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여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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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힘》ㅣ최준영 지음ㅣ북바이북 펴냄ㅣ236쪽ㅣ14,000원

지난 겨울 폭설이 내리던 날 아침, 서울역 광장에 있던 기자 카메라에 급하게 찍힌 사진 한 장이 전 국민의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중년 신사가 노숙인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고급(?)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고, 지갑을 꺼내 돈까지 쥐어주는 장면이었다. 필자 역시 그 사진을 보며 많이 부끄러웠다. 메마른 인간성에 퍼붓는 얼음물 한 바가지가 사진 속에 들어있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교도소에서 갓 나왔는데 스무 날 동안 밥이라곤 겨우 두 끼 먹었다는 애원이었다. 최준영은 ‘돈을 보내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머리 속을 채우기 전에 지체 없이 송금을 했다. 실상은 그가 그런 적선(積善)을 흔쾌히 할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결핍이 그를 옥죄는 상황이었다.

최준영의 활동무대는 교도소, 노숙인 쉼터, 미혼모 복지시설, 지역자활센터, 공공도서관 등이다. 주로 살기가 몹시 힘든 사람들을 상대로 그는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무대를 보아하니 그의 활동이 그리 큰 돈벌이가 될 것 같지도 않다. 돈 되는 일도 아니거늘 당장의 삶이 고통인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흔히 노숙인은 돈이나 집, 직업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노숙인들과 대화하면서 이들에겐 집과 직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들에게 없는 것은 사람입니다. 인문학은 그들과 제가 사람으로 관계를 맺는 다리가 돼주기 때문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떠도는 그가 모처럼 살고 있는 수원에 인문독서공동체를 꾸리기 위해 없는 사재를 털어 작은 도서관 ‘책고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얼마 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강의도 도서관도 ‘타격’을 입었다. 그래도 그는 멈춤이 없다. 결핍은 반드시 새로운 성장동력을 준다는 도(道)를 이미 수많은 경험으로 얻어 알기 때문이다.

“곧게 뻗은 신작로 같은 인생을 살고 싶었으나 그리 살지 못했습니다. 한탄하고 자책하는 나날이 길었는데, 그게 고스란히 내 사유의 골을 파는 일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울울창창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손대는 것마다 성공했더라면 시건방진 사람이 됐을 것이나 굽이굽이 에돌았던 만큼 겸손이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을 안고 산다. 결핍은 인간 삶의 원형이다. 삶은 결핍을 대하는 태도에서 갈린다. 결핍에 무릎 꿇지 않고,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는 많다.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설계돼있다.

서툰 농부가 쟁기로 밭을 갈면서 말귀 어두운 소에게 우격다짐을 하는 것을 본 촌로가 깨달음 한 조각을 던졌다. “소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여. 억지로 부리지 말게나.” 소 걸음이 천리를 간다. 느린 걸음일지라도 제 길을 가는 소가 어느새 비탈밭에 가르마를 타놓는다. 소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 불가에서 소가 가는 길은 깨달음의 길이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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