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현대미술은 한류를 만들지 못할까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4 12:00
  • 호수 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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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선호하는 아트페어 ‘흥행’ 잇달아…상대적으로 현대미술은 대중에게 외면, 왜?

현대미술을 풀이하는 말과 글을 생업으로 삼는 미술평론가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글을 시작하련다. 일반적인 현대 교양인은 현대미술의 동시대적 흐름에 미치지 못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현황과 현대인의 앎이 서로 진도가 맞지도 않을뿐더러, 다채로운 시감각적 자극을 주는 매체가 충분히 존재하는 탓에 현대미술에 대한 끌림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전시장에 적힌 해설문을 읽고 작품을 봐도 감이 오지 않는 현대미술의 난이도는 현대인과 현대미술 사이에 더 큰 간극을 만든다. 현대미술의 흐름과 격차가 클 뿐 아니라, 현대미술에 호감도 없는 대다수를 상대로 현대미술에 관해 말과 글을 전달하는 직업이라니! 자괴감이 들 만하지 않겠나.

현대미술의 문법에 어두운 일반인들의 오해로 궁지에 몰린 사건들, 가령 대작(代作) 시비로 5년여 생업 전선에서 퇴출된 조영남(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 논란의 대상이 된 무수한 공공미술 제작자들, 외관의 유사성 때문에 표절로 몰린 미술가들을 나는 공개적으로 변호해 왔는데, 오해를 푸는 과정에서 대중의 지탄은 내게 돌아왔고 직업에 대한 자괴감도 짧게나마 느낀 경험이 되었다.

ⓒ연합뉴스
10월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외관 유사성 때문에 표절로 내몰린 미술가들

근자에 들어 미술 투자에 관심을 둔 MZ세대의 출현과 그런 시류로 인해 서울과 지방에서 열린 아트페어들이 연이어 성공했다는 기사도 뒤따른다. 판매에 최적화된 아트페어는 정작 미술평론가인 나의 관심 비평 대상이 아니다. 4~5일 내외의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인 판매 실적으로 성패가 좌우되는 아트페어와는 정반대편에 놓인, 무려 4~5개월간 미술관에 전시되는, 지금 소개할 ‘올해의 작가상 2021’처럼 관객 한산한 현대미술 전시회를 비평하고 소개하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전시이고, 전시 해설문을 읽고서 봐도 뭔지 모르겠는 현대미술의 표본쯤 될 전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지금 주류 현대미술의 지표쯤 되는 전시라 하겠다.

전시 기간 중 발표될 올해의 작가 후보는 김상진, 방정아, 오민, 최찬숙 이렇게 네 명이다. 천장에 다리만 떠있는 마네킹과 빈 탁자가 놓인 교실 풍경을 설치작업으로 내놓은 김상진은 몸은 교실 안에 있지만 영혼은 메타버스에 가있는 요즘 학생들의 정신세계를 다룬 것처럼 보였다. 민중미술과 연결고리가 있는 방정아는 1980년대에 유행했던 대형 걸개그림의 형식 안에 핵발전소의 문제를 다뤘다. 순수미술을 전공한 다른 후보자들과 달리 피아노와 디자인 전공자답게 음악적 선율과 짜임새 있는 영상 화면을 구성해온 오민은 회화라는 고전적 장르를 영상세대가 풀이한 작업으로 해석될 법한 신작을 냈고, 최찬숙은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3면 영상 설치물을 냈는데 영상 안에 많은 해설을 담은 작업이었다. 해독이 간단치 않아서 미술관에서 제공한 풀이를 보니 “작가는 우리 앞에 있는 가상공간과 시스템이 기존의 서사와 어떻게 만나 물리적인 감각을 일으키는지, 이러한 공간에서 새롭게 감지되는 감각과 존재는 무엇인지에 질문을 던진다”고 적혀 있다. 음 어렵다.

비단 이런 지문 말고도 미술작품은 해설만으론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해설을 읽고 작품을 봐도 알쏭달쏭할 판에 약술된 평문만 읽고 어찌 전시된 작품들의 형상이 떠오르랴. 영화나 소설은 자칫 해설이 스포일러가 되기 십상이지만, 미술은 해설을 온전히 접하고도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거나 혹은 해설의 지시대로만 작품을 보려는 문제가 생긴다. 현대미술은 여러모로 진입장벽으로 에워싸인 형국이랄까. 그러므로 더는 이번 전시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련다.

그렇다면 수요가 턱없이 적은 현대미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올해의 작가상’처럼 주류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는 무슨 목적으로 관람할 것이며, 현대미술 비평(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들이 이 글을 쓰는 동기다. 답변의 실마리를 불과 이틀 전 우연히 누군가와 나눈 대화 두 편에서 찾기로 했다.

첫째 대화는 전시장에서 만난 갤러리 대표가 내게 던진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는 “우리 미술은 왜 한류를 만들지 못하냐”고 내게 물었다. 한류란 문화의 경제효과에 주목한 사회 현상이다. 한류의 주체가 드라마나 가요, 스마트폰처럼 대중적 수요와 쏠림이 수치적 성과로 나타나는 분야에서 관찰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한류는 자국 내 넘치는 인기와 수요를 해외시장으로 확전시킨 경우랄 수 있다. 반면 현대미술은 자국 내 수요가 지극히 미미한 예술 장르일 뿐 아니라, MZ세대가 새로운 투자방법으로 미술품 수집에 주목하게 된 근자의 예외적인 현상을 제하면, 경제효과나 대중적 수요로 성패를 좌우하는 범주 바깥에 있는 예술이랄 수 있다. 나아가 그런 시류에서 벗어난 점이 미덕인 예술이기도 하다.

가수 조영남은 대작 시비로 검찰에 기소됐다가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연합뉴스

‘대중 눈높이에 맞춘’ 작품만이 예술일까?

둘째 대화는 어느 미술가의 작품 비평을 쓰던 중 시작됐다. 그 미술가는 단순한 패턴을 반복하는 작품을 제작해 왔는데, 그처럼 단순한 외형의 작품은 외부인이 볼 때 작가의 의도를 읽어낼 시각적인 단서가 부족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덧붙여서 작가의 의도를 관객이 고스란히 이해할 필요도 없거니와, 제대로 된 현대미술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작으며, 보는 이가 어떤 실마리를 찾기만 한다면 작품으로서 충분하다고 안도시켰다.

항간에선 작가의 의도가 쉽게 이해되는, ‘대중 눈높이에 맞춘’ 작품을 좋은 예술이라 믿는 경향이 여전히 굳건하다. 하지만 외관만으로 의미가 파악되는 작품을 예술판에선 키치(싸구려 예술)라고 규정한다. 작가의 의도나 작품의 의미가 무엇이건, 작품으로부터 보는 이가 어떤 실마리를 찾아내고 어떤 사유를 하게 된다면 충분한 게 현대미술이다. 앞서 언급한 작가의 작품을 살피던 중 공교롭게 십여 년 전 읽었던 레이몬드 카버의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단편소설이 떠올라서 다시 찾아 읽게 됐다. 그처럼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실마리를 발견한 것으로 그 작품은 내게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을 수행했다. 금세 끓어올랐다가 식어버리는 대중적 쏠림이나 정신적인 유행에 휘둘리고 싶지 않을 때, 택할 수 있는 소수자를 위한 도피처 중 하나가 현대미술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만인이 공유하지 않는 분야여서 은신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해방구가 현대미술이리라. 이로써 나는 ‘올해의 작가상 2021’ 전시 리뷰 기고를 실마리 삼아, 현대미술 비평의 자의식을 점검하고, 현대미술의 존재 이유에 관한 성찰도 나눈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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