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칩거시대 경쾌한 방구석 탬버린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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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ㅣ고두현 지음ㅣ문학의숲 펴냄ㅣ256쪽ㅣ14,800원

산문집(散文集)집 중 서평 쓰기 가장 힘든 책이 수필집이다. 하나의 주제로 관통하지 않고 저자 마음대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편하게 늘어놓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그 책을 소개해야 할지 난감하다. 좋긴 좋은데 어떻게 좋다고 말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다.

《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는 신문사 ‘문화부 기자’를 오래 한 신춘문예 등단 시인이 쓴 수필집이다. 문화부 기자 출신 작가의 특징은 ‘문장력을 넘어 문학, 역사, 생활상식 등등에 걸쳐 아는 게 많다’는 점이다. 소설가 김훈이 문화부 기자 출신이다.

김훈의 문장이 베이스 기타라면 고두현의 문장은 탬버린이다. 같은 문학가라도 소설과 시로 노는 물이 달라서 그럴 것이다. 고두현의 “냉면꾼”은 ‘산책자를 위한 인문 에세이’를 표방한 만큼 생각(思惟)이 깃든 산책(散策)으로 만든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것 같다. 산책은 우리에게 한없는 평화와 자유를 주는데 그 안에 성찰이 들어있다. 걸으면서 생각하기를 좋아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무 사이를 소요(逍遙 이리저리 자유롭게 다님)하며 제자들을 가르친 것이 소요학파 기원이다.

고두현의 소요는 전방위다. ‘메밀꽃 필 무렵’에 봉평에 가서는 늙은 장돌뱅이 허 생원과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 아래 메밀밭을 거닌다. 순천 여자만에서는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빙 둘러싼 무진’을 김승옥과 걷는다. 기차 종점도 여의도 비행장 불빛도 사라져버린 마포를 걸을 때면 구수한 토하젓이 입에 침을 고이게 한다. 마포를 걸을 때면 마포대교만 볼 것이 아니다. 마포 3포(서호, 마호, 용호)의 역사와 마포8경의 풍광을 봐야 한다. 토정동은 토정비결 대가 이지함이 살았던 곳이다.

나그네는 길에서만 걷지 않는다. 문학을 걷고, 정신을 걷고, 생활도 걷는다. 1920년대 작가 김소저는 “살얼음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먹고 우루루 떨어져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이라고 냉면찬가를 불렀다. 평양냉면의 메밀면은 이가 아니라 목젖으로 끊어야 하므로 입 안 가득 넣고 먹어야 메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 그 이유는 면발이 붇기 전에 일초라도 빨리 맛을 보기 위해서다. 이야기꾼에게는 늘 냉면 한 사발이 책 한 사발이다.

시인은 ‘혼자 여행할 땐 새우를 먹지 말라’고 경고한다. 새우는 간 해독 작용이 뛰어나 술안주로도 좋지만 아르기닌 성분이 많아 정력제로 간주되기 때문인데 한 번에 수십만 개의 알을 낳는 생명력이 새우를 상징한다. ‘굽은 허리도 펴게 하는 가을 스태미너식’에 대한 경고는 시인의 말이 아니라 본초강목에 기록돼있는 말이다. 시인은 또 기자라서 새우깡 한 봉지에 새우가 몇 마리나 들어있는지도 안다. 4마리가 들어간다. 코로나19 칩거시대에 방구석 양탄자를 타고 온 지구를 소요할 만한 탬버린 수필집이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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