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스크는 시진핑 리스크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1 12:00
  • 호수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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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을 시작으로 극단적 규제 쏟아내는 중국
장기집권 노리는 시 주석의 포석인가?

중국 정부의 ‘극단적 규제’가 쏟아지고 있다. 시작은 물론 지난해 10월 정부 정책을 비판했던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퇴출이었다. 중국 정부는 당시 알리바바 자회사인 핀테크 업체 앤트그룹의 미국 주식시장 상장을 막았다. 시장 지배력을 키운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견제와 규제는 계속 범위를 넓히고 있다. 미국 등 해외 상장 규제, 빅데이터 정보 공유, 반독점법 적용 범위 확대 등 수단도 다양하다. 이커머스 기업들의 독점행위에 대한 막대한 규모의 벌금 부과가 있었고, 중국 최대의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은 당국의 제지를 뿌리치고 뉴욕증시에 상장했다가 중국 내 모든 앱스토어에서 퇴출당했다. 텐센트에는 온라인 음악 독점 판권을 포기하라는 명령이, 25개 인터넷 플랫폼 기업에는 스스로 잘못을 찾아 바로잡으라는 주문까지 떨어졌다.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빅테크 기업에 대해 중국 정부가 규제 수위를 높이면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EPA 연합

공산당 통치 방식과 민간 경제 사이 균형 무너져

앞으로 사교육 기관은 비영리 기구로 등록해야 한다는 지침도 나왔다. 예체능 외에 영어나 수학 같은 교과목을 가르치는 사교육 업체 설립은 금지됐다. 방학과 휴일에는 학원 수업을 못 하게 하고 현직 교사들의 학원 강의도 불법화했다. 음식배달 서비스 플랫폼 기업들에는 배달원의 급료를 인상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사회보험 가입 의무도 부과했다. 가격 폭등이 심상치 않은 부동산 시장에는 ‘보장성 임대주택’이 나왔다. 청년층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장기임대주택으로 ‘시장 세력’의 참여를 장려해 시장 수준 이하의 임대료를 받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돈 벌 생각을 하지 말고 민간업체들이 떠맡으라는 말이다.

쏟아지는 규제들은 확실히 시장에 부정적이다. 예측 불가능한 규제를 쏟아내는 것은 중국식 시장주의의 한계다. 언제나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흔히 리스크(risk)는 계산이 가능한 불확실성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현재 중국 당국이 만드는 리스크는 계산이 안 된다. 정부와 당이 시장을 압도하면서 개혁·개방 이후 나름대로 유지됐던 중국공산당의 통치 방식과 민간 경제부문 간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상당 기간 중국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모두가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중국의 정책 방향은 바뀐 적이 없다”며 “중국이 국가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실 중국의 규제들은 대개 정치적인 동기가 있다. 쏟아지는 규제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도입된 규제들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커져 해결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대응인 경우가 많다. 우선 음식배달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를 보자. 중국의 음식배달 산업은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환상적이다. 배달이 안 되는 게 없다. 배달원이 직접 장을 보고 집까지 가져오는 서비스도 있는데, 배달 요금은 6위안, 1000원 정도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배달원 처우가 나쁘다는 뜻이다. 지난 1월에는 한 배달원이 임금 체불을 주장하면서 분신한 적도 있다. 중국 내 배달원은 1000만 명이 넘는다. 정치·사회적으로 방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사교육 분야에 대한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사교육 업체의 신규 등록 중단은 사실상 웬만하면 못 하게 만들겠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적 전통에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의 영향도 있어 중국의 교육열은 엄청나다. 그러나 사교육 때문에 가계의 부담이 너무 늘어났고, 이게 급기야 출산율 급락의 이유로도 꼽히고 있다.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 것은 맞다. 앤트그룹의 상장 연기와 알리바바에 대한 제재도 창업자 마윈에 대한 ‘괘씸죄’가 유일한 이유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 금융 당국은 과도한 알리바바의 대출 영업을 금융 부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미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혁신 금융 서비스는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부채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앞으로 대형 핀테크 플랫폼의 대출 영업에 대해 전반적으로 규제 수준을 높일 예정인데,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를 불합리한 조치라고 하기는 어렵다.

중국은 공산당이 통치하는 나라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체제 유지다. 규제의 배경에는 사회적 불만을 가라앉히고 체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있다. 차이나 리스크를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국 당국의 규제는 주로 플랫폼 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 기업의 ‘데이터 권력’이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디디추싱에 대한 신규 고객 모집 금지 조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객 모집 금지는 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실제로 심각한 법규 위반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엄청난 개인정보와 도로 상황 정보를 보유한 중국 기업이 미국 증시로 간다면 정보의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와 청정 에너지, 자동화, 로봇,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글로벌 신성장 산업이거나 미국의 압력과 영향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산업에 대해서는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 당국의 요구는 그럴 만한 근거도 있다. 따지고 보면, 중국 내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은 중국 정부가 관련 규제를 느슨하게 적용하면서 해외 경쟁자들을 차단해 왔던 덕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지층 결집 위한 ‘홍색 규제’ 계속될 전망

하지만 리스크에 대응하는 중국 정부의 방식은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교한 대안을 찾는 대신 당의 ‘의견’이라는 사실상의 명령을 통해 아예 현안 자체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막무가내로 규제를 쏟아내면서 중국은 시장의 충격을 마다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아예 반응은 고려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차이나 리스크는 사실 시진핑 리스크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 여부를 결정할 내년 11월 20차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예정돼 있다. 등소평이 애써 세워놓은 전통을 무너뜨리고 장기집권을 노리는 시진핑 주석에겐 그럴 만한 명분과 실적이 필요하다. 내년 당대회 전까지 민심 이반이나 체제 불안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눈앞에 홍수가 나도 위로부터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게 중국이다. 교육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사교육 시장을 죽이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플랫폼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모두 시진핑 주석의 직접 지시로 시작된 조치일 것이다. 정책의 효과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공산당에게 중요한 건 정책의 효과가 아니라 정책이 상징하는 메시지다. 국내 지지층 결집을 위한 ‘홍색 규제’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오는 9월부터는 중국 내 모든 기업에 ‘데이터보안법’이 적용된다. 앞으로 더 많은 빅테크 기업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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