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명품 ‘플렉스’ 문화를 바꿨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5 10:0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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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명품 소비 재테크·리셀 시장과 맞닿아
코로나19 팬데믹·제1 자산 포기하는 시대상도 반영

해마다 오른다. 그런데 팔린다. 명품은 더 이상 경제적으로 풍족한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 일명 MZ세대라 통칭되는 이들이 명품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명품은 ‘더’ 팔리고 있다. 주요 백화점 매출에서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이 세대는 클릭 몇 번으로 수백만원짜리 명품을 산다. ‘오픈런’(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이 열리면 달려가는 것) 행렬 속에도, 명품을 되파는 ‘리셀’(resell) 시장의 중심에도, 중고 명품 거래 시장의 한 축에도 이들이 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의 주요 제품의 가격이 인상된 1월18일, 서울시내 백화점 외벽에 디올 브랜드가 광고돼 있다. ⓒ 뉴시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의 주요 제품 가격이 인상된 1월18일, 서울시내 백화점 외벽에 디올 브랜드가 광고돼 있다. ⓒ 뉴시스

MZ세대 명품 구매 비중 높아져…‘보복 소비’가 매출 견인

사실 명품 구매 연령대가 낮아진 것은 한국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인 명품시장에서 Z세대 비중은 2019년 8%에서 지난해 17%로 두 배 이상 커졌고, 밀레니얼 세대의 비중은 36%에서 46%로 높아졌다. 2025년에 명품을 사는 개인 10명 중 7명은 40세 이하일 것이라고 전망된다. 그럼에도 유독 한국의 명품 열풍은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백화점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런 현상이다. 지난해 말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오픈런 현상을 조명하면서 “한국에서는 새벽 5시부터 백화점 밖에서 긴 줄을 서 샤넬백을 사려는 이가 많다. 팬데믹 이후 해외 쇼핑이 제한되자 한국의 샤넬 가격이 네 차례나 인상됐지만 더 많은 수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언급했다.

왜 오픈런을 하면서까지 명품을 소비할까.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팬데믹으로 인해 해외여행 기회가 제한된 데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고정비용 지출이 줄어들면서 명품 소비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보상소비 혹은 보복소비라 불리는 이 소비행태는 국내 백화점 매출을 전년 대비 2배가량 끌어올렸다. 2021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국내 백화점은 11곳. 역대 최다였다.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이상(지난해 11월 기준·산업통상자원부). 11곳 중 7곳이 3대 명품인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을 모두 갖춘 점포로 나타나면서 명품 중심 성장세는 재확인됐다.

남성 명품 매출도 성장하는 추세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남성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4.8% 늘어났다. 여기에 온라인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온라인 결제에 익숙한 MZ세대의 명품 구매 비중은 더 확대됐다.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기준 온라인 명품 플랫폼에서 MZ세대가 결제한 비중은 73%에 달했다.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중고 거래 플랫폼이 부상하면서 MZ세대의 중고 명품 거래량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현재의 삶을 위한 만족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명품을 구매한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본래 제1 자산으로 꼽히는 것은 부동산이었다. 집값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내 집 마련’은 어려워졌다. 결국 제1 자산을 포기하고 실질적으로 취할 수 있는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면서 현재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집값이 급등하면서 ‘지금 즐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집을 포기하고 대신 명품을 산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샤넬 핸드백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 앞에서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2021년 12월16일 오전 서울시내의 한 백화점을 찾은 시민들이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 뉴시스
지난해 말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샤넬 핸드백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 앞에서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2021년 12월16일 오전 서울시내의 한 백화점을 찾은 시민들이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뉴시스

재테크 수단으로도 접근…유통 지형도 바꿔

명품 소비 열풍의 또 다른 배경에는 ‘재테크’가 있다. MZ세대는 온라인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익숙하다. 명품의 가격은 해마다 오른다. 샤넬의 인기 제품 가격은 1000만원을 넘어섰고, 올 초에도 일부 핸드백 가격이 11% 인상됐다.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현실이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제품은 한정돼 있으니 재판매 시장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온라인에서 200만~300만원의 웃돈이 붙는 경우도 있다. ‘빨리 사서 늦게 팔아야 한다’가 공식이 됐을 정도다. 이 현상은 오픈런과 연결된다. 이른바 ‘샤테크’(샤넬+재테크)를 하기 위해 오픈런을 하는 이도 늘어나고 있다. 개점 전까지 매장 앞에서 대신 줄을 서는 ‘오픈런 알바’까지 등장했다.

재테크 관점에서 보면 고소득자, 주식·코인으로 자산을 불린 이들뿐만 아니라, 축적 자산이 적은 20대가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는 현상도 설명이 가능하다. 명품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리셀과 재테크의 시선으로 명품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기보다는 제품 자체의 희소성, 판매할 수 있는 가치를 따진다. 되팔 수 있는 가치가 높은 샤넬과 같은 인기 명품을 선호하는 이유다. 미국의 중고 명품 플랫폼 더리얼리얼은 ‘2021년 명품 리세일 보고서’를 통해 “젊은 세대는 하이 밸류 명품 리셀 아이템에 대한 투자를 가상화폐나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으로,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을 대표하는 토큰)와 같이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MZ세대가 명품시장의 화두로 떠오르자, 유통업계는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큰손 모시기’에 나섰다. 지난해 10월에는 현대백화점에 2030 VIP를 위한 전용 멤버십과 라운지가 생겼고, 롯데백화점에는 2030 MVG(Most Valuable Guest·초우량고객)를 위한 리무진 의전 서비스가 등장했다. 명품 소비가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수혜를 보고 있는 백화점들은 올 초부터 루이비통, 프라다 등 명품 팝업 스토어를 경쟁적으로 오픈했다. 과거에는 신규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열었다면, 이제는 체험형 오프라인 쇼핑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차별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온라인 커머스는 가품(假品) 이슈를 차단하고, 구매 편의성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모객을 시도하고 있다. SSG닷컴은 디지털 보증서 ‘SSG 개런티’ 서비스를 선보인 뒤 실적이 신장했고, 롯데온도 병행수입 명품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트러스트온’이라는 인증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온라인 명품 커머스에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MZ세대의 구매력을 입증한다. 머스트잇은 카카오인베스트먼트와 케이투베스트파트너스로부터 13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명품 거래 중개 플랫폼인 트렌비의 누적 투자금도 400억원에 달한다. 발란은 네이버 등으로부터 325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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