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내려보낸다고 균형발전 이뤄낼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5 12:00
  • 호수 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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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딜레마…경제성과 효율성만 따지는 것은 무리

포스코 지주회사의 포항 본사 이전을 두고 경북 포항시와 포스코가 실무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12월1일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서울에 본사를 둔 투자형 지주회사 아래 철강사업 자회사인 포스코를 두기로 했다. 그러나 투자 축소와 인력 유출, 세수 감소, 위상 약화 등을 우려한 포항 시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권까지 나서면서 포스코는 2월25일 지주사 소재지를 포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사회와 주주 설득 등을 통해 2023년 3월까지 지주회사를 포항으로 이전하고 미래기술연구원은 포항에 본원을 설치한다는 게 포스코와 포항시가 합의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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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국무총리(앞줄 가운데)가 1월25일 오전 세종시청에서 열린 제1회 국가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국가균형발전의 날 지정 축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균형발전 논란

KDB산업은행은 아무래도 부산으로 가야 할듯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두고 “약속했으니 그대로 지키겠다. 지방에 대형 은행이 자리 잡는 게 지역균형발전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산은 노조는 반대 시위에 들어갔다. 한국수출입은행과 IBK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서울에 본점을 둔 다른 금융 공공기관들은 이전 논의 확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 본점 지방 이전’ 논란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쟁점이었다. 2020년 총선 때는 여당이,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땐 야당이 나섰다. 지난 국회에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본점을 전북으로 옮기는 안과 부산으로 이전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모두 발의됐었다. 기업은행 본점을 대구로 이전시키자는 법안도 있었다.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국민의힘 공약을 살펴보면, 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함께 가덕도 신공항 조기 건설도 언급돼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부산 선거유세에서 “가덕신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는 필요 없다. 조속히 착공해 임기 중 완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예비타당성조사는 대규모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경제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거나 국가의 재정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기획재정부에 가덕신공항의 예타 면제 신청서를 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원래 가덕도는 밀양, 김해와 함께 영남권 신공항 경쟁 후보지였다. 그러나 2016년 5개 광역지자체가 프랑스 ADPi/교통연구원에 용역을 맡긴 결과 가덕도와 밀양은 타당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신공항은 김해로 결정됐었다.

이 모두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별도로 설치됐다.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위원장은 전반적인 인적자원 육성과 교육, 재정, 세제 개혁, 문화 인프라 등을 모두 논의할 예정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국토 균형발전이 국정의 공식적인 주요 과제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1982년에는 수도권 규제가 도입됐다. 지방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수도권을 규제하는 것이 전체적인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반론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토의 균형발전은 수십 년간 주요 정책과제로 보수와 진보 정부 구분 없이 꾸준하게 시행돼 왔다. 행정수도 지정도, 2019년 이뤄진 공공기관 153개 혁신도시 이전도 모두 국토 균형발전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책이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교통 여건과 교육, 문화시설 등 모든 면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는 극심하다. 지금 전체 인구의 52%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국내 100대 기업의 91%, 벤처기업의 70%, 제조업체의 57%가 본사를 수도권에 두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금융 대출의 67%를 수도권이 점유하고 있고 대학, 의료기관, 문화시설 등도 포화상태이기는 마찬가지다. 반면 현재 전국 면 단위 지역 중 병원이 없는 곳은 76%다. 슈퍼마켓 하나 없는 곳도 45%나 된다. 수도권의 팽창과 지방의 몰락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공기업의 지방 이전이나 특정 지역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는 결국 경제성은 보지 말고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공기업을 활용하고 재정을 쓰자는 얘기다. 2019년 1월 현 정부가 국가균형발전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두 24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23개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한 데도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국책사업 한 건이나 공공기관 하나의 지방 이전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목표한 계획인구를 달성한 곳은 2곳뿐이다. 지난해 6월말 현재 가족과 동반 이주한 공공기관 직원은 기혼자 기준 53.7%에 그친다. 국책은행 하나가 지방으로 간다고 금융 비즈니스 생태계가 조성되는 것도 아니다. 국민 노후자금 9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2016년 전북 전주로 이전했지만, 따라간 금융회사는 없다. 부산 남구에 있는 부산국제금융센터에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방침에 따라 한국거래소와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의 본사가 입주해 있지만, 민간 금융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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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 경북 포항시청에서 포항시체육회, 포항시종목단체, 읍면동체육회 등 체육단체 소속 대표 20여 명이 포스코 지주사 서울 설립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선택 위해선 정치 역할도 중요

균형발전 정책이 국정의 주요 과제가 돼야 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경제성이나 효율성, 국가 전체의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와 비교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정치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치란 결국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다. 분배의 우선순위는 정치집단의 철학과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국가재정을 집행하는 데 경제성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작업의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균형발전과 관련된 사업을 평가하는 데 경제적 효과를 우선시하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 경제성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두 조건 사이에서 선택이 필요하다. 적절한 균형이 바람직하겠지만 지금 시점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국가 경쟁력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금융사들을 서울과 부산, 전주로 분산 배치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역균형발전이 더 중요한 목표라면 결론이 다를 수도 있겠다. 물론 포스코 같은 민간기업의 경우는 또 얘기가 다르다. 지역균형발전 전략도 더 체계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산업정책, 교육정책, 부동산정책, 교통정책과 모두 연계한 다양한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지역이 주도적으로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자치분권 강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규모 재정 사업의 경우 사업에 대한 지방의 부담 수준을 높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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