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 육잠 스님의 청빈한 삶이 주는 깨달음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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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소박하게》ㅣ전충진 지음ㅣ나남출판 펴냄ㅣ344쪽ㅣ20,000원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나자연)’가 도시에 사는 중〮장년 ‘아재’들에게 인기다. ‘취직, 결혼, 자녀 출산, 양육, 교육, 부모 공양’이라는 ‘반강제 마스터 플랜’에 맞춰 숨가쁘게, 때로는 허리가 휘도록 달려왔던 이 남자들은 스스로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비슷한 또래의 어떤 사람들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세상만사를 훌훌 떨쳐버린 채 저 깊고 깊은 산속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부러움과 대리만족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서 빨리 은퇴만 해봐라. 나 또한 저리 살리라’를 다짐하건만 그 또한 공염불에 그치고 마는 사람이 대다수다. 귀농, 귀촌도 어려운 마당에 전기도, 수도도 없는 산골 오지에 홀로 들어가 사는 일이 하루아침 결심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리 살 수 있는 땅이 널려있어 아무렇게나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남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신념을 오랫동안 다지는 한편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마음과 조건에 맞는 땅과 집도 두루두루 보아야 한다.

《단순하게 소박하게》는 그러한 신념을 다지도록 도움을 준다. 장차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밑그림 그리는 것도 돕는다. 이제는 약간 흔한 ‘나자연’ 경험 수기가 아니다. ‘문명을 거부한 수행자의 일상’을 담은 수묵화이자 명상록이다. 수행자는 육잠 스님이다. 그가 터를 잡은 곳은 거창군 가북면 내촌리 덕동마을인데 1,317m 수도산 봉우리가 내리뻗은 능선 한 자락을 뼈대 삼은 첩첩산중이다. 전기는 당연히 없고, 이동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다. 스님은 그곳에 ‘두곡산방’이라는 삼간 집을 지은 후 낮에는 자급용 농사를 짓고, 밤에는 정신 농사를 짓는 삶을 산다. 산방과 해우소, 토굴까지 스님이 사는 마을 곳곳에는 절도, 절제, 운치, 여유가 계획적으로 숨쉰다.

《단순하게 소박하게》 저자는 주인공 육잠 스님이 아니라 독도에서 1년간 ‘독도 상주기자’로 독도에 들어가 살았던 신문기자 출신 전충진이다. 저자의 이 정도 공력만 봐도 이 책이 그리 호락호락한 관찰기나 기행문 정도가 아님을 직관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책에 나오는 덕동마을은 10년 전까지 있었던 마을이라 이제는 지구상에 없다. 전봇대와 시멘트 때문에 그리 돼버렸다. 그러므로 2020년 EBS 교육방송 ‘한국기행’ 프로그램에서 다룬 육잠 스님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거창 덕동마을이 아니라 영양군에 있는 다른 마을이 배경이다.

덕동마을 입구 양철벽에는 ‘비닐봉지 한 장이라도 되가져 갑시다. 발자국도 가지고 가시시시요요’라고 경고문이 쓰여있었다. 두곡산방, 해우소, 진돗개 덕구, 와운굴(스님이 동안거에 드는 토굴) 등 육잠 스님과 사는 모든 것에는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의 철학이 상당히 계획적(?)이고 섬세하게 배어있다. 육잠처럼 무소유로 청빈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다면 살 집은 핑계다. 경북 울진 바닷가 마을 빈집에서 한 달 사는데 10만 원이면 된다. ‘돈, 문명, 물질’에 갇혀 하루 하루 버티며 사는 삶이 참으로 뻔하고 재미가 없다. 아아, 그러나 어이 하리. ‘삶은 계란’인 것을!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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