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100냥이면 빛이 90냥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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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핵심》ㅣ고재현 지음ㅣ사이언스북스 펴냄ㅣ400쪽ㅣ22,000원

‘29만9792.458km/s’ 진공상태에서 1초 동안 날아가는 빛의 절대속도로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빠르기다. 이 숫자는 아인슈타인을 대표하는 명제 ‘E=mc²’(에너지 크기는 질량 곱하기 빛의 속도의 제곱과 같다)나 특수 상대성 이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광학(光學)이 현대 물리학의 핵심이라는 뜻으로 확장 가능하다. 빛의 반대는 어둠이다. 성경의 창세기는 신의 천지창조로 시작되는데 혼돈(카오스, chaos)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빛을 만들어 어둠과 나누는 것이었다. 우리 속담에도 ‘몸이 100냥이면 눈이 90냥’이라 했다. 빛이 없으면 눈은 무용지물, 고로 빛이 90냥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년)가 이 빛의 속도를 측정하려고 덮개로 가린 등불을 들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저 멀리 맞은 편 언덕 위에는 역시 다른 등불을 든 조수를 보냈다. 갈릴레오는 먼저 자신이 든 등불의 덮개를 열어 빛을 보낸 후 그 빛을 본 조수가 덮개를 열어 불빛이 보이는 시간의 차이를 측정하려고 했다. 갈릴레오가 빛이 그렇게 빠르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이런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빛의 속도를 최초로 유의미하게 측정한 과학자는 1676년 덴마크 천문학자 올레 뢰머였다. 목성의 위성인 이오(Io)가 목성 뒤로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과 지구의 공전궤도상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계산한 결과 1초당 21만2000km까지 접근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인 가시광선(可視光線)은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색깔 무지개 빛이다. 적외선(赤外線)은 글자 그대로 빨강색 밖의 눈에 안 보이는 빛이다. 이 빛은 열을 가지고 있어 열 감지 카메라나 유도 미사일, 야간 투시경의 기술로 이용된다. 자외선(紫外線 Ultra Violet)은 보라색 밖의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다. 그런데 왜 ‘보외선’이 아니고 자외선일까? 보라색(Violet)과 자주색(紫朱色 Purple)은 파랑과 빨강 사이의 비슷한 색깔인데 파란색이 많으면 보라, 빨간색이 많으면 자주다. 그런데 ‘보라’는 순우리말이고, ‘자주’는 한자어다. 선조 광학자들이 적외선과 대비해 한자로 조어를 하려다 보니 보외선이 아닌 자외선이 된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사물의 색깔들은 빛의 흡수, 반사의 결과다. 가시광선을 모두 반사하면 흰색, 모두 흡수하면 검은색, 반사도 흡수도 없이 통과하면 물이나 공기처럼 투명색이 된다. 단풍잎은 다른 색깔들은 흡수하되 빨간색을 반사한 결과고, 초록잎은 초록색을 반사한 결과다. 만약 흡수도 반사도 없이 모든 빛을 통과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투명할지언정 도대체 색깔을 짐작할 수 없는 의뭉스러움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사람은, 특히 정치인은 색깔이 분명해야 주권자의 혼선을 초래하지 않는다.

의사의 가운은 흰색인데 수술복이 청록색인 이유는 빨간색 피로 생기는 청록색 잔상을 흡수시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터널의 조명이 주로 황색 소듐(Sodium, 나트륨)등인 이유는 한 가지 색깔의 빛만 내므로 물체의 색깔을 충분히 연출하기 어려운 대신 도로 위 과속방지턱이나 요철 등의 형태를 인식하는 데 유리하고, 안개나 매연이 있는 조건에서 보다 멀리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파장이 길어질수록 산란이 덜 되고 멀리까지 나가는 빛의 특성에 기인한다.

디스플레이(Display)는 인간이 만든 빛의 총아다. 텔레비전 브라운관은 평판 디스플레이(FPD)에 밀려났다. 초기 평판인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은 액정표시장치(LCD)에게 밀려났고, LCD는 백라이트 광원 종류에 따라 발광 다이오드(LED)와 양자점 발광 다이오드(QLED)로 진화했다. LED는 2014년 노벨물리학상의 주인공이었다. 바람에 날리지 않는 빛은 파동이고, 물체에 막히는 빛은 입자다. 둘의 속성을 모두 가진 빛의 세계는 알수록 신기하고 복잡다단하다.

자외선은 멜라닌 색소를 만들게 해 구릿빛 피부를 만들고, 살균기능을 발휘하고, 비타민D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형광등은 자외선을 형광체 유리가 가시광선으로 바꾸거나 흡수하므로 비타민D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지나친 선텐(suntan)은 부작용을 부르나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항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가끔씩 실외로 나가 햇빛을 쪼일 필요가 있다. 코로나를 이기고 봐야 ‘빛이요 소금’같은 사람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거리 두기 시대에 과학상식, 교양과학 익히기에 안성맞춤이라 하겠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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