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영우 “핵 보유에 따른  북한 ‘손익 구조’ 바꿔야”
  • 김종일·구민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6 14:00
  • 호수 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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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제시하는 ‘북핵 해법’
“핵 폐기를 위한 대북정책 필요…대화·인센티브 모두 연계해야”
尹 대북정책 기조-‘실세 권영세’ 외교안보 라인 ‘긍정 평가’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4월11일 서울 종로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 해법으로 핵심 이해 당사국들의 물샐틈없는 국제공조 아래 제재 필요성을 역설했다. 천 이사장은 “제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핵 보유에 따른 북한의 손익 구조와 전략적 셈법을 바꾸는 것”이라면서 “핵 보유에 따른 비용과 손실이 이익을 능가하게 만드는 데 제재 외에는 현실적 수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천 이사장은 제재 만능론과 무용론 모두를 경계했다. 단선적인 대북 강경책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유지하는 게 문제 해결에 더 유리하다고 했다. 물론 대북정책의 인센티브는 핵 폐기와 연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천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려는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 당선인은 남북 관련 공약으로 미세먼지, 기후변화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하는 ‘그린 데탕트’를 약속했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 일변도는 아닐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 윤 당선인은 통일부 장관에 관료 출신이나 북한 전문가가 아닌 핵심 측근으로 떠오른 4선 중진의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을 지명하며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천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 대해 “내공을 갖추신 분들”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천 이사장은 2006년부터 2년여간 북핵 6자회담의 우리 측 수석대표로 참여한 외교 베테랑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최근에는 현장 최일선에서 겪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제언을 담은 저서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한반도 운명 바꿀 5대 과제》를 출간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현안부터 묻자. 윤석열 외교안보 라인의 윤곽이 공개됐다. 외교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에 각각 박진, 권영세 의원이 발탁됐다. 

“다 내공을 갖추신 분들이다. 외교·안보에서 주요한 직책을 수행할 충분한 자질과 경륜이 있다고 평가한다.”

윤석열 당선인은 대북 강경책이 아닌 실용적인 대북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옳은 방향이라 생각한다. 대북정책에서 중요한 건 강경 일변도 정책을 쓰는지, 쓰지 않는지가 아니다. 핵심은 북한에 주는 인센티브 정책을 비핵화와 얼마나 연계할 수 있느냐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을 향해 ‘비핵화를 하지 않더라도 먹고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식의 잘못을 범했다. 그럼 북한이 비핵화를 할 이유가 없지 않나. 북한에 수조원을 지원해도 좋다. 다만 그게 핵의 폐기와 직결돼야 한다. 이게 핵심이다.”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4월 중에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4월15일은 북한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110주년 기념일이다. 또 25일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이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신형 미사일 기술을 테스트할 때 많은 국내외 전문가가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든가, 북한의 주요 일정에 맞춘다고 하는데,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의 제1 목표는 기술이다. 새 기술을 실험하고 검증해야 할 단계가 오면 반드시 하는 것이다. 기술의 힘을 믿는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 스케줄대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나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등으로 북한 핵을 억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우리에게 북한을 억지할 핵이 없다는 것은 착각이다. 북한의 핵 사용을 억지하는 데는 핵이 최고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런데 미국이 본토와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3800개의 전략핵무기와 230개의 B61(중력폭탄) 전술핵이 있다. 이것만으로는 북한을 억지하는 데 모자랄까. 미국이 유사시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 우리를 지켜주겠다는 것이 확장억지 공약이며, 한미 동맹의 본질은 확장억지 공약에 있다. 미국이 이를 확실히 지키겠다는 보장이 있다면, 미국이 한국 방어를 위해 사용할 핵무기는 우리 핵무기와 다를 바 없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이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정상 공동선언으로 확장억지 공약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도 체제를 온전히 유지하고 경제 발전의 꿈을 이룰 방법이 있다면 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핵이 자신의 권력을 지켜줄 ‘보검’이 아니라 북한 체제의 종말을 재촉할 ‘비수’이자 ‘저승사자’라는 확신이 들고, 핵 포기 외에는 권력을 유지하고 경제 발전의 꿈을 이룰 방법이 없어야 가격과 조건이 맞으면 핵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제재일까.

“결론적으로 비핵화의 필수조건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경제 발전과 체제의 생존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는 핵심 이해 당사국들의 힘과 의지다. 나아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체제 안전을 걱정하지 않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충분조건이다.”

제재 만능론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될 텐데.

“제재 만능론과 무용론은 둘 다 제재의 본질을 벗어난 주장이다. 대북제재의 범위를 아무리 확대하고 강도를 높여도 그것만으로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핵을 포기하게 만들 수 없다. 북한은 핵 개발을 위해 보통국가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수준의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 왔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제재가 북한의 이러한 핵무장 의지를 꺾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앞으로 제재를 더욱 강화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제재의 역할과 기능을 짚어본다면.

“제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핵 보유에 따른 북한의 손익 구조와 전략적 셈법을 바꾸는 것이다. 핵 보유에 따른 비용과 손실이 이익을 능가하게 만드는 데 제재 외에는 현실적 수단이 없다. 북한의 손익 구조를 바꾸기 전에는 협상을 재개하더라도 진전이 어렵다. 또 제재는 대북 레버리지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레버리지란 북한을 움직일 힘을 말하는데, 북한의 생존과 발전에 불가결한 것을 빼앗거나 줄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 능력을 사용할 정치적 의지와 비례한다. 제재는 김정은이 꿈꾸는 핵·경제 병진정책의 성공을 가로막고 장기적으로 체제의 안정까지 흔들 수 있는 수단이다.”

대북제재가 가장 효율적이란 주장이다.

“제재는 핵과 정권 유지 가운데 양자택일 상황으로 북한을 몰아감으로써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원동력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북한이 제재 해제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만큼 북한을 움직일 레버리지로서의 제재 효과와 위력은 커진다. 아울러 제재 범위와 강도는 시간이 누구 편인지를 결정한다. 제재가 고통스러울수록 북한은 시간에 쫓기고 초조해지며, 지연 전술이나 살라미 전술을 구사할 여유를 잃는다. 즉 제재는 협상에서 ‘갑을관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끝으로 제재는 원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소용없는 것처럼 보이는 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대화와 협상도 필요한 것 아닌가.

“물론이다. 북한과는 신뢰가 있든 없든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를 해도 북한의 의도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계속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성과 없는 대화라도 계속해야 한다. 대북 강경책을 쓴다고 대화를 일절 안 하고 무조건 죽이자고 나서면 당장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북한이 계속 약속도 어기고 합의를 뒤집어왔으니 대화나 협상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저들이 언젠가 또 약속을 어길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마련해 가며 합의하면 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전작권 전환을 계속 미룰 일이 아니다. 전쟁 경험이 풍부한 미군보다 작전 지휘를 잘할 수 있는 나라는 없고, 미국이 전작권을 계속 행사할 경우 최고의 작전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70년 이상 미국에 전작권을 맡겨놓은 데서 초래되는 해악도 무시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전작권을 주권과 국가의 자존심 문제로 인식하는 정치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잘못된 인식이라고 해도 바로잡기가 불가능하다면 정치적 현실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전작권이 국방에 대한 우리 군의 주인 의식과 책임 의식에 미칠 영향이다. 미국에 전작권을 기약 없이 맡겨두는 것이 유사시 미국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의타심을 조장하고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를 약화시킬 소지가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우리 군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는 주범이 될 수도 있다. 우리 군이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가 아니라 행정 군대로 전락하고 있는 것도 전작권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미·중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국익의 편에 서면 된다. 보통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미래의 더 큰 안보적 이익은 추상적이고 눈앞의 작은 경제적 실익은 손에 잡히고 피부에 와닿는다. 따라서 국민 여론을 안보정책의 토대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또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고, 전체주의적 일당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나라와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종은 하고 이웃으로서 응당 갖춰야 할 예의는 갖추지만, 마음을 줄 수는 없다.”

안보에서는 미국을, 경제는 중국을 선택하자는 ‘안미경중론’은 어떻게 보나.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이다. 안보는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는 생존의 문제이고 경제는 잘 먹고 잘사는 문제다. 둘 다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인데, 두 가지 목표를 조화시킬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정면충돌을 피할 수 없다면 생존이 우선이다. 그리고 중국이 안보적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적 강압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보와 경제를 어떻게 분리할 수 있나. ‘사드 3불(不) 합의’는 안보와 경제의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한반도 균형자론 등이 있지 않나.

“미·중 사이에서 균형자가 되겠다거나 중립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현실 도피적 환상이다. 균형자나 중립은 기존의 한미 동맹과 양립할 수 없다. 사실상 중국 편에 서서 중국의 위성국으로 전락하는 선택이다. 위험 최소화 전략이라고 ‘양다리 걸치기’나 이중 플레이를 하면 미·중 양측으로부터 불신과 혐오를 받아 안보와 경제를 다 놓칠 수 있다.”

쿼드 가입에 대한 의견은.

“한국이 조속히 참여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없는 자리에서 한반도의 안보와 미래에 영향을 미칠 논의가 이뤄지는 것을 허용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의 참여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데 중국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쿼드 참여는 중국에 대한 한국의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중국이 반대한다면 이는 한국이 참여해야 하는 당위성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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