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의 왕족도 아닌 《스펜서》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9 11:00
  • 호수 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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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습에 갇힌 현대 귀족 여성의 비극적 초상화

영국이 역사상 가장 사랑한 여성, 비운의 왕세자비, 나아가 세계적 아이콘이 된 이름. 다이애나 스펜서(1961~1997)는 이미 떠나고 없지만 그 이름만은 여전히 세상의 곁에 머무르며 다양한 방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스펜서》도 그중 하나다. 다만 이 영화는 지금까지 다이애나를 다뤘던 그 어떤 작품과도 다른 결을 취한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이미 미디어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제시된 그를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하거나 왕실과의 대립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는 것이 무용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를 주목한 《재키》(2016)에 이어 또 한 번 사회적 관습에 갇힌 현대 귀족 여성의 비극적 초상화를 제시한다. 여기서 핵심은 비극이 아니라, 인물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려 하는지에 있다.

ⓒ(주)영화특별시 SMC제공
ⓒ(주)영화특별시 SMC제공

고통받는 육체와 내면

《스펜서》는 1991년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왕실의 전통에 따라 샌드링엄 별장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는 3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실제 비극을 기반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시종 불안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음악과, 아름답지만 음울한 기운을 풍기는 미술을 바탕에 둔 호러 심리극에 가깝다. 특정 공간을 배경으로 인물의 황폐한 내면을 여행한다는 점에서는 《샤이닝》(1980) 같은 작품을 연상하게 될 정도다. 왕실의 법칙에 세련되게 길들여진 일원이 되기보다 자유롭게 달리기를 꿈꿨던 한 인간을 조명하는 일. 제목이 다이애나의 결혼 전 성인 ‘스펜서’인 점은 작품이 도달하고자 했던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영화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다이애나는 이미 길을 잃은 상태다. 이는 아예 직접적 에피소드로 드러난다. 수행원 없이 홀로 차를 몰고 별장으로 오는 길에 다이애나는 길을 잃는다. 지도를 보는 데 어려움을 느끼던 그가 이윽고 한 식당에 들어선다. 모두의 눈과 귀가 다이애나를 향하는 사이 그가 묻는다. “여기가 어디죠? 어딘지 전혀 모르겠네요.” 바로 앞 장면에서 군용 수송차량이 별장으로 3일치 식재료를 운반하는 모습을 마치 전시상황처럼 제시한 영화의 카메라는, 다이애나를 마치 길 잃은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담고 있다.

그가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왕실의 전통은 고루하다. 식사 자리에 늦지 않을 것. 난방기구는 사용하지 않으니 요령껏 오래된 별장의 추위를 견딜 것. 시간마다 미리 정해진 의복을 착용할 것. 커튼으로 창문을 가릴 것. 즐거운 휴가를 보냈다는 증명을 위해 3일 동안 몸무게를 늘릴 것. 다이애나를 둘러싼 시제에는 미래가 없다. 전통이 지배하는 과거와 나란한 현재뿐이다. 감금과 같은 규칙들 안에서 다이애나는 ‘싫은 일도 몸이 할 수 있게끔 해야’ 하는 삶을 강요당한다.

영화는 섭식장애와 숨 막히는 왕실의 법도 그리고 남편의 불륜 사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압박감을 버티고 있는 다이애나를 스크린에 투사한다. 카메라는 고통받는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한다는 명분과 관음증적 시선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계속 지워나가고,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다이애나의 상황을 빗댄다.

남편 찰스 왕세자(잭 파딩)가 선물한 진주목걸이가 대표적이다. 다이애나는 남편과 불륜 관계에 있던 카밀라 파커볼스와 똑같은 목걸이를 받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목걸이는 마치 죄수를 묶은 쇠사슬처럼 목을 죄고, 이윽고 다이애나는 모두가 모인 식사 자리에서 목걸이를 손으로 잡아뜯는다. 그러곤 수프 위로 쏟아진 진주를 분연히 입으로 떠넣는다. 왕실의 법도를 삼켜버리듯 진주를 오도독 씹는 다이애나의 모습 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그가 화장실로 달려가 음식물을 모두 게워내는 모습이다. 목에 걸린 목걸이는 그대로다. 현실은 바뀔 수 없다.

 

회복과 자각, 존재 증명의 과정

극 중에서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두 아들을 제외하고 휴가를 위해 모인 왕족 일가는 마치 박제된 초상화처럼 언어를 갖지 못한다. 여왕만이 유일하게 다이애나의 무너지는 내면을 잠시 어루만질 자격을 얻는다. “파파라치 때문에 고생이 많겠구나. 지폐에 들어갈 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그들이 뭘 찍든 종잇조각에 불과해.”

대신 영화는 앤 불린의 유령을 다이애나의 곁에 소환한다. 영국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로, 아들을 낳지 못한 죄와 간통, 이단 등 온갖 혐의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한 비운의 왕비다. 그는 다이애나를 둘러싼 불안의 전조이자 근미래처럼 보인다. 실제로 다이애나는 지속적인 자기 파괴의 충동에 시달린다. 다이애나가 별장 인근, 유년 시절을 보냈던 집에 철조망을 끊고 침입하듯 들어간 장면에서 이를 둘러싼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다 썩어가는 계단 위에 위태롭게 선 채 밑을 내려다보는 다이애나의 곁에는 앤 불린이 있다. 진주목걸이는 계속 목을 죈다. 그는 결국 고통에 잠식당할 것인가.

만약 여기에서 그쳤다면, 《스펜서》는 다이애나의 고통을 탐미적으로 소비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다이애나를 환영에게 잠식당하도록 두지 않는다. 극의 초반, 다이애나는 벌판에 선 허수아비가 입은 코트를 벗겨 별장에 가지고 온다. 이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얽힌 유년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며, 한 인간으로서 다이애나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장치다. 과거는 그를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이는 인격체의 위치로 되돌려놓는다. 말하자면 《스펜서》는 샤넬의 우아한 오트 쿠튀르 드레스와 진주목걸이의 속박에서 벗어난 다이애나가 낡은 빨간 코트로 대변되는 자유와 해방을 필사적으로 되찾는 이야기다.

영화가 추구하는 운동성의 방향은 그래서 중요하다. 요컨대 《스펜서》는 유령 같은 음습함이 맴도는 갇힌 공간으로부터 시작해 가장 자유롭고 따사로운 성질을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는 영화다. 식음을 거부하는 몸에 스스로를 가둔 채 흐릿하게 배회하던 존재는, 점차 온전히 자신의 두 다리로 단단하게 땅을 지탱하며 힘껏 달리고 목청껏 노래하는 육체성을 회복한다. 이 영화는 그 또렷한 자각이자 증명의 과정이다.

대중과 미디어의 비대한 관심 안에서 낱낱이 분해되면서도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본연의 성질을 곧 자신의 인장으로 만드는 사람. 이는 다이애나와 그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나란한 공통점으로 보인다. 이 영화 속 스튜어트의 연기는, 다이애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매혹적인 방식의 성취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 《스펜서》의 한 장면ⓒ(주)영화특별시 SMC제공
영화 《스펜서》의 한 장면ⓒ(주)영화특별시 SMC제공

오스카 여우주연상은 누구에게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 영화로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미 각종 비평가협회를 포함한 시상식과 영화제에서 30여 개 트로피를 거머쥔 상황. 오스카의 중요 지표 중 하나로 점쳐지는 크리틱스초이스에서는 《디 아이즈 오브 타미 페이》의 제시카 차스테인에게 트로피가 돌아갔다. 1970~80년대 ‘텔레비전의 전도사’로 활약했던 실존 인물 타미 페이 베커의 흥망성쇠를 그린 영화다. 여러 후보 중에서도 가장 박빙의 승부로 보이는 두 사람 중 누가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릴지는 3월27일(현지시간)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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