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세대에는 답이 없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4 08:00
  • 호수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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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신문업계에 CTS(전산제작·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가 도입되었을 때 우리는 크게 환호했다. 컴퓨터가 글자를 찾고 만들어주어 더는 인쇄를 위해 활자를 옮겨 심을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 100여 년 동안 이어져 오던 활판인쇄 시대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삐삐’라는 별칭으로 불린 무선호출기가 맨 처음 나왔을 때의 느낌도 마찬가지였다. 유선전화기 없이도 먼 거리 소통이 가능하다는 편리함에 모두가 감탄했다. 삐삐를 비롯해 CD플레이어, 게임기 등 그 시기 신문물은 모두 그 전 세대에선 젊은 시절에 누려보지 못한 기술의 축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중장년층을 놀라게 한 이 기술들은 MZ세대로 일컬어지는 요즘 청소년층에게도 놀라움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오래전 유행했던 레코드판이나 카세트플레이어에 관심을 갖는 이유 또한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새롭기’ 때문이다. 자신이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은 아무리 낡고 남루하더라도 새로운 문명이나 문화, 문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신세대들 사이에 복고적 경향을 의미하는 ‘레트로’ 열풍이 일어나고 그런 흐름이 모여 ‘뉴트로’ 트렌드를 형성한다.

그렇듯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각자 기억하는 신기술이나 문화적 경험이 다른 세대들이 분포해 있다. 지난 1650호 시사저널에 소개된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대학원장의 말처럼 알파세대, Z세대, 밀레니얼세대, X세대, 베이비부머 세대 등 다양한 연령대가 공존하는 ‘초유의 시대’다. 친근한 기술이나 문화가 각기 다르고 시대를 받아들이는 감수성 또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이룬 사회에서 세대 간에 크고 작은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갈등을 두고 불거지는 ‘세대 논쟁’은 그래서 부자연스럽다. 그런 논쟁 자체가 논쟁을 부르기 십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가 6월11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선출 직후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가 6월11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선출 직후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나선 이준석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일어난 논쟁도 마찬가지다. ‘이준석 현상’을 그의 생물학적 나이와 연관 지어 세대론으로 바라보면 답이 없다. 그가 새로운 세대를 대변할 만한 인물인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도 부질없다. 여전히 정치적 정체성에 대해 여러 물음표가 붙는 그가 많은 이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다만 젊어서도 잠재력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그를 지지하는 마음에는 그가 당 대표가 되면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국회의원 경력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준석 돌풍은 우리 사회에 변화를 향한 갈망이 크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현상으로 읽힌다. ‘이준석 현상’의 키워드는 세대가 아니라 변화다.

윗세대들이 향유했던 기술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신들의 문화로 만들어내는 신세대의 유연함에서 알 수 있듯, 문화에서도 정치에서도 세대론은 큰 의미가 없다. 세대를 분리시키고 그 대립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을 뿐이다.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인다면 사람들은 누구에게라도 열광할 수 있다. 세대를 떠나 그가 얼마나 많은 ‘다름’의 인자를 가지고 있는지에 사람들은 관심을 더 갖는다. 그 다름이 변화의 동인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이 ‘초유의 시대’는 변화에 대한 유동성이 큰 시대다. 국민은 그런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꿰뚫고 변화의 물길을 바르게 틔울 정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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