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과 어깨 나란히 하고 ‘박군’이 간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5 15:00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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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인성 합쳐지며 트로트 신인가수로 이례적 인기 몰이

최근 박군이 화제의 인물에 등극했다. 박군은 2019년 데뷔한 트로트 신인가수다. 트로트계는 신인이 빠른 시간 안에 조명받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박군의 돌풍이 특히 놀랍다. 박군은 5월 2주 차 비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톱10에서 무려 1위에 올랐다. 박준우라는 본명으로 출연한 채널A 《강철부대》를 통해서였다. 이게 끝이 아니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박군이라는 예명으로 7위에도 올랐다. 한 사람이 비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톱10 안에 동시에 두 번 이름을 올린 것이다. 

당시 톱10 안에 이름을 두 번 진입시킨 사람은 박군 이외엔 유재석밖에 없었다. 트로트 신인가수가 유재석과 어깨를 나란히 한 셈이다. 요즘 오디션 출신이 아니면 트로트계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주목받은 이가 없었다. 

심지어 웬만한 오디션 출신 스타보다도 더 박군이 주목받았다. MBC 《트로트의 민족》, KBS 《트롯 전국체전》, TV조선 《미스트롯2》 등의 오디션이 잇따라 방영됐지만 박군 정도로 돌풍을 일으킨 스타를 배출하지 못했다. 박군도 SBS 《트롯신이 떴다2-라스트 찬스》라는 오디션에 출연하긴 했지만 지금의 신드롬은 그 오디션 때 생긴 것이 아니다. 서두에 언급된 《미운 우리 새끼》 《강철부대》 같은 리얼리티 예능이 박군 신드롬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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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강철부대》의 한 장면ⓒ강철부대 화면 캡쳐

안타까운 사연으로 시청자를 울리다 

《미운 우리 새끼》에 처음 등장했을 때 박군은 얹혀살던 집에서 독립하려던 참이었다. 지인 집의 방 한 칸을 얻어 살다가 옥탑방을 알아보러 다녔다. 그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며 《트롯신이 떴다2》에 출연했다는 말에 시청자들이 안타까움을 느꼈다. 박군의 떠돌이 처지를 딱하게 여긴 선배가 자기 가족이 생활하는 집에 있는 방 하나를 내줬다고 한다. 별도로 독립된 방이 아니고 큰 집도 아닌, 작은 아파트나 빌라 같은 형태의 서민 주거공간 안에 있는 방이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연예인의 생활 모습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옥탑방으로 옮긴 박군은 중고장터에 무료로 나온 물품들로 세간을 채우면서도, 독립했다는 그 자체에 너무나 행복해했다. 이런 해맑은 모습이 일단 시청자의 눈에 들었다. 

박군의 놀라운 능력도 발견됐다. 옥탑방의 벽에 젓가락을 던져 꽂는가 하면, 제기를 6000개 이상 찬 적도 있다고 한다. 지난겨울 한파가 몰아치는 가운데 강의 얼음을 깨고 입수하면서도 떨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밖에도 야생 생존기술에 통달한 기인 같은 모습이 프로그램에 등장했다. 

이것은 박군이 군생활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를 말해 줬다. 그는 특전사 직업군인이었는데, 정말 열정을 다한 모범전사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성실해 보이는 사람됨도 박군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도 어머니 이야기가 눈물을 자아냈다. 박군의 본명은 박준우로, 1986년에 태어났다.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해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가난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집에 냉장고를 들였고 그때부터 신문배달 등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때부터 중화요릿집에서 6년간 일했다. 한 달에 한 번만 쉬었다고 한다. 그렇게 일을 하는 가운데도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으로 성적 장학금을 받고 전교회장까지 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는 혼자 남을 아들을 걱정했는지 투병생활을 오래 하셨다. 그런 어머니에게 청소년 박군은 일해서 번 돈으로 14K 금반지를 사드렸는데, 최근에 어머니 묘소를 찾아 24K 반지를 드리는 모습이 방송돼 전국의 안방이 눈물바다가 됐다. 어머니가 아들의 대학 진학을 원하셔서 대학에 입학했지만 장학금이 1학기까지만 지원됐기 때문에 중퇴하고 특전사 직업군인이 됐다. 군에 있는 동안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병원비와 빚 등으로 군 수입을 모두 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전역 후 떠돌이 신세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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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곡 《한잔해》를 부르는 박군ⓒ여수MBC Music 유튜브 캡쳐

눈물 겨운 사모곡, 그리고 인성 넘치는 일화들 

어머니는 아들 면회를 하고 싶어 하셨지만, 입원해 있는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될까봐 박군이 오시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최근에 박군이 그걸 후회한다며, 차라리 그때 힘들더라도 오시라고 했으면 어머니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봤을 거라며 오열했다.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했을 때 어머니가 아들과 술을 드시려고 했지만 박군이 병세 때문에 만류했다고 한다. 그 직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실 걸 직감하고 아들과 마지막으로 술을 나누려고 했는데 그걸 못 하시게 했다고 박군이 또 눈물을 흘렸다. 시청자도 함께 울었다. 

 이런 사연들에 《강철부대》에서 보인 늠름한 전사의 모습까지 더해졌다. 박군은 특전사 엘리트 전사 출신으로 해외 파병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군에서 기른 놀라운 능력이 프로그램 속에서 발휘됐다.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체력, 전투력에서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았고 특히 리더십, 지략 등이 돋보였다. 솔선수범하는 모습과 배려심까지 나타나 더욱 주목받았다. 여기에 더해 《미운 우리 새끼》에서 짬뽕, 탕수육 등을 직접 만드는 ‘요섹남’의 매력을 보이기도 했다. 

박군 신드롬은 연예인의 인성을 요즘 시청자들이 얼마나 중시하는지 말해 준다. 너무나 힘든 가정 형편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모셨고, 지금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런 모습이 박군에 대한 인간적 애정을 만들었다. 박군이 어렸을 때 일했던 중국집 사장님이나, 미용실 또는 아귀찜집 같은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박군이 얼마나 착하고 성실했는지 입을 모아 증언해 더욱 박군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어렸을 때 인연을 맺은 동네 어른들에게 아직도 인사드린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박군이 일한 중국집이 중간에 매매돼 사장님이 총 2명인데, 먼저 같이 일했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간 사장님의 딸이 어렸을 때 박군이 놀아주고 군대 간 후에 선물도 보내줬다고 최근 증언하기도 했다. 당시는 박군이 정말 힘들게 살던 무렵인데 그 가운데서도 구김살 없이 주위 사람들을 챙겼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박군의 사람됨을 말해 준다. 

박군이 그렇게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배도 자기 가족이 있는 집의 방 하나를 내줬을 것이다. 중국집에서 수업 시간에는 일을 못 하는 박군을 직원으로 써주고 보너스까지 준 것도, 어린 박군이 그만큼 성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모범적 인성에 안타까운 고생담과 눈물겨운 사모곡이 겹쳐지자 박군을 응원하는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나타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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