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자기 언어로 소화…윤석열은 메시지가 없다”
  • 구민주·김종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7 15:00
  • 호수 168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정철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메시지총괄
“이번 대선은 ‘나라’ 아닌 ‘나’를 위한 투표 될 것”
“정치 슬로건 베스트는 ‘못살겠다 갈아보자’, 워스트는… ”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승리를 가져온 일등공신은 로고송 《DJ와 춤을》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최고 인기가요였던 DJ DOC의 노래 《DOC와 춤을》을 개사한 곡으로, 70대 중반이었던 김 후보를 젊은 유권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한 홍보 전략의 승리였다. 이때부터 대선에서 홍보 전략은 승패를 가름하는 키가 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캠프의 홍보 사령탑을 만나 대선 전략을 들어보기로 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당내 사정으로 인터뷰가 연기돼 추후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민주당 선대위가 새 캐치프레이즈와 슬로건을 선보였다.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 이재명 후보를 비롯해 선대위 구성원들의 순조롭고 흔쾌한 합의의 결과였다. 이 작업의 중심엔 선대위 메시지총괄을 맡은 정철 카피라이터가 있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의 ‘사람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 슬로건을 만든 정철 총괄은 이번 슬로건 안에 이 후보만의 철학과 지금의 시대정신이 고루 담겼다고 자신했다. 정 총괄은 “이번 대선은 ‘나라’도 ‘우리’도 ‘대통령’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투표가 이뤄질 것”이라며 “이재명을 위해 이재명을 지지하지 말고, ‘내 밥상을 위해’ ‘내 지갑을 위해’ ‘내 출근을 위해’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이번 슬로건에 담아내고자 한 시대정신은.

“공정·성장이란 과제도 있지만, 더욱 시급한 건 개개인의 ‘회복’이라고 봤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 속에서 유권자들은 회복을 위해 자기 역량을 보일 수 있는 후보를 정말 원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난 대선에서 젊은 층은 나라를 위해 촛불을 들었고, 나라를 위해 투표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라를 위해 투표하라고 하면 아마 아무도 안 할 것이다. ‘내’가 너무 고달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에서 ‘라’자를 빼고 ‘나’를 강조했다. 당장 내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잘살아야 나라도 회복하고 잘살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과 지금 대선 슬로건의 차이는.

“2012년은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불도저를 겪은 직후였기 때문에 ‘사람 냄새’가 고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反)이명박 느낌으로 ‘사람’ ‘인간미’를 강조했다. 당시 문재인의 절반엔 노무현이 깃들어 있었다.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도 염두에 두었다. 2017년은 시대정신이 너무 분명했다. ‘이게 나라냐’라는 모든 국민의 질문이 있었고, 당시 지지율 1위였던 문재인은 이에 답해야 했다. ‘이게 나라냐’에 대한 답을 찾으면 되겠다 싶어서 ‘나라를 나라답게’라고 만들었다. 지금은 국민이 ‘그래, 국격은 높아졌는데 그럼 나는?’이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모두 ‘나’ 자신을 위한 투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확장성이 큰 문구가 될 거라고 예상하나.

“슬로건은 카피라이터 손끝에서 나와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더 이상 카피라이터의 것이 아닌 시민의 것이 된다. 후보나 캠프가 만들어 위에서 아래로 전하는 것보다 시민들이 이걸 어떻게 갖고 놀며 퍼트리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위해’나 ‘앞으로 제대로’ 모두 그 앞에 많은 단어를 붙여 활용될 거다.”

이전 슬로건인 ‘이재명은 합니다’가 더 임팩트가 크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이재명은 합니다’는 최고의 슬로건이다. 이 후보의 추진력과 과감성을 충분히 전달하며 이 후보를 여기까지 이끈 주역이다. 그러나 그것만 갖고 유권자들을 투표장까지 끌어올 수 있을까. 이 후보가 똑똑한 건 알겠는데 ‘나’의 효능감, 즉 내가 원하는 걸 손에 쥐여줄 수 있을까를 증명해야 한다고 봤다. 이 후보는 너무 세다는 인상이 있는데, ‘이재명은 합니다’는 정말 세서 약간의 연성화도 필요했다.”

야당에선 이번 슬로건을 두고 ‘나’가 곧 ‘이재명’이라고 비판했다.

“슬로건을 만들 때 이미 그 공격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다 알 것이다. 공격을 위한 공격일 뿐이다. 그렇게 우긴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다.”

선대위 합류 전후 이 후보와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문 대통령 카피를 꽤 써왔던 사람으로서, 특별한 마음이 있다. 정권이 교체돼 문재인 정부가 해온 일체가 폄훼되고 지워지는 일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 후보와 함께하기로 한 계기 중 하나다. 이 후보에게도 문재인 정부를 너무 과하게 비판하거나 부인하지 말라고 했다. 전략적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 후보는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겠냐’며 걱정 말라고 했다.”
 

“문재인이 돌부처 이창호라면 이재명은 이세돌”

카피라이터가 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의 차이는.

“문재인이 바둑기사 이창호라면 이재명은 이세돌이다. 딱 맞는 비유라고 본다. 이창호의 별명은 돌부처다. 돌다리를 두들겨보고도 안 건너는 사람이다. 지독하게 절제한다. 정수를 둔다. 보는 사람은 재미없고 답답할 수 있다. 답답하니까 여기저기서 훈수도 많이 둔다. 헝클어진 대한민국을 정리하는 데는 필요한 성향이었다. 이창호가 힘이 빠지면서 이세돌이 세력을 잡았다. 이세돌은 180도 달랐다. 그는 남들이 안 두는 수를 뒀다. 틀림없이 질 것 같은데 치열하게 붙어 역전한다. 보기에 너무 재밌다.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게 곧 이재명 같다. 이 후보의 강한 추진력의 기저엔 과감한 상상력이 있다. ‘그게 왜 안 돼?’라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 ‘상상력’과 ‘윤석열’을 나란히 놓아보면 그냥 웃기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상력이다.”

최근 ‘이재명은 안 합니다’라고 비판받을 만큼 핵심 정책을 선회하는 모습이다.

“이 후보의 가장 큰 장점은 ‘앞으로 가는 힘’이다. 가장 큰 단점도 똑같이 ‘앞으로 가는 힘’이다. 과속이 늘 걱정이었는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결정이다. 요즘 반 발짝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정말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구나’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자신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훈련을 하고 있구나’ 싶다.”

두 후보 모두 비호감도가 높아 비호감 대선이라는 비판이 많다.

“잘 생각해 보면 이 후보는 지난 10년간 비호감 이미지와 계속 싸워왔다. 이재명을 상징하는 ‘사이다’엔 두 속성이 있다. 깨끗함 그리고 톡 쏘는 것.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 시장과 도지사에 도전하고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격이 있었겠나. 깨끗하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다. 톡 쏘는 말을 많이 한 것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이다는 이재명에겐 ‘생존 음료’였던 것이다. 이렇게 살다 보니 여기저기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비호감 이미지는 열심히 달린 말에 진흙이 묻은 거다.”

윤 후보는 어떤가.

“윤 후보의 비호감은 출마 전까진 사람들이 잘 몰랐다. 그런데 말과 행동이 드러나면서 비호감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이 후보는 점점 비호감을 추스르는 과정이다.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비호감도를 계속 동급으로 놓고 분석하는 건 의도된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힘 선대위의 메시지 전략은 어떤가.

“메시지 관리를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다. 메시지 관리가 없는 것이다. 우선 공정과 상식은 그 자체로 슬로건이 될 순 없다. 이 개념어들을 입에 넣고 삼켜 그것이 숙성되고 발효되길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통해 문장 하나로 끄집어내는 게 대선 슬로건이다. 그 문장엔 공정이나 상식 같은 개념어는 없어야 한다. 의미는 담되 쉬운 언어로 쓰여야 한다. 슬로건이 공정과 상식이라는 건 아무것도 안 한 것이다. 무엇보다 메시지는 결국 후보다. 선대위가 큰 구상을 합의해 제시하면, 후보는 이를 숙성시켜 자신의 언어로 소화시켜 내보여야 한다. 윤 후보는 그러지 못한 모습을 이미 많이 보였다. 반면 이 후보는 그 내공이 있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정치 슬로건의 베스트와 워스트는.

“넘버원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다. 1950년대 말 자유당 정권 당시 신익희 민주당 후보가 들고나왔다. 골목을 뛰어다니는 강아지도 외쳤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왜 그렇게 힘이 있었을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였기 때문이다. 또 따라 하기 쉬운 리듬을 갖고 있었다. 이승만 후보가 부랴부랴 ‘갈아봤자 별수 없다’는 슬로건을 냈지만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공감도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워스트는 2007년 이명박 후보의 ‘국민성공시대’다. 자기 혼자만 성공하지 않았나. 슬로건마저도 사기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