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 ‘물고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8 13: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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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식수원 사연댐 건설로 장마 때마다 물에 잠겨
환경부, 운문댐 물 울산 공급에 합의

국보 제285호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인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1971년 12월25일 문명대 동국대 교수에 의해 발견된 이후 50년 동안 1년 중 절반은 물에 잠겨 ‘물고문’과 풍화작용으로 훼손이 극심하다. 암각화 하류에 울산의 식수원인 사연댐이 만들어지면서다. 사연댐(총 저수량 2500만 톤)은 반구대 암각화 발견보다 6년 빠른 1965년 준공됐다. 장마에 댐이 만수위가 될 때마다 반구대 암각화는 물에 잠겼다. 별도 수문을 달아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반구대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낼 수 있다. 여태껏 이렇게 하지 못한 이유는 식수 부족 때문이다. 

그동안 암각화를 살리자는 방안이 수십 년째 거론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문화재 보존’이냐 ‘맑은 물 확보냐’를 두고 부처 간 이견이 충돌하면서 보존 대책 마련에만 30여 년을 허비해 왔다.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7000년 이상 보존돼 온 선사인들의 체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지경”이라며 “하루빨리 물속에서 건져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1년 중 6개월은 물에 잠겨 있다. ⓒ울산시
반구대 암각화는 1년 중 6개월은 물에 잠겨 있다. ⓒ울산시

전문가, 수문 설치에 사연댐 붕괴 위험 우려

우여곡절 끝에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이 확정됐다. 환경부는 6월24일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를 열어 반구대 암각화 침수를 막기 위해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대신 부족한 울산의 식수원을 경북 운문댐에서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사업 완료 마지노선을 2028년까지로 잡았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다.  

우선 사연댐 수위를 낮추려면 댐체(여수로) 일부를 잘라내 수문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 최고 수준의 댐 설계 전문업체 용역 결과 “수문 설치 과정에서 댐 붕괴 위험이 크다”고 분석됐다. 조홍제 울산대 교수는 “암각화 침수 방지를 위해서는 댐체를 13m 깎아내고 수문을 설치해야 하는데, 중대한 구조적 결함이 올 수 있다”며 “댐의 안전 문제가 선결되지 않으면 암각화 보존 방안은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공주대가 작성한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 학술보고서’에는 사연댐 높이를 낮추면 홍수 때 암각화 부근 유속이 빨라져 쇄굴현상 등으로 암각화의 훼손 정도가 심해질 수 있다. 이 탓에 ‘암각화면 보강공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암각화 보존 방안으로 제시된 댐 수위 조절안 자체가 물의 흐름이나 댐 안전성, 수리학적 현상 등이 허술하게 검토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운문댐에서 하루 7만 톤을 가져와야 울산의 식수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물을 얼마만큼 끌어온다는 핵심 내용도 빠져있다. 또 착공 전까지 ‘주민 동의’를 구하는 전제조건 이행도 만만치 않다. 대구시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기 때문이다. 황기호 대구시 수성구의회 의원은 “운문댐 물을 먹는 수성구 주민들의 의견 수렴 절차도 없었다”며 “불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갈수기 물 공급 대책이 이뤄진 후에 남는 물을 타 지역에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울산환경운동연합은 지자체 간 합의조차 불투명한 ‘반쪽짜리 보존대책’이라고 지적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고대인들의 숨결을 오롯이 전하고 있다. 사슴·고래·코끼리·물소 등 동물과 7000년 전 선사인들의 일상사를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해 바위에 새겼다. 바위의 기록은 염원의 기록이었다. 선사인들은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며 풍요를 기원했다. 바위가 거북이 엎드린 모양과 흡사해 이름 붙여진 반구대 암각화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3000년 전의 고래 사냥 모습이 담겨있다. 2004년 영국 공영방송 BBC는 “고래 사냥의 시원”이라고 보도했다.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 고래 그림을 그린 사미족이 고래잡이의 시원이라는 기존 학설을 뒤엎은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동아시아 문화유산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평가돼 지난 2월1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우선 등재 대상에 선정됐다. 

물에 잠겼다가 노출되기를 거듭하면서 풍화 작용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반구대 암각화 ⓒ울산박물관
물에 잠겼다가 노출되기를 거듭하면서 풍화 작용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반구대 암각화 ⓒ울산박물관

대구·경북 ‘불만’…환경부·울산 ‘환영’ 

반구대 암각화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2009년 문화재청은 연간 4926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국내 문화재 중 가장 비싼 값이 매겨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3097억4000만원)과 해인사대장경판(3079억9000만원)보다 높게 산출됐다. ’국보 중 국보‘인 반구대 암각화가 물고문과 풍화작용으로 심하게 훼손돼 흔적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류에 사연댐이 건설되면서다. 암각화가 새겨진 암석은 점토가 굳어 생성된 셰일로 물과 바람에 취약하다. 장마에 물에 잠길 때마다 광물이 녹아 구멍이 나거나, 그림이 그려진 암석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또 가뭄 때 물이 빠지면서 암면이 함께 부스러지고 유속에 의해 충격을 받기도 한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물에 녹아 있는 산소·수소·탄산 등이 암반 부식과 풍화작용을 가속화시켜 상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겨울철 ‘동결쐐기작용’도 암각화에 치명적이다. 암석 틈 사이의 물이 얼면서 부피가 팽창하고 압력 증가로 암석들이 쪼개진다. 손 교수는 “이암으로 구성된 반구대 암각화는 화강암보다 ‘풍화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겨울철 암석 파괴 현상이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독일 아헨대 베른 피츠너 교수의 2004년 논문 ‘반구대 암각화 풍화 손상도’에 따르면 암각화면 전체가 심각하게 손상돼 있고, 하부는 흙이 되기 직전 상태라고 했다. 2010년 반구대 암각화의 표면 중 23.8%가 훼손됐다는 국내 연구 결과도 있었다. 그 이후 10년 동안 한 번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질 전문가들은 풍화등급 5단계인 암각화 바위면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40% 정도 훼손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바위에 새겨진 300여 점의 그림 중 정확한 형체가 남아 있는 건 20~30점에 불과하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침수로 인해 훼손돼 가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살펴보는 모습 ⓒ울산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침수로 인해 훼손돼 가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살펴보는 모습 ⓒ울산시

문화재청·울산시 등 4개 기관의 합의가 있어야 보존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 하지만 부처 간 의견 충돌로 50년 동안 보전대책은 뒷전으로 밀렸고, 반구대 암각화는 물속에서 ‘인질‘로 잡혀 만신창이가 됐다. 가뭄에 단비가 내렸다. ‘치킨게임’을 벌이던 이들 4개 부처가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법으로 제시된 사연댐 수문 설치에 전격 합의했다. 모자라는 울산 식수는 경북 운문댐에서 가져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번에는 반구대 암각화가 ‘물고문’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환경부와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의 길이 열렸다고 환영했다. 경북과 대구시는 불만스럽다. 환경단체는 지자체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반쪽짜리 대책’으로 보고 있다. 학계에서는 댐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50년 만에 암각화 보존 방안으로 제시된 댐 수위 조절안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하늘이 감춘 그림’ 세계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는 1년 중 6개월은 수장(水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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