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집값을 움직이는 힘은 ‘정치 논리’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0 10:00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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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늘어난 중산층 위해 명품 주택 꾸준히 공급해야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중과와 전·월세 신고제가 6월1일부터 시행됐다. 중과세 시한 도래 이전에 다주택자 매물 출회를 기대했지만 매도 물량은 예상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대신 증여가 증가했다. 증여의 경우 서울을 기준으로 2021년 5월 3039건에 이르면서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전·월세는 거래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의 2020년 12월 전·월세 거래가 1만5241건에서 5월에는 6483건까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공급의 경우 지난 2·4 대책 이후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 공공재개발·재건축,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각종 요건 충족이나 의견 수렴 등의 절차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언제나 공급은 시차를 두고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하반기 주택시장의 상승을 우려하는 견해도 제기되지만 강력한 대출 규제와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부담 증가로 신규 수요 유입은 제한적이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10억원에 이르면서 당장의 주택 구입을 포기하고 3기 신도시 또는 공공재개발 등을 기대하는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주택가격 급등이 나타나기 어려운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진행될 각종 개발 공약의 경쟁적 제시는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주택가격과 관련한 논의는 언제부턴가 이념적 논쟁처럼 흘러가면서 합리적 대안을 도출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정책 당국과 시장이 바라보는 관점도 매우 다를 뿐만 아니라 서울·수도권 그리고 지방의 입장 역시 매우 다르다. 무엇보다도 2021년 대한민국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경제력이 상승하고 소득이 증가하면 더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찾는 것은 당연하게 간주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이 그러한 상황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5월26일 재개발 규제 완화 대책을 발표하기 위해 청사 브리핑실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5월26일 재개발 규제 완화 대책을 발표하기 위해 청사 브리핑실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세계 10위 경제대국 위상 맞는 주거공간 필요

대한민국의 2020년 명목 GDP(국내총생산)는 세계 10위로 추정되고 있다. 9위 캐나다와는 130억 달러 차이고, 8위 이탈리아와는 2500억 달러 정도 차이인데 우리의 성장 속도 및 GDP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곧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경상수지 흑자는 매년 적으면 500억 달러, 많으면 1000억 달러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수익과 자본이 본격적으로 축적되기 시작한 지 25년이 넘어가는 국가인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주요 해외 언론에서도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개도국이나 신흥시장이 아닌 선진국, 그리고 부자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경제력 향상은 소비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일상적으로 접하는 커피와 외식 수준만 해도 큰 폭으로 향상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소비력은 일상생활을 넘어 소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 세계 네 번째로 많이 포르쉐가 팔리고, 유럽 전체의 벤츠 S클래스 판매량과 맞먹는 대수가 판매되는 국가가 우리나라다.

주택 역시 이러한 추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대기업 소재지 등을 중심으로 소득 증가에 걸맞은 주택 수요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공급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부족한 것이 주택가격 상승의 근본적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도시에 근무하는 서비스업 및 IT(정보기술) 관련 산업 종사자의 소득이 타 지역이나 분야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급은 각종 규제로 인해 쉽지 않기 때문에 가격 상승이 나타나는 것이다. 저금리와 통화 팽창에 따른 자산가격 상승이라는 본질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지만, 주택가격 상승은 사회가 요구하는 주택의 수준이 급격히 올라가는 데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주택정책이 해야 할 일은 일정 수준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돼야 한다. 공공에 의한 공급은 주택가격 변화와 관계없이 전체 주택 공급에서 일정 비율 이상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민간은 시장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형태로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 공공부문의 역할은 시장 상황에 따른 어설픈 물량 조절이 아니라 기본적인 물량을 계속 공급하는 것이 돼야 하는 것이다.

 

중상위층 주택까지 공공이 책임질 순 없어

다양한 주거 형태와 공간에 대한 지원에도 나서야 한다. 아파트만 주택이 아니다. 단독·빌라·연립도 필요하다. 대신 이런 주택 형태가 많이 들어서는 곳엔 공공이 책임지고 공원, 녹지 등을 공급해야 한다. 고가의 재건축 아파트에 소셜 믹스(Social Mix)를 위해 어렵게 임대주택을 집어넣는 것보다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와 같은 현금 기여분을 더 징수해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다세대주택만 빼곡한 곳이라도 경의선 철도가 지하화되고 난 후 녹지대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보면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살고 싶은 공간이 된다.

반면 중상위층이 원하는 핵심지역의 고가 주택은 시장이 알아서 하도록 해야 한다. 이들의 수요와 요구까지 공공부문이 충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지 과도한 대출 및 투기가 발생해 금융시장을 교란하지 않도록 금융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수준이면 충분하고,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출 규제는 과잉 상황이다.

공공부문은 미래의 이상적인 주거 형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1990년대 1기 신도시는 당시 경제 수준으로 보면 시대를 한참 앞서가는 수준이었다. 그 이전의 목동과 과천, 더 거슬러 올라가는 잠실과 반포 등도 마찬가지였다. 주거 수준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는 것이 국가와 공공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기회가 될 때마다 더 높은 기준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에 자극을 주려 노력했고, 새로운 표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한 단계 더 향상된 주거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역사적 경험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미래의 과제인 저탄소 사회에 발맞춘 주거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높은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는 동시에 보다 저렴하면서 빠르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병행해야 한다. 인건비 상승과 일손 부족에 대응하는 것은 저렴한 주거를 제공할 수 있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경제력 향상은 새로운 요구와 욕망을 가져온다. 이러한 변화의 욕망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거나 억지로 누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좀 더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버블을 두려워하고 막기에만 주력하기보다는 그 결과로 얻을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변화에 대한 욕구와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부자 나라 대한민국의 고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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