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오월을 대하는 자세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31 08:00
  • 호수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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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무색지 않게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색깔들로 눈부셨던 5월이 끝자락을 보이며 슬글슬금 물러서던 날, 가까운 산에 올랐다. 5월의 산길은 언제 밟아도 포근하고, 언제 보아도 싱그럽다. 꽃들의 화려함은 비록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초록 위에 흥건한 그 내음만 맡아도 봄은 그대로 봄이다. 어느 작가의 글에 담긴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었음을 알았다’는 문구가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때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저 봄빛은 어디서건 눈부시지만, 우리 기억 속에 남은 현대사 속의 5월은 내내 어둑하고 우울하다. 제주의 4·3이, 광주의 5·18이 모두 아름다운 계절, 봄에 일어났다. 그래서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는 마음은 더 처연해진다. 얼마 전 맞았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에도 그랬다. 적군도 아닌 자국의 군인이 쏜 총탄에 맞아 무참하게 쓰러져 가던 시민들의 모습을 방송 영상으로 다시 보면서 감당키 어려울 만큼 무거운 슬픔이 차올랐다. 4·3이나 5·18이나 모두 국민이 국군에 의해 무고한 죽음을 당함으로써 비극이 극대화된 사건이다. 그리고 그 비극이 우리 마음에 남긴 주름은 세월이 흘러가도 사라지지 않는다.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시민이 열사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시민이 열사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4·3과 5·18의 아픔은 단지 피해자들의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윗선의 명령에 의해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동족을 향해 총칼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가해자들의 아픔 또한 가볍지 않을 것이다. 당시 광주에 파견되었던 계엄군 병사들 가운데는 아직도 그날의 트라우마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영문도 모른 채 나서서 또래인 시위대들을 향해 무력을 가해야 했던 젊은 병사들의 또 다른 아픔을 챙기는 마음은 우리 사회에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 그러기에는 그날 목숨을 잃거나 다친 시민들의 피해가 너무 크고 시대에 남긴 앙금이 엄청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쓰라린 시기를 젊은이로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괴로워하는 사이에도 그들을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던 ‘윗선’들의 현재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증거가 분명하게 드러난 사안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지휘관은 사실을 왜곡해 선동하는 집회에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기까지 한다. 나와야 할 진정한 사과 역시 여전히 감감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올해 5·18의 풍경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은 그나마 희망적으로 보인다. 광주에서 열린 41주년 기념식에 처음으로 야당 인사들이 초청을 받아 대거 참석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은 채 영령들 앞에 나란히 선 그들의 모습을 왜 지금에야 보게 되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라도 함께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컸다. 국민의 아픔 앞에서는 어떤 정치적 계산도 불순하기 마련인데, 많은 대립과 반목을 거쳐 이 자리에 오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 야당에 대한 호남 지역 지지도가 꽤 높게 상승했다는 뉴스는. 우리 국민들은 언제든 새롭게 바뀔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흔쾌히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려준다(24쪽 특집 기사 참조). 

사과할 사람은 진정으로 사과를 하고 치유할 것들은 반듯하게 치유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국민의 아픔에 대해 이념의 잣대를 더는 들이대지 않고 뜻을 합치면 오월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한층 성숙해지고 사회 또한 달라질 것이다. 달라지지 않으면 부끄러움만 계속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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