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와 김범수 의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10.12 10:00
  • 호수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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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신화’에서 ‘탐욕의 상징’이 되다…김범수의 카카오가 가야 할 길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국내 플랫폼 스타트업 업계에서 전례 없는 성공 신화를 쓴 인물이다. 흙수저 출신이지만, 맨손으로 카카오를 창업해 한국 최고 부호가 됐다. 이런 김 의장과 카카오가 최근 ‘탐욕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김 의장 자녀들의 편법 경영승계 의혹과 자회사의 골목상권 침해 등으로 정치권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카카오 내부에서조차도 김 의장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각종 논란으로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 의장의 모습에는 그야말로 빛과 그림자가 교차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흙수저 출신은 어떻게 국내 최고 부호가 되었나 

김 의장의 히스토리는 인생역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전라도 담양에서 태어난 김 의장은 그야말로 ‘빈농의 자식’이었다. 2남 3녀 중 셋째이자 장남이다. 김 의장 부모는 다섯 남매의 교육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이사했다. 

이 때문에 유년 시절 김 의장은 부모와 5남매 그리고 할머니까지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다. 부모는 밥벌이 때문에 김 의장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독하게 공부한 끝에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김 의장은 대학 시절 소문난 ‘잡기왕’이었다. 재수까지 하며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는 고스톱과 포커, 당구, 바둑 등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김 의장의 잡기는 훗날 그가 창업한 국내 최초 게임 포털 서비스 ‘한게임’의 밑거름이 됐다. 이와 함께 그는 대학 시절부터 초기 PC통신 인터넷의 가능성을 봤다. 이 때문에 1991년 대학원 졸업 뒤 삼성데이터시스템(SDS)에 입사해 컴퓨터 언어를 본격적으로 팠다.

김 의장의 창업 스토리는 PC방에서 시작됐다. 스타크래프트 열기가 한창이던 1998년 김 의장은 서울 행당동 한양대 앞에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 ‘미션 넘버원’을 오픈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삼성SDS를 다니며, 부업으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 의장이 전공을 살려 개발한 ‘PC방 고객 관리 프로그램’은 그의 첫 창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김 의장이 차린 PC방은 크게 성공했으며, 이후 삼성SDS를 퇴사해 본격적으로 창업의 길을 걸었다. 

김 의장의 두 번째 창업은 컴퓨터 게임의 부흥을 이끌었던 한게임이다. 고스톱, 포커, 바둑, 장기 등을 인터넷으로 즐길 수 있는 국내 최초의 게임 포털이었다. 1998년 11월 오픈한 한게임은 설립 1년6개월 만에 1000만 명의 회원을 모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김 의장이 젊은 시절 취미로 즐기던 잡기가 비즈니스의 테마로 되돌아와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준 것이다. 이후 김 의장은 대학 시절 절친한 친구이자 삼성SDS 동기였던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손잡고 한게임과 네이버를 합친 NHN을 탄생시켰다.

김 의장은 NHN 공동대표로 일하다가 2007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08년 벤처기업 ‘아이위랩’을 인수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김 의장은 PC 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로 급변하고 있다는 걸 직감하고, 동영상과 사진 콘텐츠 공유가 가능한 모바일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가 현재 국내 모바일 대표 메신저로 자리매김한 ‘카카오톡’이다.

카카오톡은 2010년 출시하자마자 대박을 기록했다. 회원 수는 반년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섰고 1년째에는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카카오톡을 사용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때 김 의장은 아이위랩의 사명을 아예 카카오로 변경하며 브랜드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어 김 의장은 2014년 네이버의 최대 경쟁사 다음을 인수해 IT 산업계의 판도를 흔들었다.

이후 카카오는 자회사의 다양한 유료 서비스와 인터넷 은행 사업 등이 성공하면서 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 대상 기업집단 지정에서 자산총액 20조원으로 재계 서열 18위가 됐다. 현재 카카오는 인수·합병 등을 통해 계열사 118개, 시가총액 66조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골목상권 침해·갑질·승계 의혹 휩싸여

김 의장 역시 국내 최고 부호로 등극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500대 부자 순위에서 김 의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212위)에 이어 225위를 기록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6월에는 이 부회장을 제치고 처음으로 한국 최고 주식 부자가 됐다. 아울러 올해 2월 자신의 재산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히면서, 재벌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새 역사를 써내려갔던 김 의장은 어느새 대기업 총수로서 국민적 시험대에 올랐다. 혁신기업의 아이콘이었던 카카오는 최근 독점·갑질 기업의 오명을 쓰고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먼저 카카오모빌리티의 수수료 인상이 그 신호탄을 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8월초 ‘빠른 배차 서비스’를 의미하는 스마트호출 요금제를 기존 1000원 정액제에서 0~5000원이 부과되는 탄력요금제로 바꿨다. 또 택시기사를 대상으로도 월 9만9000원의 프로멤버십 요금제를 신설했다. 전국 택시기사 10명 중 9명이 카카오T를 사용하면서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중개시장을 장악하자 수익 극대화에 나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아울러 카카오는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골목상권 침해 논란도 빚었다. 카카오가 그동안 퀵서비스나 꽃배달, 골프장, 미용실, 네일숍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골목상권에 침투해 왔다는 사실이 공론화됐다. 소상공인들은 “카카오가 해외시장을 개척해 경쟁하는 대신 좀 더 손쉬운 국내 자영업종 분야로 진출해 중소기업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김 의장 자녀들의 편법 경영승계 의혹도 불거졌다. 카카오의 지주회사로 평가받는 케이큐브홀딩스는 김 의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개인회사다. 2007년 1월 설립된 케이큐브홀딩스는 카카오 지분 10.5%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김 의장이 보유한 카카오 지분은 올해 6월말 기준으로 13.3%다. 김 의장이 카카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총 23.8%라고 볼 수 있다.

케이큐브홀딩스는 사실상 가족회사다. 김 의장의 남동생 김화영씨가 지난해 말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다. 김 의장과 부인 형미선씨는 기타 비상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김 의장의 아들과 딸도 이 회사에 재직 중이다. 케이큐브홀딩스의 임직원 7명(올해 4월 기준) 중 대부분이 김 의장 가족으로 구성돼 있는 셈이다.

2020년 11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해 단체교섭 요구에 즉각 응하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년 11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해 단체교섭 요구에 즉각 응하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3년 만에 국감 출석해 연신 고개 숙여

올해 김 의장은 자녀 등 가족들에게 케이큐브홀딩스 주식도 증여했다. 아내를 비롯해 친인척에게 주식 33만 주(1월19일 종가 44만원 기준, 1452억원)를 증여했다. 김 의장의 두 자녀는 각각 6만 주, 약 264억원씩의 주식을 받았다. 이 같은 배경을 두고 여타 재벌들처럼 자녀들의 회사 승계를 염두에 둔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자녀들을 카카오 지배구조의 핵심 축인 비상장회사에 합류시킨 것과 주식을 증여한 점이 사실상 ‘경영권 승계’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 의장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카카오의 한 직원은 “김 의장의 낙하산 인사들이 파벌을 형성에 정치질을 하고 있다”며 “김 의장 측근들을 계열사 수장으로 앉히고, 방만한 경영을 방조한 것이 카카오를 망쳤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 카카오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과 인사·보상 체계에 대한 내부 불만이 쏟아져 나오면서 김 의장과 카카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힘을 실었다.

결국, 김 의장은 비판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백기투항했다. 김 의장은 3년 만에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연신 고개를 숙였다. 10월5일 국회 정무위원회 증인으로 출석한 김 의장은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사업에는 절대로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며 “골목상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케이큐브홀딩스와 관련해 가족회사가 아닌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번 국감에 출석한 김 의장은 ‘카카오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고민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카카오가 지금 하는 사업들이 과연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공감하면서 “카카오가 가진 기술을 많은 플랫폼에 적용해 돈 없고, 배경 없고, 기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이제 해야 할 일과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책임이 커졌다. 재편할 것은 재편해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고 미래기술을 혁신하는 데 더욱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거칠 것 없는 추진력과 혁신으로 성공 스토리를 이어온 김범수 의장. 김 의장의 향후 행보는 수준만 다를 뿐 카카오와 마찬가지로 압박을 받고 있는 다른 플랫폼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10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10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케이큐브홀딩스, 금산분리·지정자료 누락 의혹

공정거래위원회도 김범수 카카오 의장 정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조사를 진행하면서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먼저 공정위는 카카오와 김 의장 개인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의 ‘금산분리’ 규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카카오의 지주회사 격인 케이큐브홀딩스는 설립 당시 경영컨설팅 서비스 업종이었지만, 지난해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금융사인 케이큐브홀딩스가 비금융사인 카카오를 지배하는 셈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 내 금융·보험사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갖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걸 제한하고 있다. 이런 지배구조가 법 위반으로 확정되면 케이큐브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 지분 10.5%에 대한 의결권을 포기하거나 카카오의 지배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대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김 의장이 ‘지정자료’를 제출하면서 케이큐브홀딩스 관련 사항을 누락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지정자료란 공정위가 ‘공시 대상 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공정거래법에 따라 각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부터 제출받는 계열회사·친족·임원·주주 현황 자료다.

공정위는 지정자료 보고 누락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다. 기업이 지정자료 제출에 불성실하게 임할 경우 검증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월5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도 “케이큐브홀딩스에 대해선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규정을 위반했는지를 보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신속히 조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관건은 고의성 여부다. 만약 공정위가 고의로 보고를 누락했다고 판단하면 김 의장에 대한 검찰 고발이 불가피하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고 판단할 경우엔 단순 경고에 그칠 수 있는 만큼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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