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호남에 부는 ‘이재명 바람’…전략적 선택 관망 중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5.28 10:00
  • 호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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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민심은 지금…“이재명 우세 속 이낙연·정세균 추격”
40%에 가까운 입장 유보층 향배가 변수

내년 3월 대선과 관련해 호남 민심은 현재 친(親)이재명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대권주자 이재명 경기지사가 언뜻 대세론을 형성해 가는 모습이다. 현재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는 전남 지역 출신의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해 이재명 경기지사, 정세균 전 국무총리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은 ‘될 사람에게 몰아준다’로 압축된다. 향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이 지사, 이 전 대표, 정 전 총리 등 이른바 ‘빅3’ 가운데 어느 쪽으로 민심이 쏠릴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재명이 대세다.” 5월24일 오후, 전남 정치 1번지 목포역 앞. ‘민주당 대권주자 가운데 누가 내년 대통령선거 후보로 적합하냐’는 기자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목포 토박이 한아무개씨(68)가 한 말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60대 후반의 또 다른 시민은 “이낙연은 한물갔다”고 거들었다. 호남의 바닥 민심이 ‘호남 출신 대통령론’과 ‘정권 재창출론’ 사이에서 아직 최적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관망 중일 것이라는 취재진의 당초 예상에서 빗나가는 현지의 답변들이 거듭 들려왔다.

ⓒ광주시 제공
광주 시내 전경ⓒ광주시 제공

이낙연, ‘전 대통령 사면론’ 이후 급격히 내리막

목포역 앞 모퉁이에서 선대에 이어 60년째 종묘상을 운영하고 있다는 송아무개씨(63)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송씨는 “말하는 것 보면 일도 야무지게 할 듯하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그는 아들 또래의 젊은 층에게 물어도 곧장 ‘이재명’이라는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틀 뒤 광주 시내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만난 한 청년도 ‘이재명 지사’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한 의류매장에서 일한다는 박아무개씨(여·27)는 “이 지사는 흐지부지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충장로 1가에서 의류대리점을 하는 조아무개씨(51)도 “(이 지사가) 우리 처지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말처럼 짧은 시간에 호남 지역 정치지형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동안 전남 영광 출신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호남 대망론’을 등에 업고 호남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내 호남 지역 대권주자 선호도는 지난해 12월부터 서서히 흔들리다 새해 벽두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전직 대통령 사면론’과 맞물리면서 급격히 달라지는 흐름을 보인다. 숫자도 이를 보여준다. 한국갤럽의 2020년 12월 1주 차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처음으로 호남 지역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선두에 올랐다. 이 지사가 27%, 이 전 대표가 26%로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다. 그러나 이 전 대표가 ‘사면론’을 제안한 이후인 1월 2주 차 여론조사에선 이 지사 지지율이 28%, 이 전 대표 지지율이 21%로 나타나며 격차가 벌어졌다.(표본오차 ±3.1%포인트에 95% 신뢰수준.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또한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수개월째 20%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기관 조엔씨앤아이에 의뢰해 광주·전남·북 거주 18세 이상 1020명을 대상으로 5월22~24일 사흘간 차기 대통령선거의 여권 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보면, 이 지사는 38.5%의 지지율로 확고한 우위를 지켰다. 이 전 대표 23.3%, 정 전 총리 11.8%였다. 이 지사는 호남에서 민심과 함께 ‘당심(黨心)’에서도 대세론을 형성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43%가 이 지사를 선택했다. 29%가 이 전 대표를, 13%는 정 전 총리를 각각 꼽았다. 이 지사가 민심보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5% 지지를 더 얻었다. 당심에서도 대세를 굳히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광주시 제공
5월18일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참배단으로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호남 출신 대통령’ 기대 vs ‘정권 재창출론’ 엇갈림 속 관망

이대로 이어진다면 권리당원 표심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이 지사가 조금 더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광주 시민단체 ‘참여자치21’의 기우식 사무처장은 “젊은 층 사이에서 이 지사 선호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며 “굳건한 지지라기보다 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하는 욕구가 투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 등 권력 개혁에 치중한 나머지 당초 약속했던 민생 개혁을 등한시함으로써, 이에 실망한 여론이 상대적으로 개혁성이 강한 이재명 지사 쪽으로 쏠린 것 같다”며 “광주 시민사회에선 이낙연의 실책이 겹겹이 쌓여 이 카드가 더 이상 유효할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민심을 해석했다.

그렇다면 호남,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불고 있는 ‘이재명 바람’이 ‘대세론’까지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광주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오승용 킹핀정책리서치 대표는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이 지사가 호남에서 1위인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맹주라고 보기에는 아직 지지율이 높지 않다. 그게 문제다. 맹주를 자처하기 위해선 50~60% 선을 찍어야 한다. 사실은 여론조사에서 세 대권주자의 지지율보다 더 많은 게 40%에 가까운 ‘지지 후보 없다 또는 무응답’이다. 호남 민심의 대세는 ‘유보적 의견’이다. 호남의 가장 많은 응답자는 좀 더 지켜보겠다고 관망하는 것이다.”

호남 민심의 대세는 이재명이 아니라 ‘유보적 의견’에 있다는 게 그의 민심 분석이다. 관망. 내년 대선 정치판을 바라보는 호남인들의 정서를 이만큼 잘 대변해 주는 말은 없을 듯싶다. 호남 민심이 이 지사 쪽으로 기운 분위기지만 정치권과 바닥 민심은 모두 아직 관망 중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좋게 보자면 ‘전략적 인내’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호남 출신 대권주자들이 이 지사 등에게 지지율에서 뒤처지는 이유가 뭘까. 지역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민주당 소속 한 전남도의원의 말이다. “이낙연 전 대표나 정세균 전 총리의 리더십 스타일은 풍부한 국정과 의정 경험에서 나오는 안정적 관리형이다. 반면 국회의원 ‘0선’의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사이다’ 이미지다.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사회 ‘불공정’ 문제 등에 거침없이 칼을 들이댈 것’이라는 기대감을 지지자들에게 준다. 두 전직 총리의 기존 캐릭터로는 지지율을 뺏어오기 힘든 구도다.”

지역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의 본선 경쟁력이 계속 떨어질 경우 같은 호남 출신인 정세균 전 총리가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성원 전남일보 편집국장은 “당내에 정세균계가 형성돼 있고, 당내 기반이 넓기 때문에 총리직을 벗고 본격적으로 대선에 뛰어든 만큼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며 “다만, 유의미한 차기 주자의 척도로 꼽히는 ‘마의 벽’ 전국 지지율 5% 선을 넘는 게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지역 선수’들에게 반전을 만들 시간과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반론도 있다. 민주당은 오는 9월 대선후보를 선출할 예정이지만 일정이 더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5월15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승부수를 띄웠다. 이 발언은 당심에 호소하는 일종의 ‘문심(文心) 마케팅’으로 해석된다. 다만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많이 하락한 상황이어서 효과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리직을 내려놓은 정 전 총리는 ‘마(魔)의 5%’에 도전 중이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의 말이다. 

“이재명 지사가 코로나19 돈 나눠주는 기본소득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지사직을 관두고 나온다면 인기도 가라앉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지사가 꼭 된다는 보장도 없는 것 같다. 이 지사가 지금 어느 정도 올라섰다고 하지만 아직 허수다. 이 전 대표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엎어진 것처럼 이 지사도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 그런 변수는 많다.”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도 “이낙연 전 대표는 안정적 스탠스를 가져가는 분이고, 이재명 지사는 ‘사이다’성 행보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언행 차이로 지지율 등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하지만, 호남 민심은 결과적으로 관망하다가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인사는 “호남 민심의 향배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호남 출신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꼭 호남 출신이라기보다 누가 이길 후보인가, 누가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는 후보인가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입장 갈린 호남 의원들, ‘빅3’ 앞 각자도생

호남 지역구 與 의원들, 대선 판세 저울질 한창…갈지자 행보도 속출

광주와 전남·북 지역구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내년 3월 대선에서 과연 누구를 지지할까. 더불어민주당 ‘빅3’ 대권주자가 최근 지지세 불리기를 가속화하면서 호남 민심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의 향배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쏠린다. 지역 국회의원은 호남 출신을 획일적으로 지지하던 예전과 달리 각자도생으로 입장이 갈리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벌써 각 진영에 줄을 선 의원들 이름까지 나돈다. 

광주 국회의원들의 좌장 역할을 하는 이병훈 의원은 광주일고 선배이자 전남 영광에서 태어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유일하게 돕고 있다. 전남은 국회의원 10명 전원이 민주당 소속이다. 이 중에서 이 전 대표 지지로 분류되는 인사는 이개호(담양·함평·영광·장성)·윤재갑(해남·완도·진도) 2명뿐이다. 이개호 의원은 이 전 대표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최측근 인사로 특보단장을 맡아 가장 앞장서 활동하고 있다. 윤재갑 의원도 지난 5월8일 이 전 대표의 외곽 조직인 ‘신복지 광주포럼’에 참석하는 등 최근 들어 지지 의사를 공식화했다. 

전북 진안 출신의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누구보다 폭넓은 당내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정 전 총리를 지지하는 의원으로는 김회재 의원(여수을)이 손꼽힌다. 김 의원은 정 전 총리를 밀착 수행하며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또한 신정훈 의원(나주·화순)도 정 전 총리의 각종 지지 모임에 얼굴을 보이면서 지지 의원으로 분류된다. 지난 5월13일 광주·전남 지역의 김회재·서삼석·신정훈·양향자·이용빈·조오섭 의원이 정 전 총리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텃밭인 전북에서도 7명의 국회의원이 지지를 선언했다.

5월12일 출범한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 ‘민주평화광장’ 출범식에는 민형배·이형석·양향자·주철현 의원 등 4명이 참석했다. 이 중 민 의원은 올해 들어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경북 안동 출신인 이 지사 지지를 표명했다. 이형석 의원은 연구재단 ‘광장’을 이끄는 이해찬 전 대표 시절 최고위원을 지낸 인연으로 이 지사에게 우호적이다. 연구재단 광장의 핵심조직은 이 지사를 지지하는 ‘민주평화광장’에 사실상 통합됐다. 전북에서는 유일하게 김윤덕 의원이 “이기는 선거를 하자”며 이 지사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전남대와 조선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갑석·윤영덕 의원은 ‘정중동’이다. 송갑석 의원은 당직(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아 누구를 지지할 수 없다며 관망하고 있다. 일부 의원의 경우 인간적 서운함을 사지 않기 위해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주자들의 모임에 참석해 눈도장을 찍고 있다.

결론적으로 광주 국회의원 8명은 이재명 지지 2명(민형배·이형석), 정세균 지지 1명(조오섭), 이낙연 지지 1명(이병훈), 관망파 4명(이용빈·송갑석·윤영덕·양향자)으로 분류된다. 전남은 이낙연 지지 2명(이개호·윤재갑), 정세균 지지 2명(신정훈·김회재), 이재명 지지 1명(주철현), 관망파 5명으로 분류된다.  광주·전남 국회의원 절반이 민심을 읽어가며 대선 판세를 저울질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당내 대선후보 지지를 놓고도 지역 정치권에선 갈지자 행보가 속출하고 있다. 당초 이낙연 전 대표 지지를 표명했던 일부 국회의원은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로 슬며시 선회하는가 하면, 정세균 전 총리 지지를 밝힌 한 국회의원은 이재명 경기지사 측에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해명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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