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와 추미애, 누가 더 나쁜가
  • 서민 단국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4 09: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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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에게 6개 혐의를 뒤집어씌워 징계를 시도한다. 이는 추미애 취임 이후 이어진, 법무장관의 검찰총장 죽이기의 연장선에 불과했지만, 사소한 것에도 잘 놀라는 더불어민주당은 징계 사유가 경악할 만한 일인 양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그들이 ‘법치의 근간을 흔들었다’ ‘유신검찰이 돌아온 것이냐?’고 했던 ‘판사 사찰’은 검사들이 해당 판사의 성향을 파악해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어보려는 관행에 불과했다. 사안 자체가 말이 안 됐기에 추미애의 심복으로 구성된 법무부 징계위원회도 겨우 정직 2개월을 때리는 데 그쳤고, 그나마도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거부를 당했다. 법무장관이 된 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시도했던 윤석열 쫓아내기가 처절한 실패로 돌아간 마당에 더는 법무장관직에 머물 수는 없는 일, 결국 추미애는 사표를 낸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으니, 말이 ‘사의’지 실제로는 경질에 가까웠다는 게 세간의 평이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 시사저널 박정훈·국회사진취재단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 시사저널 박정훈·국회사진취재단

새해가 시작되기 직전인 12월30일,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3선 의원이던 박범계를 후임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한다. 안하무인과 막말로 짜증을 불러일으켰던 추미애가 떠난 것에 국민이 기뻐했을까?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그간 현 정권이 보여준 인사 원칙은 ‘부적절한 장관이 떠난 자리는 그보다 더한 이로 채운다’였으니 말이다. 새로 법무장관이 된 박범계는 이 원칙이 잘 작동하고 있음을 지난 6개월간 여실히 보여줬다. 물론 스타일 면에서 둘이 다르긴 했다. 추미애가 시종일관 윤석열을 욕하면서 두들겨 팼다면, 박범계는 위해 주는 척하면서 두들겨 팼으니까.

2021년 2월, 박범계가 법무장관이 된 뒤 단행한 검찰인사를 보자. 원래 법무장관은 인사를 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따랐다. 누가 수사를 잘하고 못하는지 장관이 알 수도 없는 데다, 총장이 검찰을 지휘·통솔하려면 인사에 영향력을 어느 정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 장관인 추미애가 총장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인사를 했기에, 윤석열로서는 새 장관은 좀 말이 통하는 사람이기를 바랐으리라. 실제로 박범계는 인사 협의를 위해 윤석열과 두 차례 만났다고 발표했고, 회동 사진까지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성윤 지검장의 교체와 한동훈 검사장 복귀를 비롯해 윤 총장이 제시한 세 가지 인사 요구안은 모조리 거부됐고, 심지어 인사 발표 전까지 구체적인 인사안도 보내주지 않는 폭거를 저지른다. 당연한 얘기지만 발표된 인사안은 권력 수사를 담당하는 이들의 좌천, 정권에 충성하는 이들의 요직 임명, 이쯤 되면 추미애 때와 다를 바가 없는지라, 언론은 이를 ‘윤석열 패싱의 재현’이라고 표현했다. ‘너 때릴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다가 때리는 것과 사람 좋은 척하다가 때리는 것, 이 중 누가 더 나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지만, 주위 사람 3명에게 물어보니 전부 다 상대를 방심시켜 놓고 때리는 게 더 나쁘다고 답했다. “그래도 추미애는 언행일치는 했지 않냐?”는 게 그들의 말이었다.

불리한 입장에 놓였을 때 대응하는 태도에서도 둘은 다르다. 먼저 추미애 장관을 보자. 이분은 그런 상황에서도 위축되는 법이 없다. 일단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 그게 거짓이었다는 증거가 나와도 ‘기억이 안 난 것이지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고 우긴다. 야당 의원의 발언에 대해 ‘소설 쓰고 있네’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한 건 장관의 국회 발언 중 전설로 남을 막말이다. 이와는 달리 박범계는 평소 거친 말보단 ‘살려달라고 해보세요’처럼 고운 말을 주로 쓰고, 상황이 불리하면 그냥 입을 닫아버린다. 박범계의 첫 번째 인사와 관련한 신현수 패싱 논란을 보자. 당시 민정수석이던 신현수는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지난 1년여 동안 삐걱거렸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로 기용된 분이다. 윤석열이 미워서 그의 의견을 다 무시한다 쳐도, 최소한 민정수석과는 협의하는 게 도리란 얘기다. 하지만 박범계는 신현수를 건너뛰고 일방적으로 인사안을 발표해 버렸는데, 이에 분노한 신현수가 박범계와는 일을 못 하겠다며 사표를 내버린 게 바로 신현수 패싱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법무장관이 인사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는지 여부도 쟁점이 됐기에, 법사위에 끌려나간 박범계에게 야당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조수진 의원  검사장 인사안, 장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까?
 박범계  ….
 조수진  인사안 제청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했습니까?
 박범계  ….
 조수진  했으면 언제 했습니까? 직접 제청했어요?
 박범계  ….

이 밖에도 조수진은 ‘직접 제청 안 했으면 누가 했냐?’ ‘제청할 때 배석한 사람은 누구였나’ ‘인사가 일요일에 발표됐는데 인사안 결재가 월요일에 올라왔다는 언론 보도가 오보냐?’ 등등 숱한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온 건 박범계의 침묵이었다. 언론에 따르면 박범계는 총 29번 침묵했다는데, 추미애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 중 어느 게 나쁜지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를 것이다. 내 주위 사람 3명 중 2명은 거짓말은 나쁜데 말을 안 하는 건 최소한 거짓말이 아니지 않냐며 박범계의 손을 들어줬지만, 나머지 1명은 “답을 안 하면 묻는 사람이 열받고, 혈압이 올라 죽을 수도 있다”는 소수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범계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 대법원 판결이 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사건을 재수사한답시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외압을 행사해 기소된 이성윤의 공소장이 유출됐다며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그리고 지난 6월25일에는 중간간부의 90%를 물갈이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중간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에도 골자는 정권 수사를 맡았던 검사의 교체 혹은 좌천, 그리고 친정부 검사들의 요직 임명이었다. 이 인사에 대해 박범계가 “나름 조화와 균형 있게, 공정하게 한 인사”라고 자화자찬한 것은 비슷한 인사를 한 뒤 추미애가 “아무런 줄이 없어도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검사들에게 희망과 격려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 것과 판박이였다. 스스로를 “법무부 장관이기 앞서 기본적으로 집권 여당 소속 국회의원”이라 말하는 박범계, 그는 지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추미애를 넘어 새로운 신화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의 행보를 계속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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