려나 있었던 업종, 예를 들면 은행이나 철강 같은 경우는 실적 발표를 계기로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관심을 모으지 못했던 종목일수록 실적에 강하게 반응하고 있는 건데 이 패턴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전체 기업 이익에서 특정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전체 시가총액에서 특정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하면 어떤 업종이 이익을 덜 반영했는지, 더 반영했는지 알 수 있다. 바이오 등이 이익 이상으로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반면 에너지·건설·은행·증권은 이익보다 시가총액 비중이 낮다. 실적 관련 투자는 이들 종목을 중심으로 좁혀서 생각하는 게 맞다.

중소형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이후 중소형주는 투자자의 관심을 모은 적이 없었다.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장의 중심에 있지 않아서였다. 그만큼 괜찮은 실적이 나올 경우 가격에 반영될 여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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