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미래권력’이 한국을 움직인다 [2021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7 07:00
  • 호수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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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지금은 ‘정치의 시간’…영향력 ‘톱 10’ 중 7명이 정치인
文대통령-이재명-윤석열-이준석 ‘톱 4’…BTS 5위 기염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이 질문은 왜 중요할까. 현재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는 동시에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치의 시간’이다. 2021년 8월 시사저널이 32번째로 내놓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 따르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권에 7명의 정치인이 이름을 올렸다. 1위부터 4위까지를 정치인이 싹쓸이했다. 범위를 20위권까지 넓혀도 결과는 같다. 무려 15명이 정치인이다. 

여기엔 이중적 의미가 있다. 내년 3월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정치권의 영향력이 커지는 모습은 사실 자연스럽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선보다 중요한 정치 이벤트는 없다. 아울러 지금은 코로나19가 불러온 미증유의 위기 상황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최전선에는 국가가 있다. 재난적 위기에서는 당연히 정치가 가장 주목받게 된다. 다른 맥락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정치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치 혐오’와 ‘정치 과잉’의 대한민국이라는 비판을 수시로 받지만, 한국인들은 지금 정치에 기대를 걸고 있다. 

2021년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톱 10’에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자리했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지목률 69.4%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와 3위에는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17.9%)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16.4%)이 올랐다. 4위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13.1%)다. 5위와 6위는 대중문화계의 BTS(8.6%)와 경제계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8.1%)이 각각 차지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3.3%)은 공동 7위에 올랐다. ‘국민MC’로 사랑받는 방송·연예인 유재석(3.3%)은 7위로 제2의 전성기를 실감하게 했다. 9위와 10위에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2.6%)와 이낙연 의원(2.3%)이 이름을 올렸다. 

시사저널은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인·문화예술인·종교인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1000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1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를 5개의 열쇳말로 정리했다.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1 대선 D-200…미래권력이 현재권력 밀어내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구약성경 전도서 1장).” 성경의 말처럼 흘러가는 시간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권력도 흘러간다. 지금 ‘정치의 시간’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점점 다가오는 권력 이동의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에도 높은 지목률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됐지만, 지목률(69.4%)은 작년(80.7%)에 비해 10%포인트 떨어졌다. 집권 첫해인 2017년 조사에서 무려 97.3%라는 압도적 지목률을 나타낸 이후 그 영향력이 해마다 내리막 추세인 것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마지막 집권 5년 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영향력도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지만, 세월은 야속하게도 현직 대통령의 영향력을 조금씩 줄어들게 만들고 있다. 

권력은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어둠이 물러가서 아침이 오는 게 아니라, 해가 뜨기 때문에 어둠은 물러간다. 그렇게 미래권력은 점점 현재권력을 밀어내고 있다. 내년 대선을 200여 일 앞둔 지금,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유력 대선주자’들이다.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위와 3위를 각각 차지한 게 바로 그 방증이다. 동시에 이런 결과에 대해서는 상당수 전문가들도 최근 지지율이 보여주듯 내년 대선이 ‘이재명 대 윤석열’ 구도로 이뤄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점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한다. 물론 후발주자들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낙연 의원(2.3%, 10위), 최재형 전 감사원장(1.5%, 공동 14위), 정세균 전 총리(0.9%, 20위) 등도 ‘영향력 톱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2 킹메이커는 여야 대표…송영길과 이준석의 시간

미래권력의 시간에서 대선주자만큼 주목받는 유일무이한 대상이 바로 ‘킹메이커’다. 대선후보가 결정되기 직전의 시간인 지금, 가장 주목받는 킹메이커는 바로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다. 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분명 대선주자의 역량이지만, 정당 권력의 꼭짓점에 있는 당 대표가 어떤 전략과 계획 아래 대선을 진두지휘하는가도 매우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금 한국을 움직이는 주요 인물로 선정된 데는 여야의 대선후보가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전까지의 시간은 ‘정당의 시간’이라는 점을 우선 환기시킨다. 한국 정치사에서 한 번도 제3지대는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 대선후보를 배출하는 그릇은 바로 정당이라는 명료한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다.
 
두 사람의 독특한 캐릭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내 주류세력이 지원하는 유력 경쟁자를 따돌리고 당 대표로 선출된 이들은 지금 단순 관리자를 넘어 각자 자신만의 정치적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국회의원 공천권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은 보통의 시간이라면 조연 역할에 머무르게 될 텐데, 지금 이들은 당내 경선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넘어 중도층 확보 등 정당 간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치열한 시간을 보내며 주연급 역할을 하고 있다. 

 

3 거인들의 시대…노무현·박정희·김대중은 살아있다

노무현(3.3%), 박정희(2.1%), 김대중(1.8%). 세 사람의 전직 대통령은 여전히 대한민국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고인(故人)이 된 대통령들을 국민이 그리워하는 마음이 반영된 결과일까. 그보다는 ‘시대의 거인’이었던 이들이 상징했던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산업화(박정희)와 민주화(김대중), 반칙과 특권 없는 공정한 세상과 균형 발전(노무현)이라는 시대의 숙제는 아직 충분히 완성되지 않았다.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은 현재의 정치적 리더십이 취약하다는 비판도 가능하게 한다. 뼈아픈 지적이다. 과거 지도자들에 대한 향수가 강해지는 현상은 미래 한국을 끌고 갈 새로운 리더십이 아직 탄생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재난적 상황이 과거와 같은 강력한 대통령의 리더십을 호출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4 세대교체 新바람 부나

지금은 누군가에게는 한 시대의 마지막 날이라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첫날이다. 한국을 움직이는 주체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고 있다. BTS가 바로 그 상징이다. BTS는 작년 지목률 3.3%의 두 배가 넘는 8.6%로 5위를 차지하며 정치인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BTS가 200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스타인 유재석(3.3%, 공동 7위)과 나란히 10위권 내에 자리하며 신구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36세 ‘0선 중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1%의 지목률로 4위 자리에 오른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보다 앞에 자리한 인물은 문 대통령과 차기 대권에 가장 바짝 다가선 잠룡 이재명·윤석열 말고는 없다. 이 대표는 정치·세대교체 갈망의 돌풍을 타고 조직과 계파, 지역, 자금 없이 4선, 5선의 전직 원내대표들을 누르고 당선됐다. 당 대표 취임 이후에도 공언한 대로 경선 버스에 윤 전 총장을 ‘조기 탑승’ 시키는 등 나름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5 ‘톱 10’ 내 유일한 경제인 이재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제인 중 유일하게 ‘톱 10’ 안에 이름을 올렸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복역 중이었던 이 부회장은 최근 8·15 광복절 가석방 대상에 포함돼 8월13일 풀려났다. 

이 부회장은 8.1%의 지목률로 6위를 차지했는데, 작년 11.5%로 3위를 차지했던 것과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이런 흐름은 상징적이다. 이 부회장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국민들이 점점 삼성과 삼성 총수인 이 부회장을 구분해서 보고 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는 말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유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얘기가 ‘이 부회장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는 말로는 더 이상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2021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어떻게 선정됐나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는 1989년 창간호부터 올해까지 32년째 이어지고 있다. 단일 주제로는 국내 언론 사상 최장기 기획이다. 이 조사는 우리나라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에서 각 100명씩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매년 국내 최고의 여론조사 전문기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관련 조사를 벌이고 있다.

올해 조사는 6월18일부터 7월16일까지 진행됐으며, 조사방법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조사 대상 전문가 1000명은 남성이 703명, 여성이 297명이다. 연령별로는 30대 207명, 40대 305명, 50대 370명, 60대 이상 118명이 설문에 참가했다. 전문가 조사 특성상 40~50대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많다.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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