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논란의 진짜 가해자는 누구일까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6 11: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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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자친구의 폭로로 김선호 논란 시작돼…진실 규명 막고 ‘묻지마’식 매장 두둔한 언론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성공으로 화려하게 떠오른 김선호가 최근 충격적인 논란과 극적인 반전을 겪었다. 인터넷 게시판 폭로글로 시작된 사태다. 익명글이었지만 김선호의 전 여자친구가 김선호를 저격한 글임이 곧 밝혀졌다. ‘K는 인성이 쓰레기, 티비 이미지와는 다른 실체, 일말의 양심과 죄책감도 없는 쓰레기, 주변 사람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 돈에 집착, 혼인빙자, 부모 소개, 작품 손해배상 운운하며 낙태 종용, 낙태 후 변심, 평소 동료들 험담’ 등등 김선호를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며 결국 그에게 일방적으로 버림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논란이 폭발했다. 김선호가 3일 만에 그 글 속의 K가 자신임을 인정하며 사과했다. “좋은 감정으로 만났지만 저의 불찰과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그분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김선호가 침묵할 때부터 여론이 부글부글 끓었는데, 자신임을 인정까지 하자 폭발해 버렸다. 김선호는 인간성 최악의 이중인격자로 낙인찍혔고, 업계에서 즉시 매장됐다. 광고 위약금을 수십억원 이상 물게 될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CJ ENM 제공
ⓒCJ ENM 제공

폭로의 신뢰성 검증 외면 

처음부터 이상했던 건 그 여성의 글에 너무 사적인 내용이 많고 감정적이어서 신뢰성에 의심이 갔는데도, 많은 이가 액면 그대로 믿었다는 점이다. 물론 김선호가 정말 충격적인 ‘이중인격자 쓰레기’라서 그런 폭로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걸 근거도 없이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김선호의 인정과 사과글이 나온 이후 사태도 이상했다. 김선호는 포괄적으로 사과만 했을 뿐 그 여성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 사과가 여성의 주장에 대한 인정일 수도 있지만, 워낙 사적인 내용들이라 공개적으로 일일이 다투기가 어려워 일단 말을 아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론매체들은 김선호의 사과가 여성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 후 많은 언론이 김선호가 이미 여성의 주장을 인정했다는 식의 보도를 반복했다. 

여성의 반응도 이상했다. “서로 오해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사람을 매장시켜 놓고 이제 와서 오해라니? 뭐가 오해인지 밝히지도 않았다. 의구심이 증폭됐는데, 이런 여성에 대한 의혹은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여성이 먼저 사생활 폭로로 사람을 매장시켰는데도, 그 여성의 신뢰성에 대한 검증은 사생활 침해이니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언론이 검증을 막았다. 

그때 디스패치 보도가 터졌다. 낙태 이후 변심했다는 폭로와 달리 낙태 이후에도 두 사람이 잘 사귀었고 김선호 부모도 소개시켰다고 했다. 그 여성의 거짓이 김선호를 힘들게 했고, 사치로 김선호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웠다고 했다. 그 여성의 지인이 ‘김선호가 그 여성의 거짓말에 지쳤을 것이다. 김선호를 비난하는 게 아이러니’라고 했다. 심지어 그 여성이 동영상과 녹음파일들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기사는 폭로글에 나온 ‘김선호 인성 쓰레기’ 주장과는 결이 다른 내용들이었다. 게다가 인터넷에 증언들이 쏟아졌다. 동창이라는 누리꾼들 여럿이 김선호는 ‘TV 이미지 그대로인 착한 사람’이고 스타가 된 이후에 변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스태프도 모함당하는 김선호가 안타깝다며 좋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다른 동창이나 스태프의 반박은 없었다. 

그러자 여론이 뒤집혔는데도 많은 매체가 한사코 김선호를 매장시키려 했다. 남의 사생활이니 제3자가 나서서 검증 안 된 주장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김선호의 사과로 사태가 정리됐는데 제3자가 나서 진흙탕을 만든다고 했다. 매체들은 김선호가 여성의 주장으로 매장된 것을 ‘사태가 정리됐다’고 표현했다. 여성의 말에 대한 반대 주장은 주장이라서 못 믿는다면서도 여성의 주장은 믿었다. 여성만 의심을 안 하고 여성 반대편 사람은 모두 의심했다. 여성 주장만 믿고 매장한 것이 제3자들인데, 그런 매장은 되고 반론 제기는 3자니까 하지 말라고 했다. 사생활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이 여성인데 그건 되고 반론은 사생활이라 안 된다고 했다. 여성이 하는 폭로는 되고 그 여성의 신뢰성에 대한 검증은 비윤리적, 2차 가해라는 식이었다. 그 여성이 폭로한 내용은 사적인 부분일 뿐 범죄 여지가 없었다. 반면에 디스패치 보도에 나온 동영상은, 사실이라면 범죄 여부를 들여다봐야 했다. 하지만 일부 매체는 김선호의 사생활은 단죄하면서 그 여성의 동영상 문제엔 침묵했다. 

ⓒKBS2 제공
김선호(오른쪽 두 번째)가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중 한 장면. 논란 후 김선호는 하차했다.ⓒKBS2 제공

일부 매체, 충격의 반전 후에도 요지부동 

사건 내용도 호도했다. 그 여성이 김선호의 인간성 전반과 사생활에 대해 폭로했기 때문에 김선호가 총체적 악인으로 낙인찍힌 건데, 일부 매체는 논란 내용이 낙태 종용 하나라며 인간성이나 사적인 부분은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 

디스패치에서 두 번째 보도가 나왔다. 낙태 과정에서 그 여성이 주장했던 일방적 종용과는 다른 분위기의 대화가 오간 것이었다. 그리고 여성을 기만하고 일방적으로 버렸다는 폭로와 달리, 그 여성의 거짓과 동영상 등이 이별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런 디스패치 보도에 대한 그 여성의 반박은 적어도 아직까진 나오지 않았다. 그 여성이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증거 제시도 없었다. 

물론 다 주장이니 아직 진실은 모르지만 적어도 최초 폭로글이 모두 사실이라던 상황과는 달라졌다. 그러면 김선호를 악인으로 매장시켰던 입장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진실에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일부 매체는 여전히, 김선호 사과로 수습돼 가던 사태가 각종 주장으로 혼탁해졌으니 이제 더 이상 말을 말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나서지 않고 모두 입을 다물면 기존의 수습된 상태, 즉 김선호가 덮어놓고 매장된 상태가 바뀌지 않는다. 언론이 왜 진실 규명을 막고 ‘묻지마’ 사람 매장을 두둔하는 모양새가 됐을까? 

첫째, 최근 여성이 폭로하면 증거가 없어도 여성의 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 말에 의혹을 제기하면 때론 2차 가해로 몰릴 수 있다. 둘째, 사생활에 대한 왈가왈부는 부적절하다는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 같다. 폭로 자체가 사적인 내용이어서 진상을 규명하려면 사적인 얘기를 해야 하는 특수성이 있는데도 무시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합쳐 현 상황까지 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한쪽 말만 믿고 사람을 섣불리 단죄해선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교훈을 우리 사회에 다시 상기시켰다. 그 여성의 폭로를 포함해 어떤 주장도 검증 불가의 성역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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