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항산 스라소니’로 불린 진옥출의 부활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9 11:00
  • 호수 168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몽양의 연인으로 독립운동 나선 무장전사의 삶 그려낸 최산 소설 《파란 나비》

이 땅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여성 혁명가가 있다.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맡은 역의 실제 모델이라는 남자현 열사를 비롯해 서북 지역을 이끈 조신성, 유인석 장군의 조카며느리로 의병장이 된 윤희순, 김락, 조마리아, 박자혜 등 헤아리기 힘들다. 여기에 한 여성을 더해야 할 이유를 담은 소설이 출간됐다. 정치학자였던 최산 작가가 소설 《파란 나비》로 진옥출이라는 인물을 되살렸다.

파란 나비│최산 지음│목선재 펴냄│504쪽│1만8500원
파란 나비│최산 지음│목선재 펴냄│504쪽│1만8500원

부제 ‘몽양의 붉은 사랑’에서 알 수 있듯이 진옥출(1917년 충주생)은 몽양 여운형과 31세 나이 차에도 딸 순구를 1942년에 낳은 정치가의 여인이다. 하지만 진옥출은 해방 공간에서 가장 유력한 정치인과의 인연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복합한 삶의 여정을 지녔고, 이제야 한 사람을 통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왔다는 점에서 신비하다.

충주 노은면의 부호 가문에서 태어난 진옥출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환경 속에 태어났다. 기독교 장로인 아버지 덕에 서울에 와서 신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제 치하라는 상황은 종교, 정치 등 수많은 면에서 복잡한 상황을 초래했다. 때문에 어릴 적에는 기독교사회주의에 빠졌다가, 점차 주변 인물들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등에도 관심을 갖는다. 고보 시절 만난 몽양은 그의 마음 한편에 항상 존재하던 인물이었고, 도쿄에서의 인연으로 사랑을 맺은 후 딸을 낳게 된다. 하지만 결코 몽양의 보호막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이를 낳은 후 옥출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무장독립운동에 마음을 갖게 되고, 그 험한 여정을 좇는다.

상하이를 경유해 무정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용군 주둔지인 타이항산에 도착한 옥출은 사격 등을 익혀 누구보다 뛰어난 여성 전사가 되고, 일본군과 전투까지 치른다. 또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에서 만난 이들과 마음을 나눈다. 이 과정에서 도쿄에서 인연이 있던 허갑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기도 한다. 하지만 허갑이 일본의 밀정이라는 것을 알고, 그는 허갑을 권총으로 사살한다.

많은 이의 우려대로 한반도 수복전쟁을 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갈리는 운명을 맞는다. 이 과정에서 몽양 역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옥출은 자연스럽게 무정 장군을 따라 북한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북한도 김일성을 위한 정치체계에 빠져들면서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옥출의 운명 역시 한국전쟁의 복잡한 과정 속에서 스러진다. 해방 후 북한에 머물렀다는 점은 김원봉, 조만식이 그렇듯이 역사에서 배제되는 게 익숙하다.

다행히 이번 소설을 통해 사람들은 그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한 여인을 볼 수 있다. 또 중국의 거대한 산맥 속에서 살았던 수많은 무장 독립운동가의 삶도 비교적 온전하게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역사적 자료가 많지 않은 진옥출의 삶을 픽션을 통해 상당히 공감력 있게 살려내고 있다. 당시의 복잡했던 사상적 혼돈과 미묘한 일본과의 관계도 비교적 잘 살려낸 느낌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