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이 던지는 도자공예의 감동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2 12:00
  • 호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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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영박물관·미국 보스턴미술관은 왜 이수경 작품에 열광할까

“미술 같은 건, 해서 뭐 해?” 저항 없이 널리 퍼진 이 통념에서 보듯, 미술(품)에 무용지물의 일면이 엄연히 있다. 미술, 나아가 예술을 ‘비평적으로’ 규정하는 여러 성질 중 쓸모없음은 빠지지 않는다. 실용성을 제거하고 온전히 자기목적성에 충실한 행위와 결과로 예술을 정의한다. 그 점에서 도자공예는 조각이나 비디오아트 등과 함께 미술의 한 범주로 묶이긴 하나, 한 급수 낮게 취급되거나 별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사대부의 관상 취미용으로 도자기가 제작되곤 했다지만 도자공예는 실용적 목적이 앞서는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관상용과 실용이라는 도자공예의 두 본질, 그 어디에 속하지 않으면서 급진적인 미적 실험의 매개로 주류 현대미술 무대에 출현하는 도자 작품도 드물게 나타난다. 김준명의 개인전과 소규모 아트페어 '솔로쇼'에 출품된 이수경의 작품은 도자공예의 급진성을 보여준 경우라 하겠다.

ⓒ키스 박(Keith Park) 제공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_2009 TVG 1, 도자 파편 알루미늄 에폭시 24K 금박ⓒ키스 박(Keith Park) 제공

현대미술의 변방에서 주류로

서울 이태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주점 골목에 숨어있는 ‘초능력’이라는 바의 옆구리에 붙어있는 정체불명의 공간. 그곳에 마련된 2평 남짓의 전시장은 ‘인력시장’이라는 상호를 쓴다. 밑바닥 삶의 직업 알선을 뜻하는 용어를 반어적으로 쓴 이 좁디좁은 공간에는 한창 이삿짐을 싸다가 멈춘 듯한 광경이 연출돼 있으니, 그게 김준명 개인전 '운수 좋은 날'(2021년 12월4일~2022년 1월30일, 인력시장)의 전모다.

그 비좁은 공간에는 이삿짐을 싸는 와중에 주문해 시켜 먹곤 하는 중식 잔반과 나무젓가락이 신문지로 대충 덮은 비품 위에 놓여 있다. 이사 준비를 하느라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닦는 데 사용했을 타월과 비누도 곱게 포개놓았다. 짐 싸는 데 쓰고 버리는 분홍색 끈으로 동여맨 책들도 한쪽 구석에 보인다. 이 모습만으로는 이것이 전시의 한 장면인지 가늠도 못 할 게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중식당에서 흔히 쓰는 광택 나는 쑥색 대접은 멜라민 재질 그릇이 아니라, 가마에서 구운 도자기였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널브러진 일회용 나무젓가락과 종이포장지 일부도 도자기였고, 타월과 비누 역시 도자기로 재현한 가짜였다. 이사용 노끈으로 동여맨 책들 사이사이로 가마에서 구운 가짜 도자기책도 끼어있었다. 음, 이게 뭔지. 뒤에서 얘기하기로.

국내 굴지의 갤러리 14곳이 저마다 50세 이상의 검증된 대표 작가의 개인전(그래서 제목이 ‘솔로쇼’)을 구성해 내놓은 아트페어 '솔로쇼'(2021년 12월1~5일, 원에디션 아트스페이스)에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이 내놓은 이수경의 작품도 현대적 도자다. 도공의 가마에서 가져온 용도와 외형이 다른 도자기의 파편들을 정교하게 이어붙이고 그 틈에 금박을 입힌, 파손과 완성이 공존하는 이수경의 도자작업은 《번역된 도자기》라는 이름의 연작이다. 이수경은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상’ 후보 4인에 오른 작가다. 또 《번역된 도자기》 작업으로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동시대 미술가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이수경의 작품을 소장품으로 구매했고, 미국 보스턴미술관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아르코 컬렉션 같은 박물관들도 이수경 작품을 구입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전시장인 점에선 같지만, 고고학적 가치의 유물에 방점을 두느냐(박물관), 동시대의 미적 실험에 방점을 두느냐(현대 미술관)에 따라 지향점에서 확연한 격차가 있다. 박물관의 고고학적 취향과 현대 미술관의 실험적인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었던 건, 이수경의 현대미술 설치물이 동양권 도자공예품의 파편으로 구성됐기 때문일 게다. 관상과 실용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버림받은 쓸모없는 도자기 파편을 모아, 고전과 현대를 상징적으로 잇는 전에 없던 볼거리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도자공예의 급진적인 실험을 내세운 김준명 개인전과 전통 도자를 현대적으로 번역한 이수경의 작품이 출품된 '솔로쇼'는 여러모로 대척점에 있다. 서울 압구정동 모델하우스 내부를 임시 전시 부스로 활용한 '솔로쇼'는 판매에 최적화된 아트페어답게 관람객의 방문을 프리뷰를 포함해 단 5일만 받았다. 구매로 연결되는 압축된 감상 시간만 허용한 것이다. 이에 반해 한남동 주점골목의 후미진 곳에 위치한 김준명 개인전은 필시 내방객의 왕래가 뜸할 텐데 전시 기간만 거의 2개월에 육박한다. 이처럼 쓸모없는 긴 전시 기간 안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시공간으로 쓰인 ‘인력시장’을 아무리 검색해도 경기도 일대 인력 알선업체만 잡힌다. 이곳은 갤러리로 등록된 곳이 아니어서 존재를 발견하기가 일단 힘들다. 이런 곳에서 전시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처럼 정당한 의문들이 모여, 현대미술의 쓸모없음에 확신이 더해질 것이다.

ⓒ인력시장 제공
김준명, 짜장면그릇과 젓가락, 세라믹 휴지 젓가락 포장지 신문지 비닐랩, 가변설치ⓒ인력시장 제공

예술적 감동 최대한 부풀려 묘사하는 관행에 일침

미술은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희망과 기원을 허구로 재현하는 기술이었다. 적어도 기원전까지 거슬러 오르는 미술사의 대부분은 그러했다.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의 주류는 구시대 미술의 패러다임을 교체하면서 시작됐다. 예를 들어 김준명 전시장에는 실제 비누와 비누를 흉내 낸 도자기가 나란히 비치돼 있다. 진짜는 공장에서 뚝딱 대량생산된 저가의 제품, 가짜는 성형·건조의 과정을 거쳐 가마에 넣어 초벌을 굽고 유약 등을 발라 재벌을 하는 등 10시간 전후 시간이 든 미술품. 이쯤 되면 더 어리둥절해질 게다. 왜 갖은 공을 들여 하필 싸구려 비누며 플라스틱 식기를 재현하는 데 그쳤냐고.

업소용 비누나 중국집 배달식기는 하찮은 일상 사물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실제 삶에 가까이 있는 대상이다. 보통의 사물을 공들여 도자기로 똑같이 제조해 일상에 태연하게 비치한 광경을 봤을 때 현실감에 연결된 미적 감동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그건 어마한 감동이 아니라 미소나 농담에 가깝다. 미술업계 종사자로서 평소 느끼는 부조리가 있다. 예술의 감동을 천상에나 존재하는 분에 넘치는 감정인 양 묘사하는 관행이 있잖나. 실제보다 부풀려진 감정만이 예술적 감동에 대한 예우라고 믿는 풍토가 있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가 가담해 지어낸 감동은 예외 없이 텅 비어있다. 그 점은 분명 잘라 말할 자신이 있다. 동시대 미술이 주는 감동의 일면은 김준명·이수경의 사례처럼, 관상용과 실용이라는 도자공예의 오랜 본질을 전에 없이 대체하는 시도에서 오며, 그것은 압도적이기도 하지만 쓸모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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