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네거티브를 반복하는 진짜 이유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31 14:00
  • 호수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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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네거티브 정치혐오 부메랑
과도한 네거티브 반복되면 청년·중도층 이탈 불가피

내년 20대 대선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네거티브 캠페인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대권 경쟁의 초장부터 혹독한 공격에 시달린 후보는 윤석열과 이재명이다. 그들은 경쟁자들로부터 공통적으로 ‘X파일’과 ‘논문 부정’ 등에 대한 도덕성 검증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검증이 아니라 유례없는 마타도어라고 하소연했다.

윤 후보와 이 후보에 대한 경쟁자들의 공격이 어느 정도 끝나자 정치권의 네거티브 공방전은 예비경선을 마치고 본경선을 앞둔 더불어민주당으로 옮겨갔다. 지지율 1위와 2위인 이재명 후보와 이낙연 후보 간의 공방전은 치열했다. 예비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정책을 놓고 이낙연 후보가 공격하는 수준에서 이제는 공수가 교대됐다. 

이낙연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자 이재명 후보가 이낙연 후보의 과거 흔적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 탄핵 표결에서 어느 편에 섰는지, 누가 적자(嫡子)의 길을 걸었는지를 따지는 이른바 ‘적통(嫡統) 논쟁’을 일으켰다. 

이재명 후보는 7월22일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사진들을 보니 표결을 강행하려고 물리적 행사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근에는 반대표를 던졌다고 하니 납득이 잘 안 된다”고 이낙연 후보를 공격했다. 이낙연 후보 측 최인호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분열을 선동하는 네거티브는 민주당의 길이 아니다”고 대응했다.

17년 전의 ‘적통 논쟁’을 소환한 두 후보의 네거티브를 어찌 봐야 할까?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구태다. 이것은 피의 순수성과 도덕적 우월성에 따라 위계서열을 나누고 신분을 차별하는 조선 사대부의 반민주적 습속이다. 반독재운동을 자임했던 586 중심의 민주당 습속으로 계승돼 재현됐다는 점에서 ‘반민주적인 행태’의 귀환이다. ‘586 재민주화’의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7월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후보 간 네거티브로 당원과 국민의 염려가 있다”며 “금도를 지키면서 근거 있는 논쟁, 상대를 배려·존중하는 정책적 질의와 상호 공방이 벌어지는 수준 높은 경선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7월28일 여의도 당사에서 네거티브 공격 자제를 약속하는 원팀 협약식을 진행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네거티브와 검증·마타도어의 차이

지금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네거티브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책선거와 공정선거를 위한 ‘검증’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네거티브는 유권자들과 후보들이 정책·비전을 놓고 공론장을 펼치면서 국민의 대표를 뽑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이런 네거티브가 계속된다면 유권자의 정치 혐오가 정치권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다. 

선거가 유권자의 공감과 참여 없이 정치권끼리의 네거티브 리그전으로 흘러간다면, 불공정에 민감한 청년세대와 중도층의 외면과 이탈은 불가피하다. 이에 정치권은 검증, 네거티브, 마타도어의 차이를 구분해 보고, 정책선거를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언론과 시민단체는 정치권이 왜 네거티브를 끊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면밀히 진단해 봐야 할 것이다.

선거판에서 공격받는 후보는 ‘이미 다 해명한 것’이라며 부당한 네거티브를 중단할 것을 호소한다. 반면 공격하는 후보는 ‘정당한 검증’이라며 날을 세운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검증’이고 ‘네거티브’일까? 이 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흔히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는 전략을 ‘포지티브 전략’이라 하고, 상대의 약점을 부각하는 전략을 ‘네거티브 전략’이라고 한다. 즉 능력, 경력, 자질, 정책, 비전 등을 부각시켜 자신이 적임자임을 내세우는 전략이 전자다. 상대의 무능과 실패, 부도덕성 등을 들추어 적임자가 아니라고 비판하는 방법이 후자다. 단순화하면 ‘내가 상대보다 낫다’는 것이 포지티브, ‘상대가 나보다 못하다’는 것이 네거티브다. 

그렇다면 우리는 검증과 네거티브, 마타도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사실’에 기초한 비판은 ‘검증’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 사실에 근거했더라도 지나치게 내용을 부풀린 비판은 ‘검증’이라기보다 ‘네거티브’에 가깝다. 마타도어는 사실이 아닌 허위와 거짓에 기초한 비판으로 중상모략에 가깝다.  

정치권이 네거티브가 정책선거를 실종시킨다는 비판에도 이를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그 핵심은 유권자들이 좋은 후보를 선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유권자들은 좋은 후보의 장점을 보고 선택하기보다는 나쁜 후보의 단점을 보면서 덜 나쁜 후보를 선택하려고 한다.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공방을 보면서 더 나쁜 후보와 덜 나쁜 후보의 기준을 가린다.

네거티브가 계속되는 이유는 그것이 포지티브보다 가성비가 높고 정치적 효과가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부정적 정보는 기억에 각인되기 쉽다는 ‘부정성 효과 이론(negative effect theory)’으로 정당화된다. 즉 유권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지지할 때보다, 싫어하는 후보를 반대할 때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지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언론, ‘정책토론과 검증의 장’ 만들어야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왜 좋은 후보를 선택하기가 어려울까? 이는 정치권이 선거판을 ‘엘리트들만의 일방적인 경쟁’으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정책과 공약 그리고 국정 운영에 대해 유권자와 충분히 공감하고 소통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공약과 정책을 선전선동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선거 승리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정책과 공약에 대한 국민과 후보자 간의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숙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신뢰와 합의 형성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이런 분위기와 과정을 만드는 데 너무나 소홀했다. 

학술적으로 ‘숙의민주주의’에서 보는 선거와 선거 이후 국정 과정은 숙의투표(deliberative voting)를 매개로 양쪽으로 선순환하면서 환류(feed back)하는 과정이다. 숙의민주주의에서 보는 선거는 투표하기 이전에 다음 정권의 국정 운영과 주요 정책에 대해 유권자와 소통하고 조정하는 대화와 숙의의 과정이다. 쟁점이 되는 정책에 대해 숙의를 통해 이익과 선호 및 정체성을 변형하고 조정해 합의해 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네거티브를 견제하고 숙의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할 언론과 시민단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책토론과 검증의 장’을 여는 일이다. 정책과 공약에 대한 공론장을 만들어 유권자들이 참여하고 판단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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