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겨눈 재계 사정, 어디까지 뻗칠까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4.06 10:00
  • 호수 169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규모 확대
기업들, ‘윤석열 인맥’ 검찰 출신 속속 영입

최근 검찰의 행보를 두고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대기업 전담 수사팀 인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계열사 부당 지원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재계에서는 정권교체기에 나타난 검찰의 이상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검찰이 재계 군기잡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언론에서는 ‘사정(司正) 정국’이라는 용어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전략적으로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통해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정운영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기관의 수사 대상은 대체로 사회적 영향력이 큰 재벌 총수와 정치인이다. 기업 사정 대부분은 특정 정치인의 부정부패 수사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이런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검찰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서울중앙지검은 2월21일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조사부 규모를 전격 확대했다. 공정거래수사팀과 부당지원수사팀으로 이뤄졌던 조직을 공정거래수사1팀과 2팀, 부당지원수사팀 등 3개 팀으로 개편했으며 인원도 9명에서 15명으로 늘렸다. 앞서 공조부는 금호아시아나, LS 그룹 등 주요 기업 총수들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 회동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 회동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정권교체기 삼성전자 압수수색 충격파

공조부는 2월28일 삼성그룹의 삼성웰스토리 부당지원 의혹과 관련해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수사팀을 확대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6월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삼성웰스토리에 2349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과 삼성전자 법인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지 약 9개월 만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윤 당선인의 의중을 예단해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 당선인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아울러 검찰 수사권 확대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예고한 만큼 검찰이 이에 발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검찰은 공조부 확대와 삼성웰스토리 부당지원 의혹 수사에 대해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공정거래 사건이 늘고 있어 인력과 조직 보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오랫동안 논의돼 왔던 내용이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웰스토리 수사에 대해서는 “통상 절차에 따라 엄정하고 치우침 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검찰의 이 같은 움직임이 ‘윤석열 정부를 앞두고 기업 사정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검찰의 현재 움직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시점이 묘하다는 평가다. 민주당 정권에서 친정부 기업으로 분류되는 몇몇 대기업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설까지 세간에 떠돌고 있다. 

법조계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무법인 세종이 작성한 ‘제20대 대통령선거: 그 결과와 영향’에 따르면, 정권 초기 적폐청산 기조에 따라 일선 기업의 경제범죄 및 반부패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수사가 활발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재계는 윤 당선인이 검찰 특수통 출신이라는 점에서 부담을 느껴왔다. 과거 윤 당선인은 현대자동차·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등 굵직한 기업 수사를 담당하며,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잡아들였다. 아울러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LIG그룹 기업어음사기 사건을 맡아 대주주 일가를 동시 기소하며, 특수부 검사로 이름을 떨쳤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과 관련해 2016년 11월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검찰이 압수물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과 관련해 2016년 11월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검찰이 압수물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다.ⓒ연합뉴스

법무법인 세종이 작성한 리포트 주목

이 때문에 향후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 수사를 받는 기업들은 칼날이 총수에게 향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은 검찰의 동향을 파악하는 ‘서초동 팀’까지 새롭게 꾸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대기업의 한 대관(對官) 관계자는 “최근 여러 기업이 과거에 없앴던 서초동 팀을 다시 만들고 있다”며 “전통적으로 서초동 팀이 없던 기업들조차 소속 대관 담당자들에게 검찰 동향을 챙기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인맥’으로 불리는 검찰 출신들을 잇달아 영입하는 등 구체적인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최근 롯데쇼핑은 윤 당선인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조상철 전 서울고검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으며, 삼성카드는 김준규 전 검찰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김 전 총장은 윤 당선인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2과장을 지낼 당시 검찰총장이었다. 재계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기업 수사가 활발해질 것에 대비한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재계를 향한 대대적인 사정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먼저 정권 초기에는 각 정부기관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텐데, 검찰이 공조부 규모를 전격적으로 확대한 만큼 수사권 강화와 맞물려 실적 쌓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기업을 타깃으로 수사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무엇보다 윤 당선인의 경우 정권 출범 전부터 여러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통상적으로 대통령 취임 후 6개월 정도는 허니문 기간으로 불린다. 새 정부에 대한 부정적 시각보다 기대감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취임 전임에도 국정수행 전망이 부정적으로 나오고 있다. 향후 170석 남짓의 거대 야당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둘러싸고 반대 여론도 심상치 않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대통령 취임 전에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재계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인 사정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역대 정권들이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로 국정운영 주도권을 가져가려고 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비롯해 보수정권은 이런 난맥상을 사정 정국을 조성해 돌파하려고 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군인공제회, 강원랜드, 석유공사, 토지공사) 비리를 겨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일명 ‘재계 살생부 명단’이 정권 초기 나돌았는데, 해당 기업들이 차례대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현실화됐다.

윤 당선인이 직접적으로 수사에 관여할 가능성은 낮지만, 특수통 검사이자 전직 검찰총장으로서 상대적으로 검찰에 대해 강한 그립을 쥘 수 있다는 게 법조계와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로 윤 당선인 최측근 인사들은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퇴를 거론하며, 검찰 안팎에서는 ‘윤석열 사단’이 복귀할 것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을 받고 있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021년 5월12일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을 받고 있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021년 5월12일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검찰, 역대 새 정부 앞두고 사정 드라이브 

대표적인 게 문재인 정부에서 좌천된 한동훈 검사장이다. 특수통 출신인 한 검사장은 윤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는 윤 당선인과 함께 국정농단 사건을 비롯해 기업 비리 수사를 함께한 경험이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한 검사장이 대검이나 서울중앙지검 주요 보직으로 영전할 경우 대형 비리 수사가 재개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재계 입장에서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정권마다 반복됐던 사정의 칼날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검찰의 움직임은 윤 당선인의 의중과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기업 전담 수사부를 확대한 것 자체가 기업들 입장에서는 의미심장하다”며 “검찰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기업은 명운이 갈린다. 자칫 기업 경영이 위축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권교체기, 文 정부로도 향하는 칼날
고발 3년 만에 산업부 강제수사 돌입

검찰이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고발장을 접수한 지 3년2개월 만에 산업부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주요 여권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범죄전담부(최형원 부장검사)는 3월28일 남동·남부·서부·중부 발전 4개 본사와 한국무역보험공사·한국에너지공단·한국광물자원공사·한국지역난방공사 본사 4곳 등에 검사와 수사관들을 보내 압수수색을 벌였다. 3월25일 산업부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사흘 만에 발전 자회사 본사 4곳과 해외 자원개발 관련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4곳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동부지검은 산업부 블랙리스트와 유사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고려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판결 이후 두 달이 지난 시점에 갑자기 수사에 착수한 것은 결국 검찰이 정권교체 이후까지 고려한 포석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현재 동부지검에는 ▲청와대 특감반 330개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국무총리실·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등의 사건이 접수돼 있다. 해당 사건의 피고발인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이름이 올라있다.

검찰이 블랙리스트 사건을 신호탄 삼아 그동안 묵혀뒀던 정권 비리의혹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설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