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테크 시대, 하이터치가 필요하다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 김정희 마케팅 컨설턴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08 11:00
  • 호수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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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코틀러 “고객과 상호 작용 없으면 기업 성장도 없어”

요즘은 거의 모든 매장에서 키오스크 주문을 한다. 사람 대신 기계 화면을 통해 주문하고 결제하는 무인 자동주문 시스템이다. 키오스크를 사용할 때마다 필자가 느낀 점이 있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쓰기 어렵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노라니 아이 엄마가 눈에 띄었다. 무인 주문 시스템 사용이 어려운지 한참을 망설이다 뒤에 서있던 젊은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다.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의 경우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 같았다. 마침 다른 키오스크 대기줄에 서있던 학생이 한 메뉴 버튼을 눌러주며, “그냥 이거 누르시면 돼요” 하니 화면이 넘어갔다. 간신히 주문을 마친 그 남성은 뒤를 돌아보며 필자에게 말한다. “이거 잘 안 눌러져요, 정말.” 실제로 두 번째 선택 화면부터 터치 반응이 좋지 못했다. 뒤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하건만 화면의 버튼 터치는 그 속도 모르고 시간을 지체시켰다.

ⓒ연합뉴스
9월23일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위치한 무인 편의점인 이마트24 스마트 코엑스점에서 한 손님이 매 장 입장을 위해 QR코드를 발급받고 있다.ⓒ연합뉴스

키오스크 주문 포기하는 사람들

이처럼 디지털 기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도 무인 자동주문 시스템 앞에서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사람이 함께 주문을 받는 병행 방식을 활용한다거나, 시스템 사용이 어려운 사람들의 추가 요청 사항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보조 시스템을 필수로 갖추는 배려나 공감적 대응이 필요하다.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의 말처럼 ‘인간적인 하이터치’가 지금껏보다 더 필요하다.

사람이 병행하는 곳이 없는 건 아니다. 직원 호출 버튼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금세 알아채기 어렵고 제한적일 때가 많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앞의 두 고객 사례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선뜻 도움을 주는 청년과 학생을 만났으니 말이다. 복잡한 시간에 메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질문은 웬만해선 꿈도 못 꾼다. 주문할 메뉴를 미리 파악하고 가야 당황스러운 상황을 면할 수 있다. 고객이 메뉴 파악과 시스템 사용법을 미리 익혀 가야 할 판이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어려운 일부 고객은 주문을 아예 포기하고 매장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한다. 고객이 기업의 서비스를 포기하는 것인지, 기업의 서비스가 고객을 포기하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애매모호하다.

필립 코틀러의 저서 《마켓 5.0》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셀프 서비스식 키오스크와 챗봇 같은 솔루션은 기본적인 거래와 질문만을 처리해줄 수 있다. 상담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인간이 더 적합하다. 더 광범위한 영역의 주제에 걸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챗봇과 대화하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거나 게시판에 구구절절 문의글을 남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소통 채널이 더 낫거나 우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의 경험에 공감하면, 혹은 최소한 노력하고 있다면 어떤 채널이 적절한지는 알고도 남을 일이다.

세일즈포스의 설립자 겸 CEO인 마크 베니오프는 저서 《트레일블레이저》에서 “기계에는 인간처럼 초심자의 마음이란 게 없으며, 본질적으로 세상에 나올 때 선하거나 악한 기술은 없다”고 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의 목적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비즈니스와 마케팅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데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기업은 우리 주변 누구나 불편함 없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선한 기술 경험을 제공해야 하고, 마케팅은 그와 같이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얘기로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기기 사용 미숙하다고 핵심 고객 아니다?

산업계에서는 사람과 기계 사이의 의사소통 방식을 가리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라고 한다. 우리가 TV 리모컨 버튼을 누르거나 음성으로 전등을 꺼달라고 말하는 것들이 그 예다. 이 UI를 개선해 사용자 경험(UX)을 더 만족스럽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차별화된 디지털 경험이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필립 코틀러의 말을 더하자면 “고객 경험은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승리하게 해주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제는 핵심 제품과 서비스보다 과거엔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상호작용과 몰입적인 경험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렇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면서 고객을 차별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모순이다.

기기 활용이 미숙한 사람들이 핵심 고객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하는 전략이 아니라면 한 번쯤은 모두가 기기를 다 잘 알고 쓸 수 있다는 확증편향에서 벗어나 그 쓰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고객은 예전처럼 기업에 충성도를 보이지 않는다. 기술에 힘입어 사람들은 사용 후기와 추천을 통해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 더 착한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로 얼마든지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고객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기업은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계속 개발해야 하고, 새 고객을 창출해야 한다. 고객은 또 시대만큼 변하고 성장한다. 기업에 제외되는 고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 9월 신한은행은 AI ‘디지털라운지’로 창구를 확대하면서 디지털 활용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고객을 위해 전문 상담사가 안내하는 ‘디지털 에스코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카드 업무 전용 키오스크 이용에 대해 도움이 필요한 고객에게는 화상 상담 시스템으로 상담원을 연결하는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요즘은 정부 및 지자체에서 스마트 기기 활용이 미숙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스마트폰, 키오스크 사용법을 무료로 교육한다. 왜 그러겠는가? 기업이 이익을 늘리고 사회에 기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지인이 말하길 “그럼 패스트푸드점은 지역사회 스마트 기기 활용 교육에 투자하고 지원하면 되겠네”라고 했다. 이미 하고 있다면 박수를 보낸다.

당장엔 기업이 지원하는 셈이겠지만 결국엔 고객층을 넓혀 이익을 창출하고 사회에 기여하며 고객과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이테크 시대는 현재이고 미래다. 이때 하이테크만 있고 인간적인 하이터치가 없다면 기업의 성장동력은 쉬이 꺼질 것이다. 혁신은 어림도 없다. 기술은 평등해야 하고, 비즈니스와 고객과 상호작용하는 마케팅은 인간을 향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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